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 연재 - 추억이 깃든 곳 여수 여행기(오동도와 숙소에서 기억과 추억 소환하기)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 현실이 어떠하든 '검은 모래'라는 단어를 선점한 기획력에 박수를 보낸다. |
16시, 오동도다. 공영주차장에 도착했을 적엔 이곳 역시 많은 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주차 안내원에게 손짓으로 주차장과 바이크를 가리켰더니 안전지대에 주차하라며 일러준다. 어찌나 감사한지!
“주차장에 댈 곳이 없고요. 거기 안전지대에 그냥 주차하세요. 원래는 안 되는 건데!”
“고맙습니다!”
허리를 90도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예의가 있는 분이다. 같이 인사를 하신다.
오동도에 도착. 공영주차장과 입구까지 주변을 촬영했다. |
오동도를 연결하는 동백 열차가 16시 30분 탑승 예정이었고, 16시 05분이었다. 그냥 걷기로 한다. 방파제 길을 따라 약 400여 미터 걸어야 하는데, 심심하지 않다. 같이 걸어가는 인파가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한다. 장사진을 이뤘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오동도를 다시금 찾았을까 싶다.
동백나무와 동백꽃이 처연할 만큼 이쁘고 아름다웠던 오동도를 기억한다.
도무지 잊히지 않는 친구의 얼굴과 이름이 내 마음을 찢는구나!』
# 처연하다: 애달파 처량하고 슬프다.
방파제 인도 따라 오동도로 향하는 주변 스캐치!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
오동도는 대학 1학년 겨울 무렵에 친구와 함께 찾았던 추억이 있다. 여수에서 살고 있던 친구다. 『신재현』이라는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함께 학원 다니며 재수했고, 같이 자취생활을 했다. 그 인연으로 나를 초청했고, 친구는 여수의 맛과 멋을 내게 소개했다. 그때 오동도를 찾았다.
사진 위: 오동도에서 공영주차장쪽으로 보며 촬영했다. 아래 사진은 오동도 입구를 지키는 고양이! |
용굴을 먼저 탐방한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찾아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그렇게 행복한 토요일을 보내고 있다. 용굴은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인내심 많은 파도가 바람과 손잡고 오랜 세월 닿은 그곳에 멋진 동굴이 만들어졌고, 운명처럼 오동도의 화룡점정이 되었을 것이다. 『용굴』을 용이 살던 굴이라 해석하든, 용왕이 살기도 했던 굴이라 해석하든 어떠랴! 그런 해석과 전설을 아이들이 믿는다면 동심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겠나!
오동도 구석구석을 연결한 데크가 깔끔하다. 사진 아래는 용굴이다. |
오동도를 탐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데크가 매우 깔끔하다. 도중에 화장실이 있어 방문객의 불편을 덜어준다. 섬도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청결하다. 공영주차장에서 방파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왼쪽으로 보이는 항구에 접안 중인 많은 배를 볼 수 있다. 항구와 수질이 모두 양질의 상태다. 관리를 위해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 드린다.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님 말씀이다. 거북선과 잘 어울린다. |
겨울에는 가동하지 않는 음악분수 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입구까지 걸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어서인지 입장하는 사람보단 나가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구 가까이에 오동도관리사무소가 보인다. 역시 직업병이다. 관리사무소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선 소장 직급이 뭘까? 부터 생각한다.
위는 오동도관리사무소 건물, 아래는 음악분수대. 관리사무소장 직급이 뭘까부터 생각하다니 직업병이다. |
대충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1시간 걸렸다. 반나절 정도 여유를 가지고 오동도와 주변을 탐방할 것을 추천한다. 기회가 된다면 동백꽃이 만개했을 적에 찾아오면 더 좋을 것이다. 즐비한 동백나무를 실컷 볼 순 있지만, 동백꽃을 이 시기에 기대해선 안 된다.
해가 떨어졌지만, 검은 모래 해변까진 가자.
