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2023. 10. 3(수) 흐리고 비 조금
10월 2일부터 3일까지 다녀온 여행 경비를 먼저 정리한다.
연료비 | 기타(숙박비 제외) |
2일: 14,263원(경북 안동 경북대로 350, 옥동 안동대성주유소) 3일: 15,822원(경북 영천시 장수로 259 안심주유소) |
2일: 1,200원(자유시간 외1/ 경북 군위군 의흥면 동부로 1040 / 의흥휴게소) 2일: 5,000원(하회마을 입장료/ 경북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8 안동하회마을) 2일: 8,000원(돌솥비빔밥 / 경북 안동시 옥동 792-2 103) 2일: 15,500원(기네스 외2 / 경북 안동시 광명로 178 옥동빌딩) 3일: 2,000원(도산서원 입장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
합계:30,085원 이동 거리: 526㎞ / 1리터 당 23.8㎞ 이동 사용 연료: 22.1ℓ |
합계: 31,700원 |
숙박비용:40,000원 2일: 50,000원(경북 안동시 옥동 614-5 / 안동 킹 모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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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비용:101,785원 30,085원(연료비) + 31,700원(식비 등) + 40,000원(숙박) |
10월 2일 여행 1일 차!
새벽 04시 30분에 눈을 떴다. 눈이 말똥말똥하다. 어쩐 일인지 알람을 듣지 않았는데도 일찍 깼다. 전날 지인들과 거나하게 한잔했는데도 말이다. 액정을 두 번 터치해서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눈을 감는다.
쉽게 잠이 오질 않아 전날 가방을 챙기면서 빠트린 것이 있는지 떠올려 본다. 옷, 위생용품, 샌들, 커피와 텀블러…. 그 사이에 알람이 울린다. 05시 30분이다. 인덕션으로 커피를 끓인다. 가스 불이 아닌 것이 영 어설프고 귀찮다. 저게 물이 끓기는 할지 하는 괜한 염려를 해본다.
부산스럽게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며 준비를 마쳤더니 06시 25분이다. 곤하게 자는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항상 조심히 다니라는 와이프 말을 뒤로 들으면서 지하로 내려가 주차장에서 며칠째 취침 중인 MT-07을 깨운다. 06시 30분 무렵 내비와 헬멧의 세나를 연결하고 안동을 향해 출발한다. 오토바이를 애정을 담아 어루만진다.
‘친구! 잘 다녀오자구! 부탁해’
길잡이가 양산으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울산 방향으로 지시한다. 부산만큼이나 교통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본능적으로 울산은 왜? 하고 혼잣말했다가 아직 연휴 중이라 시내가 막히지 않나 보다 생각하며 순순히 지시를 따른다. 울산을 지나며 신호에 계속 걸리기는 했지만 도로 사정은 좋았다.
경주로 넘어간다. 눈에 익어 자세히 보았더니 몇 차례 왔던 길이었다. 외동읍(제꿍 / 지 혼자 넘어짐)에서의 기억을 소환했다. 07시 40분 경주시 불국동 소재 농협주유소(불국사농협주유소)에서 잠시 쉰다. 소변이 괜히 마려운 것이 아니다. 생리현상은 알람처럼 정확하다. 출발 전에 마신 물이 정직하게 반응한 것이다. 인체의 신비랄까! 07시 55분에 다시 출발한다.
『불굴의 얼을 담아 선조들이 남긴 거룩한 역사인데,
국가를 침탈한 왜놈들이 훼손하고 망쳐 놓았지.
사소한 하나까지도 그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야 하지 않겠어?』
MT-07! 애인과 바람 피다 (불국사농협주유소 앞) |
공기가 차갑다. 서늘할 것을 염두에 두고 두꺼운 라이딩 복장 차림을 했는데도 옷 속으로 파고든 주행풍이 차다. 군화도 마찬가지다. 발이 시렸다. 잠시 정차해서 바람막이 잠바라도 하나 더 입을까 고민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전 09시를 전후해서 차츰 따뜻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체한 윈드 스크린 덕분에 이전에 비해 약 70% 정도 주행풍을 차단할 수 있어 견딜 만했다.
그럼에도 공기가 서늘하다. 이럴 때는 객기를 부려서는 안 되는데. 헬멧 안으로도 찬바람이 침투해서인지 몇 차례 재채기를 토해낸다. “이런 썅**!”
