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위기 가득했던 5박 6일간의 백두대간 80령 종주기
1일 차(3월 25일, 월요일, 흐리고 오후 비)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05시 30분에 기상했다. 전날 저녁에 여행 준비를 마쳤기에 준비할 것은 없었다. 24일 저녁, 탁구장을 다녀온 뒤로 오토바이에서 가방을 분리해 집으로 가져와 여행 짐 꾸리기에 들어갔다. 의류, 먹을 것, 마실 것, 특히 먹고 마실 것들에 신경을 썼다.
이전까지의 여행과는 다르게 산을 오르내리게 될 것이라 분명 주변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두유와 양배추즙, 사과, 토마토, 홍삼액, 영양갱, 자유시간, 빵 등을 일자별로 확인하며 챙겼다. 그리고 종합영양제(눈 영양제 포함)와 조혜영, 서영미, 김진희 직원이 먼 여행길에 챙겨 먹으라며 영양제와 쿠키 등을 건네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소중히 보관했다가 가방에 실었다. 우의와 세면도구까지 정리하고 여행 일정 확인까지 마쳤다.
물을 끓여 커피를 보온병에 담는 것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가방이 세 개다. 사이드 백 두 개와 뒷좌석에 결박한 가방이 추가되었는데, 그 가방에 온갖 먹을 것을 쟁여두었다. 제일 소중했다.
월요일엔 강원도 고성군까지 달려야 한다. 약 430㎞ 거리다. 백두대간을 돌아볼 목적이기에 다른 관광지를 갈 생각도 계획도 없다. 07시 출발을 목표로 했으니출발에도 도착에도 여유가 있을 것이다.
06시 30분 무렵, 오토바이에 가방을 부착하고 집으로 올라와 보호장구와 옷들을 걸쳤다. 안전하게 라이딩하고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선단이에게 출발할 것이라 말했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포옹한다. 꼭 위치 추적기 앱을 가동하라며 신신당부도 잊지 않는다.
☆ n행시는 폰을 가로로~~^^
『백두대간 종주를 떠나려는 자
두 번 방문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면
대충 계획하지 말고, 일기예보까지 꼼꼼하게 챙기길 바라.
간혹 예보가 틀릴 거라는 운에 기대하지 말자.』
작년 1~2차 전국 일주처럼 지나치게 흥분해서 잠을 못 자는 그런 상태는 아닌데, 이번 여행은 8개월 준비하고 기다렸기에 기대가 크다. 백두대간이지 않은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경주를 통과해서 영덕까지 오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10시 10분 무렵, 애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쉴 목적으로 진행 방향의 주유소(울진군 후포면 소재)를 찾았다. 그 전에 동해대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대소산 봉수대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타나기 약 500m 후방에서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를 바퀴로 치었다. 약 100㎞로 고속 주행 중이었고, 왼쪽으로 회전하는 구간이라 피할 도리가 없었다. 너무 심하게 훼손된 상태여서 개인지 고양이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아 볼 수도 없었다.
‘좋은 곳에 갔길 바라. 인간이 사악하지? 널 묻어주지 못해 미안타!’
사진 위는 경북 울진군 후포면 대원주유소이고, 아래는 강원 속초시 소재 주요소이다. 휴식과 화장실 이용 |
10시 반, 다시 출발한다. 동해대로를 달리면서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가 또 보였다. 늘 느끼는 것인데, 그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인간과 기계를 위한 도로를 만들기 전엔 사람과 짐승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왕래했던 길이었을 것이다. 배려심 없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저 아이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장소에서 전국 각지에서 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이다.
1시간을 더 달렸다. ‘장호용화관광랜드’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냥 통과할까, 잠시 고민하다 오토바이를 되돌려 찾아갔다. 해상케이블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인데, 케이블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라는 뜻이고, 곧 편의시설(화장실 등)이 잘 갖추어진 장소라는 말이 된다.
장호용화관광랜드와 주변의 해상케이블, 그리고 해안이 아름답다. |
역시 그러했다. 다만, 멋진 해변 위로 해상케이블 등 관광랜드가 조성된 곳임에도 주차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화장실을 찾아 내부로 들어갔더니 매장마다 일하는 사람이 있고, 그곳을 지나가는 나에게 단 한 사람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들 휴대폰 삼매경이다. 궁금한 것은 매장이 많고 여러 코너가 있는데, 수지가 맞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내가 걱정할 것은 아니다. 곧 폐업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분위기였다.