자연보호! 보호종을 보호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
17시 12분,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에 당도했다. 위치와 규모 면에서 딱 적당한 정도의 해수욕장이다. 검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일반적인 해변이나 해수욕장 모래에 비해 색깔이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모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관광지 상품으로 해수욕장이 격상되었다. 시설이나 수질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이곳도 토요일이어서인지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검댕이 숯을 떠올리고 생각나게 하는 검은 모래 해변
다들 사실과 다름을 알면서도 찾아왔지! 그 마음 고마워라.』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과 바다 앞을 지키는 파수꾼인 섬들! |
해수욕장에서 바다 쪽으로 보면, 섬과 섬들이 파수꾼처럼 해변을 지키고 있는 모양을 갖췄다. 방파제 역할을 여러 섬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큰 폭풍우와 태풍에도 높은 파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것 같다. 개인적인 판단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런 점에서 축복받은 해변이자 해수욕장일 것이다. 이제 숙소로 가야겠지? 해가 떨어진 자리를 어둠이 재빠르게 채우는 중이다.
해수욕장에서 여수시청 인근 『J 모텔』까진 약 9㎞ 거리였다.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주행 중에 어둡다는 것이 혹여 사고로 연결될까 싶어 방어운전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달리는 도중에 가로등이 들어왔다. 안도감에 이어 반가웠다. 여수시청에 고마움을 전한다.
숙소인 『J 모텔』은 특이하게도 주차장이 없다. 모텔 입구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데스크로 향했다.
“오늘 예약한 홍성훈입니다.”
“잠시만요!”
데스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교적 젊은 남자였다.
“네! 홍성훈입니다.”
“아! 네…. 105호요.”
“105호라고요?”
열쇠를 받아 호실을 찾았는데, 문이 열려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다른 방을 정리하면서 나를 105호로 안내한다. 방을 확인했더니 침대가 없다. 분명히 침대가 있는 방을 예약했다.
J 모텔을 숙소로 잡았다. 주차장은 없지만, 방이 몹시도 따듯했다. |
“뭐야 이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요! 여보세요. 저기요!”
“왜요?”
문을 열었다.
“오늘 처음 오셨죠?”
“네!”
“이 방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아들이 열쇠를 잘못 주었습니다. 여기는 투숙 중인 다른 사람이 있거든요.”
“그죠! 저도 침대가 보이지 않아 놀랐거든요. 침대 있는 방으로 주세요.”
방을 스캔했을 적에 물품이 놓여있는 것이 주인이 있는 방이었다.
“605호입니다.”
숙소에 가방을 풀어 놓고 옷 정리를 한 다음, 뜨거운 물로 전신을 녹인다. 온수가 펑펑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 따듯한 물이 나와 좋았다. 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따듯하게 씻었다. 컨디션이 한결 좋아진다. 몸이 가볍다.
모텔 앞 국밥집에서 1만 1천 원짜리 ‘옛날 돼지국밥’을 주문해서 먹는다. 역시나 어떤 여행지이든 국밥은 진리다. 독립군인 길손을 외면하지 않는 식당이 국밥집이고, 음식 또한 양적이든 질적이든 대동소이한 점이 마음에 든다. 여수에서 간장게장을 왜 먹고 싶지 않겠나! 틀림없이 ‘2인 이상 주문’메뉴판이 나를 노려볼 것이고, 메뉴판과 전쟁을 치르기 싫다.
모텔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산책하면서 시장조사를 하고서야 편의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맥주 1캔과 컵라면(오뚜기) 1개를 계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억을 되짚으며 추억하는 지금 이 순간이
억수로 고맙고 감사한 거라.
추스를 기억과 추억과 마음이 남아 있기에,
억척스럽게 여수를 찾아왔지 않겠어?』
어렸을 적이다. 지리산 일대에 겨울이 찾아오면 기온이 크게 떨어진다. 동장군이 선발대를 앞세워 추위를 보내면 아버지 어머니께선 군불을 깊숙하게 넣으셨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면서 방을 데웠다. 온돌이 불기운을 받는 만큼 아랫목이 끓었고, 따듯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문밖에서 눈보라가 몰아쳐도,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져도 추위를 잊고 살았다. 낮에는 친구들과 산과 들에서, 논과 밭에서, 학교와 동네 구석구석에서 노느라 추위를 몰랐고, 집에서는 온기 도는 방에서 형 누나들과 함께 배를 드러내놓고 잠을 자면서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이곳 『J 모텔』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방바닥이 따듯했다. 침대에 누웠다가 아예 방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주저앉는다. 그 따듯함에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였다. 뜨거운 느낌이 아니다. 기분 좋은 극강의 따듯함! 칭찬한다. 더군다나 1박 요금이 3만 5천 원으로 저렴해서 가성비 최고다.
# 4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