달리는 와중에 왼쪽으로 영천시 신녕면 소재의 ‘성운대학교’가 보였다.
‘벌써 영천을 통과하고 있구나.’
지난 토요일에 장모님 댁에서 영천을 생활 기반으로 있는 넷째 처제 가족을 만났다. 언제 만나도 유쾌하고 상쾌한 처제인지라 늘 반갑다.
『성운대라고? 저런 대학이 있었나?
운이 좋았으면 내 이름과 같을 뻔했네.
대학다운 대학으로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길.
학교를 찾는 젊은 영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길.
교육계에서 지방대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
09시 05분 무렵, 군위군 의흥면 동부로 1040번지 소재의 의흥휴게소를 들러 잠시 쉬었다. MT-09 부터는 크루저 기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MT-07엔 그 기능이 없다. 때문에 스로틀을 감고 풀고를 반복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손이 저린다. 전기가 통하는 양 심하게 저린다. 1시간 반 터울로 쉬어야 한다.
휴게소엔 나보다 앞서 휴식 중인 라이더가 있었다. 바이크 넘버를 봤더니 서울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내 뒤로도 3대의 바이크가 휴게소로 진입한다.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탈 수 없기에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만 가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의흥휴게소가 적절한 곳에 위치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라이더들이 많이들 찾는 장소인 듯싶다. 에너지바(자유시간 등)를 사서 준비해 간 커피와 같이 먹는다. 당을 적절히 보충해야 한다.
휴게소 매장을 찾았던 그 일행들이 밖으로 나와서는 내 오토바이를 돌아본다. 그냥 구경하는 것이리라. 근데 왜 내 시선이 계속 그쪽으로 가면서 신경이 쓰이는지? 짐짓 못 본 척하며 여행수기를 메모한다. 굳이 시선이 가는 이유는 그들이 타고 온 바이크 때문이다. 3대 모두 리터급 이상이었다. 그들 바이크보다 한 단계 아래인 미들급 MT-07을 달리 구경할 것이 뭐가 있겠냐 싶다만, 혹시나 평가절하식의 비교를 당할까 싶어 제 발이 저린 것이다.
주변 구경하며 생각 없이 군위군을 지나 의성을 통과할 적에 문득 마늘이 떠올랐다. 의성군 마늘이 잘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고, 그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신호를 기다리던 차에 왼쪽으로 마늘 집판장이 보였다. 바이크를 길 바깥으로 붙여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의성을 통과하면서 납득이 안 되는 의아한 장면을 보았다. 도로에 세워진 상징물 때문인데, 그 상징물이 마늘이 아니라 고추였기 때문이다. ‘왜? 청양도 아니면서?’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그 상징물을 의성을 통과하며 두 차례나 봤다. 이거 뭐지? 왜 고추를?
『고만고만한 녀석일수록 얼매나 무섭게 맵든지.
추수철 막걸리 안주로 고추 한입 된장 한입 김치 한입이 최고지.』
의성마늘을 만나다! (의성군 통과 중 신호를 기다리며) |
오전 10시를 향해 시곗바늘이 달음박질 중일 때 주행풍이 그제야 포근하게 느껴진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조금 전까지 이빨이 딱딱거릴 정도로 추웠는데 말이다. 어떻든 다행이다.
10시 10분 무렵, 첫 경유지인 ‘안동소주 전통음식 박물관’에 도착했다. 06시 30분에 출발했으니 3시간 40분 걸렸다. 앞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돌아보고 있었고, 내 뒤로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엔 외국인 커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안다. 안동소주가 독주라는 걸. 그런데 말이야.
동시에 명품 술이기도 하지.
소주에 안동의 향과 미를 담고 나라의 품격까지 담았어.
주의할 것은 그럼에도 과음하면 건강에 해로워.』
안동소주 제조과정 모형물 |
박물관에는 안동소주의 유래와 역사, 소주의 유래 등이 잘 소개되어 있었다. 안동소주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을 보여주려는지 모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일을 하는 사람과 가문을 소개하는 곳도 있었다.