바깥 쉼터에서 점심을 즐긴다. 빵 2개, 두유, 양배추즙, 사과와 토마토 각 1개, 그리고 따듯한 커피와 영미, 혜영, 진희가 건네준 쿠키를 펼쳤다. 강원도는 추운 곳이다.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아직 춥다. 그래서 따듯한 커피로 속을 데우고 천천히 먹을 것을 음미했다.
‘2인 이상 주문 시 가능’이라는 무슨 주문처럼 울부짖는 식당보단 훨씬 맛있고 풍미 넘치는 점심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따듯한 국밥을 사서 먹어야겠다.
12시 반이다. 휴식을 더 가졌다가 출발한다. 주변을 구경하면서 비가 오지 않길 바랐다. 예보로는 오후부터 비 소식이 있었다. 관광랜드를 출발하고 14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기상청 예보가 부디 틀리길….
고성군 숙소인 『오션투유리조트』를 5㎞ 남겨두고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젠장할....’
도로 바깥으로 바이크를 세우고 서둘러 우의를 착용했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날 보았다면 화단에 퍼질러 앉아 상․하 우의를 입는 모습이 사뭇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군화에도 방수신발커버를 입혔다. 중국의 ‘알리’를 통해 사들였는데, 신발 사이즈가 제법 큰데도 잘 맞았다. 2만 원 정도로 저렴했지만, 만족했다. 물론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착용해보고 확인했었다.
휴대폰 방수커버도 구입했는데,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출발했다. 실수였다. 작년 1차 2차 전국 일주 때도 폰이 비를 맞았지만, 매우 근면 성실하게 네비를 작동시키면서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비를 맞기 시작한 휴대폰이 계속 이상 증세를 보인다. 화면이 강제로 닫혀 버린 것이다. 갓길에 세워서 다시 작동시키고 출발해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다 싶었다. 비명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 n행사는 폰을 가로로~~^^
『위기가 비에서 시작되는 여행이 처음은 아냐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준비된 계획을 실천했지
일에서 벗어나 떠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좋으면 얼마나 다행일까
발을 동동 구르며 위기를 맞고 해결해 나가는 재미도
장시간 운전하며 위기를 피해가는 재미도
전체 여행 중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자.』
비를 고스란히 맞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네비가 작동하지 않으면 초행길인데 어떻게 숙소와 목적지를 찾아가나? 고가다리 아래에서 다시 바이크를 세웠다. 급한 대로 비를 피하면서 사이드 백을 열어 휴대폰 방수커버를 꺼냈다.
휴대폰 방수커버! 가성비가 뛰어났다. |
가성비가 좋았다. 폰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은 물론이고, 완벽하게 빗물을 차단해 주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안경과 헬멧 스크린에 서리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습기 방지제를 구입해 발랐는데, 장시간 빗물에 노출되자 그 효과가 미미했다. 방수 방한 장갑도 알리에서 샀다. 방한 성능은 우수했지만, 방수는 전혀 되지 않았다. 배터리로 지속되는 온열 효과가 빗물에 방치되면 고장을 일으킬 것 같아 전원을 껐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평균 100㎞ 속도로 이동했고, 빗길에서는 75㎞ 정도로 낮췄다. 빗물이 시야를 가렸고, 스크린에 서리가 스며들 때는 속도를 더 줄여야 했다. 동해 가까이 도로 쪽엔 비가 내렸지만, 강원도 산간에는 오토바이에겐 거의 공포에 가까운 대설이 밤새 쏟아지고 있었다.
15시 40분 무렵, 리조트에 도착했다. 데스크에서 카드를 받아 오토바이 짐을 숙소에 풀었다. 흙탕물로 범벅이 된 방수 커버들을 씻어서 말린다. 피로를 차단하기 위해 종합영양제를 먹고, 뜨거운 물로 전신을 녹인다. 한바탕 난장판을 펼쳤다. 다행인 것은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저녁식사로 따듯한 국물이 있는 설렁탕으로 보상했다. 내일을 위해 푹 쉬자!(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