# 2편 연재(우포늪과 오디, 그리고 창녕 상설시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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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 전망대에 올라 늪지대를 조망하다. |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우포늪을 향해 내려갔다. 내리막 비포장길이었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자전거는 잘 움직였으며, 안전했다. 처음에는 호흡이 약간 어긋났지만, 금방 함께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따라오는 공주님의 유쾌상쾌한 목소리도 들렸다.
“와아! 너무 좋아요. 자전거 진짜 잘 빌렸어요. 이야!”
『자전거를 배울 무렵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체 친구들이 모두 탈 줄 아는데, 나만 예외였지!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가난이 가져다준 촌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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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서로 촬영을 돕고 있다. 아래 사진은 나무 사이로 우포늪을 훔쳐 보다. |
우포늪으로 진입해서 먼저 왼쪽으로 향했다. 대여소 직원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이유는 왼쪽 탐방로를 따라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기에 햇빛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 비교적 시원하게 자전거 탐방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2인용과 1인용 자전거 2대가 돌아가면서 행복한 탄성을 쏟아냈고, 중간중간 정차해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보! 일로 와서 서보세요. 좀 더 왼쪽으로.”
“그만 찍으세요.”
“공주님! 아빠 엄마 좀 찍어주세요.”
『사진이 촬영되면서 그 속에 담긴 멈춰진 순간의 모습과 시간이
진주처럼 빛나는 모든 순간이자 시간이기도 하단다.』
자전거를 선택한 탐방객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다만, 2인용 자전거를 선택한 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녀가 다정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보였다. 왼쪽 탐방 한계선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면서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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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 한쌍이 비행하는 모습을 3배로 확대한 장면 |
전망대는 탐방로에서 약 100m 위쪽 언덕에 있었는데, 데크가 잘 정비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탐방로에서 가까운 데크 오른쪽에 야생 뽕나무가 보였다. 뽕나무 아래엔 탐방객의 발에 밟혀 터지면서 번진 물체의 진한 청색이 한곳에 모여 탄착군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것은 어릴 적부터 훌륭한 간식거리여서 즐겨 먹었던 ‘오디’였다.
뽕나무마다 오디가 지천으로 달렸지 않은가! 손으로 따서 입에 넣었더니 그 단맛과 감칠맛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어려서부터 즐겨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거미줄을 제거하면서 입에 털어 넣었다.
“공주님! 이거 먹어보세요. 오디인데, 먹을 만할 거예요.”
“우아! 너무 맛있어요! 이게 오디라고요? 이렇게 맛있었어요?”
“여보! 오디가 진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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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이 오디의 당도는 엄청 높다. |
큰 공주님의 리액션에 중년 남자와 여자는 흥겹게 오디를 따기 시작했다. 생태계가 살이 있는 우포늪에 자생하는 뽕나무였기에 농약 등 약품을 뿌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이제 그만 따! 전망대에 가야지!”
전망대로 올라가는 데크 양쪽으로 나무 가지치기를 한 모양이다. 데크 공간을 침범할 정도로 나무가 무성했기에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관리 상태가 깔끔했다. 전망대에는 가동되지 않고 있는 실내 에어컨과 여러 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초점을 맞춰 우포늪 곳곳을 살펴보았고, 따오기들이 자유롭게 활공하며 날아다니는 장면과 늪지대 이곳저곳에서 수생 생물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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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촬영을 곁들이며, 연신 자전거 페달을 밝았다. 큰 공주님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자전거를 탄 모습을 아마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을 것이기에 젊은 숙녀는 그 순간을 기념했다. 나중에 추억할 적에 살가운 기억이 되어 행복한 감정으로 공주님의 가슴과 뇌리에 남을 것이다. 그러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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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숙녀의 웃음이 천사를 닮았다. | 공주님! 오늘을 기억하세요! |
오른쪽 탐방로로 향했다. 왼쪽과는 달리 나무 그늘이 없었다. 대신 중간중간 야생 뽕나무가 가지마다 오디를 넉넉하게 품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 찾았던 장년의 길손들은 가지 아래에 양산을 펼친 다음 뽕나무를 흔들었다. 충분히 익은 오디들이 양산 속으로 점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분들 중에도 과거에 누에를 키운 나와 같은 경험을 소유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기 봐! 양산을 펴고 오디를 따고 있네. 우리도 가져올걸!”