그 외에도 박물관에는 국내 김치의 종류, 연회식에 올려지는 음식 차림, 궁중음식, 결혼식에서의 상차림 등도 소개하고 있다. 저렇게 김치 종류가 많았던가 싶다. 궁중음식 모형을 보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다는 말뜻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 73세 생일상 (사진 아래 오른쪽이 조옥화 여사) |
지난 1999년 4월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적에 73세의 생일을 맞았던 모양이다. 당시 전통음식에 조예가 깊었던 조옥화(안동소주 전통음식 박물관 창시자) 여사가 한국을 대표해서 여왕의 생일상을 차렸다 한다. 여왕은 눈으로 보면서 놀라고, 음식을 맛보며 감탄했단다.
나중에 친서를 보내 조옥화 여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박물관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귀한 분에게 한국다운 한국을 알렸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리(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반했다지.
자랑하고 싶지 않았을까? 여왕께서도
베프(절친)에게 깨알 홍보를 하셨을 거야.
스스럼없었던 여왕이시어! 만세에 걸쳐 존경과 사랑을 받으소서.』
각종 한과와 여러 음식 명장도 소개하고 있다. 전시된 내용 중에 안상학이란 시인이 지은 ‘안동소주’라는 시도 걸려 있다. 시를 읽으니까 자연스럽게 안동소주를 맛보고 싶어진다. 참자. 호주머니가 가볍다. 또 구매하더라도 바이크 사이드백이 한가득이라 가져갈 방법도 없다. 택배로도 된다는데? 그래도 참자. 경비를 절약해야지.
전시관에서 부용대까지 27km 남짓이었다. 연휴라서 도로 사정이 좋은 것인지, 연휴이기에 부용대 등 관광지를 찾은 사람이 많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휴일이 아닌 평일에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그때 비교하기로 하자.
부용대는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근접한 도로 쪽에서 오른쪽으로 진입해야 한다. 부용대 주차장 인접한 곳에 벼가 영글고 있었다. 익숙한 냄새다.
벼가 익고 있다(화천서원 주차장 입구 쪽) |
익어가고 있는 벼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빗대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표현으로 사람됨이 깊을수록 자신을 절제하고 낮춘다며 선조들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 농사일을 거들면서 익어가는 벼를 보고 자랄 적에 배고픔과 배부름으로 생각했다. 원초적인 느낌과 생각인데, 오히려 그게 더 중요하고 무거워 보인다.
부용대는 화천서원을 왼쪽으로 보면서 약 350m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화천서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화려하기보다는 부용대를 품어 수려함이 깃들었더라.
천년을 지켜나갈 한국의 서원이려니
서로 묻고 답하며 학업을 증진했을 이곳에서
원생들이 큰 꿈을 꾸었으리라.』
이 서원은 정조 10년인 1786년에 건립되었다. 건립 이유는 겸암 류운룡(1539 – 1601)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이 위패를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란다. 흠모와 위패와 인재 양성이라는 단어는 각지의 서원을 찾을 때마다 쉽게 보게 된다. 지금의 일부 학교들처럼 과거에도 돈 벌 용도로 만든 서원은 과연 없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서원 입구 쪽에 카페가 있는데, 연휴 동안 찾은 사람이 많았는지 일부 품목은 재료가 떨어졌다는 얘길 들었다. 그렇게나 많이들 찾았단 말인가?
화천서원! (마당에서 보면 건축물이 동서남북으로 위치했다) |
서원을 돌아보다가 중앙 건축물 왼쪽 서원 문짝에 ‘학생, 제관실’이라는 한자가 붙어 있었다. 대충의 뜻은 짐작이 되는데, 정확한 뜻이 뭘까?
부용대에 올랐다. 절벽에 자리 잡은 정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연꽃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안내판이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연꽃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하회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이기에 그 이름을 붙였다 한다.
『부용대를 무대 삼아 류성룡 형제가 우애를 다졌다지.
용의 기운을 품은 부용대가 이리도 장관일 줄이야.
대체 무엇이 이 나라 산수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낙동강이 마을을 품고 휘돌아 지나간다) |
언덕에서 하회마을과 마을 앞 민송정 숲, 그리고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도는 낙동강의 장관을 즐길 수 있다. 그 모습이 꿈틀거리는 용을 보는 듯하다. 류운룡, 류성룡 형제가 이곳 부용대를 무대 삼아 우애를 다졌다 한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1번 주차장까진 4km 정도 거리였다. 주차장 도착 1.5km 지점부터 차량 증체가 극심했다. 오토바이 좋은 것이 뭐겠나! 오른쪽으로 바짝 붙여 순식간에 진입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편할 수가!
『하늘을 품고 산과 강을 품었다가
회(回), 품고 돌아 흘러 그 정기를 쏟아내 이룬 마을.』
사람 반 차량 반으로 하회마을 주차장이 만원이었다. 외지인 성인 1인 기준으로 입장료가 5천 원이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으니 수익만도 엄청나지 싶다.
1번 주차장에서 입장권 판매소까지도 제법 멀다. 그 중간에 마을 장터가 있다. 판매소에서 하회마을까지 또다시 1.5km 올라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셔틀버스가 있었다. 안내판에는 10분마다 출발하고 2분 정도 소요된다는데, 관람객이 붐벼서인지 거의 2분 단위로 셔틀이 돌고 돌았다.
장터에 사람이 붐볐다 | 안내도 옆에서 설명하는 분이 탈놀이 구경하러 가라 말씀하셨다. |
마을 입구에서 지도를 보며 본격적인 구경을 하려던 직전에 안내하는 여자분이 곧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고 알려주었다. 14시에 공연을 한다는데 15분 전이었다. 구경하려면 당장 가란다. 조금만 늦어도 인파에 밀려 입장할 수 없다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공연장(하회별신굿 탈놀이 전수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5분만 늦게 도착했어도 입장 못 할 뻔했다.
공연을 즐기는 관람객! 발디딜 틈도 없다. |
출연자의 설명에 따르면, 별신굿은 신과 인간이 하나 되어 펼치는 탈놀이 마당이라 한다.(1시간 동안 웃고 손뼉 치며 탈놀이를 관람했지만, 신과 인간이 하나 된다는 설명 부분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부분에서 그렇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한 번 더 봐야 하나?) 그리고 마을 입장권에 인쇄된 안동 하회마을은 이렇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르기에 하회(河回)마을이라 한다. 국가 민속 문화재이고, 행정구역으로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다.
14시를 넘기면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관객이 몰렸다. 출연자가 무대 아래로 사람들이 앉게끔 장내를 정리한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 염통 없는 양반...”
“.... 아제는 염치가 있는 겨?”
‘공연 도중 관람객으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처녀탈 착용 출연자)를 『걸립』이라 하며, 돈을 주는 사람의 힘을 빌어 덕과 복을 받으려는 신성의 표현’
공연장 | 파계승이 처녀를 희롱하다 | 관객이 함께 즐긴다 |
입장료 5천 원은 탈놀이 공연료라 생각하기로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고 상쾌한 공연이었다. 해학과 풍자가 넘실거렸다. 파계승이 처녀를 희롱하는 무대는 처녀탈을 착용한 출연자의 대사가 없기에 자칫 지루하거나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실력들이 넉넉했다.
『탈놀이로 흥에 물들고 신명이 났다네. 불알을 딸 줄이야!
놀이 한마당에 신분귀천이 어디 있고 남녀노소가 어디 있을까.
이토록 우리 문화가 귀하고 귀함을 자랑스럽게 배워간다네.』
백정이 소를 잡아 소 불알로 대중을 희롱하고 양반을 놀리는 장면도 신명 나고 해학이 넘친다. 공연 도중에 당연히 관람객을 무대로 나오게 해서 함께 흥을 돋우는 순간도 있다. 당연히 그렇게 구성되어 마땅한 순서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다. 탈놀이를 통해 과거 계급사회와 양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입장료 5천 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공연 후에 하회마을을 빠르게 돌아보고 셔틀버스(15시 40분)를 타고 되돌아 나갔다. 마을 고택들을 돌아볼 적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입장권을 구입하고 차들이 마을 안까지 진입하는 것을 보면서 당연히 주차장에 주차하고 입장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를 나무랐다.