“어릴 때 오디가 많이 달린 걸 대게 야생 뽕나무라고 분류했는데, 누에 먹이용으로 키우는 뽕나무도 있거든. 어릴 적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누에를 키우셔서 좀 알지. 누에 먹이 용도의 뽕나무는 잎은 넓고 큰 대신에 열매가 별로 안 달려. 근데 얘들은 뽕잎이 작은 대신에 열매를 봐봐! 엄청나게 달렸잖아! 당도도 아주 높아서 맛있기까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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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는 나의 것! | 야생 오디가 매우 맛있었다! |
『오직 누에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뭇잎인줄 알았지!
디너(dinner – 향연), 잎속에서 향연을 펼칠 열매를 잊으면 곤란해!』
오른쪽 탐방로 끝부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수확하기 위해 손길을 내밀 때마다 잘 익은 열매들이 길손의 손을 피해 절로 ‘톡’하며 떨어졌다. 뽕나무 아래 비포장 탐방로에는 수많은 오디로 군무를 이루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길손에게 구조받아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했다.
1시간 30분 정도 늪 탐방을 마치고 돌아 나와 자전거를 반납했다. 자전거 탐방에 대략 1시간 정도 소비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오디와 씨름한 시간이다. 생태관 옆 편의점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특별히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기대하고 대금을 지불한 것이 아니었는데, 평균 이상이라 만족했다. 우포늪을 찾은 사람이 많음에도 하나뿐인 편의점을 이용하는 탐방객이 대체로 한산했다는 것은 뭘 뜻하는 걸까?
오전 11시 20분 무렵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창녕석리성씨고가』를 찾았는데, 현장에 도착하고서야 그곳이 양파 시배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국에 양파를 널리 퍼트린 분이 살았던 집이 바로 그 고가였다. 안타까운 점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3시 30분까지는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처럼 고가의 관람도 쉬는 시간이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창녕 상설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안쪽에 ‘삼오식당 창녕 본점’이 있다. 이 식당은 창녕 여행을 위해 일정을 짜면서 포털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고, 수구레국밥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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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창녕 본점과 주력 메뉴인 '수구레 국밥' |
창녕군청이 위치한 읍 소재지임에도 상설시장을 찾은 손님이 크게 북적이진 않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삼오식당은 얘기가 달랐다. 단체로 찾은 관광객이 많았고, 순번을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작은 소동도 있었다. 대기표를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도착한 장년 일행 중에 자신들이 먼저 도착했다며 따지는 사람이 있었다. 또한, 식당 앞에는 같은 이름을 달고 장사하고 있는 다른 영업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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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오디를 구매했는데, 못생긴 야생 오디에 비하면 맛이 너무 싱거웠다. |
식사를 마치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가족이 투표를 모두 마쳤기에 홀가분하기도 했고, 창녕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고자 이것저것 장을 봤다. 30분 정도 시장을 돌았더니 세 사람의 손에는 마늘과 장어구이 도시락, 오디, 땅콩, 뻥튀기 등이 들려 있었다. 시장 한 구석에서 깐마늘 등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연로하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장사꾼처럼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장소라 찾는 손님이 없었다.
“공주님! 이 돈으로 저 할머니에게 가서 깐마늘 한 봉지만 사세요. 저 할머니도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 사오세요.”
“네!”
“할머니! 이거 한 봉지에 얼마에요?”
그 할머니에게서 장모님의 모습이 투영되었던 것일까? 평생을 시장 바닥에서 고생하신 장모님이 그 순간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아내 역시 할머니에게서 깐마늘 한봉지를 샀다는 말을 듣고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당신! 우리 엄마 생각이 났던 모양이지?”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