하회마을 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싶어 부용대를 방문했을 적에도 따로 식사하지 않았다. 장터를 찾았을 적에 많은 사람이 매점이나 식당을 이용 중이라 문전성시였다. 그들과 어울려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장터국밥이 무려 1만 2천 원이었다. 닭찜 요리가 매인이었는데, 1인 식사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가져온 빵과 사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한 것을 밑천 삼아 병산서원까지 돌아보고 숙소에 들렀다가 그 주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1만 2천 원 장터국밥! 마음이 상했다. 1만 원이었다면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어울려서 먹었을 것이다. 장터는 민중의 터전이다. 서민이 살아가는 곳이고 회한과 삶의 질곡들이 넘치는 곳이다. 때문에 낮은 이들이 찾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장터마다 1만 원 이하의 메뉴가 전국적으로 많다. 그래야 한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운 터전이어야 한다. 5천 원짜리 칼국수를, 5천5백 원짜리 콩나물국밥을, 8천 원짜리 소고기국밥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적할 것이 있다. 하회마을 입구에 주민이 붙인 현수막엔 전동차 등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홍보 중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인 마을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호소였다. 그런데 마을 중간중간에 버젓이 전기자전거와 전동차로 마을 투어를 해주겠다며 영업 중인 사람이 많았다.
하지 말라는데? 마을 주민이 아니라 그들은 외지인일까? 아니면 주민이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일까?
16시 10분 무렵 병산서원에 도착했다. 하회마을 1번 주차장에서 3km 거리였다. 문제가 있었다. 진입하는 도로 중간중간이 비포장이었다. 순간 긴장했다. 내 바이크는 결코 비포장도로를 달리도록 설계가 되지 않았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과 강을 거느렸고,
산군님도 머리 조아리며 천자문을 배웠을
서원 중의 서원 병산서원
원 없이 공부하셨을 선현들이 부럽네라.』
병산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기에 이 서원만 등록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선시대 서원 중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같이 등재되었다. 병산서원은 그중 하나였다.
세계문화유산인 병산서원 |
등록 이유를 살폈다.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등재 기준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었다고 설명이 붙어 있었다.
병산서원 주변에도 연휴를 가족 단위로 보내려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웃고 즐기며 가족끼리 여가를 만들고 있는데, 혼자 바이크로 여행을? 이거 반성해야 하는 건가?
서원을 걸어 나오면 바로 앞에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낙동강을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서원은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이다. 또한 조용하기까지 하다. 공부 외에 무얼 하겠나?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이러한 환경과 여건은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불문이지 싶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조건으로도 문화적 전통 등등의 어려운 용어보다 이것이 더 쉽고 간결하고 명확한 것이 아닐까? 나 홀로 그렇게 생각했다.
해가 기울고 있어 병산서원 탐방을 1일 차 마지막 일정으로 정리했다. 17시 15분 무렵 ‘안동 킹 모텔’에 도착했다. 7층 건물이었고, 5층부터 7층까지가 모텔이었다. 데스크는 5층이다. 예약자 이름을 밝혔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701호 열쇠를 건넨다. 바닥난방을 선택했기에 침대가 없었다.
방에 들어가 둘러보고 이상함을 감지했다. 우선 성인 남자의 속옷과 양발이 옷걸이에 걸려 있고, 종이가방도 보였다. 그 안에는 과자류 등 여러 물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씻고 식사하러 내려가면서 무슨 사정인지 물어보기로 하고, 바닥이 차가워 데스크에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데스크죠?”
“네! 손님.”
“저기 바닥난방은 자동으로 되나요? 아님 조작을 따로 하나요?”
“지금은 난방하는 시기가 아닌데요.”
“네? 난방을 안 한다고요?”
“네네. 지금은 난방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아니! 난방을 안 하면 어떻해요? 안 하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침대가 있는 방으로 골랐죠.”
“화장실에 가시면 변기 왼쪽 아래 밸브가 있는데, 반쯤 열어두시면 방이 그런대로 미지근해질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통화하고 주인이 일러준 데로 화장실 변기 옆 밸브를 반쯤 열었다. 그러고는 샤워하고 식사하러 나섰다. 마침 7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인 아줌마를 만나 방에서 발견한 속옷 얘길 건넸다. 앞서 투숙한 손님 소유지 싶었고, 다시 투숙하러 오는 것인지 가족들에게 전화로 묻는다.
방으로 안내해서 TV 앞에 모아둔 속옷과 종이가방을 보여주었다. 아줌마가 확인하고는 내가 묵을 방을 옮겨주겠단다. 졸지에 다른 방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풀어 헤친 바이크 사이드백에 주섬주섬 물건들을 욱여넣고 챙겨서 내려갔더니 510호에 묵으란다. 다행스럽게도 그 방엔 침대가 있었다.
1박한 안동 킹 모텔에 준비된 물품들을 보면서 다시금 해남에서 묵었던 호텔이 떠올랐다. 콘돔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호텔에도 모텔에도 콘돔이라니. 놔두지 못하도록 법률이라도 제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여 본다. 그러잖아도 출산율이 지나치게 낮아 이 나라가 인구 소멸국가 반열 제일 앞줄에 섰다는데 말이다.
『안동에서 1박 위해 찾은 모텔에 가지런히 놓인 너! 콘돔아!
동심의 연못에 파장을 일으키는 너! 콘돔아!
킹? 아냐! 아니지! 백성이 있어야 왕 노릇도 하지 이놈아!』
수건과 헬멧 사이에 그놈이 보인다 |
2일 차다. 30분쯤 여유를 부린다. 첫 목적지인 선성수상길까지는 모텔에서 21km 거리라고 내비가 일러준다. 첫날처럼 너무 일찍 나서면 싸늘한 공기만큼 싸늘한 모습으로 싸늘한 관광지를 처연하게 돌아보지 싶어 07시에 천천히 나섰다.
선성수상길에 가까워질 무렵, 오른쪽으로 보이는 저수지 또는 호수에서 아지랑이가 피었다. 급히 바이크를 세우고 사진에 담는다. 처음 바이크를 정차했을 적엔 그것이 안동호일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선성수상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곳에서 몇백 미터 더 진입했더니 더 넓은 호수가 나타났고, 도로 쪽 표지판에 ‘안동호 수상레저 마린’이라는 글자를 보고서야 안동호인 줄 인지한 것이다.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안락하고 편안한 연휴의 쉼을 물려두고 찾아왔지.
동녘 해가 뜨는 하늘 아래 안동호와 아지랑이가 썸을 타더군.
호호호! 내가 다 봤지롱. 뽀뽀하는 모습을!』
아지랑이가 춤을 춘다 | 선성수상길 안내도 |
수상레저를 보고 수상길이 뭔지를 감 잡았다. 호수 위로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만들었다는 건가? 그랬다. 선성수상길은 안동호 한쪽 가장자리 방향 호수 위로 데크를 놓았는데, 그 길이가 무척 길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라고 감탄하며 데크를 따라 걸어갔다.
『선성현? 사실 잘 모르겠어.
성인(聖人)의 이름인가? 아냐. 마을 이름이지 싶어. 안동 선성현.
수면 위로 아지랑이 피었는데, 안동호였어.
상상이나 했겠어? 호수 위로 길이 있다는 것을.
길 따라 호수를 걸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그리고 선성수상길은 안동선비순례길 관광지의 하나였는데, 주변으로 한국국학진흥원과 유교문화박물관, 선성현문화단지, 호반자연휴양림, 한국문화테마파크, 세계유교문화박물관, 친환경경관단지 등 무수한 관광지가 널려 있었다.
그러니까 싸늘한 관광지도 아니었고, 이른 시간임에도 찾아오는 이가 많아 처연하지도 않았다. 결국 정보 부족으로 나 홀로 무식함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데크를 따라 안동호로 나아갔다. 넓고 고요한 호수 위로 아지랑이가 기분 좋게 어지럽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표현하는데, 안동호 위의 아지랑이도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러면서 좌와 우로, 또 아래위로 가볍게 흔들거린다. 치명적으로 매혹적이다. 여인의 춤사위가 저러하다면 나는 한눈에 반했으리라.
선성수상길을 걸으며 아지랑이 공연을 감상하다 |
그 아지랑이가 조금씩 천천히 흩어져 간다. 사라져간다. 08시에 가까워지면서 아지랑이 키가 줄어든다. 아이에서 성인이 되었다가 허리가 굽어가는 노인으로 변한 것인가! 그 모습마저도 아름답다. 예쁘기까지 하다.
『아이인 줄 알았는데, 소녀였구나!
지금 헛것이 보이는 건가? 저 숙녀는 대체 뉘신지?
랑(낭)자! 뉘시길래 이토록 곱소. 님아! 그대로 있어 주오.
이렇게 나이 든 그 모습마저 아름다우니 여전히 가슴이 뛰누나.』
선성수상길에서 예끼마을이 먼 줄 알았는데 바로 코앞이다. 앞은 기와로 된 전통가옥이고, 그 사이로 마을 길이 있다. 담벼락과 길바닥에 예술인들이 정성 들여 그림을 수놓았고, 그림을 따라 올라갔더니 그림의 끝에 선성수상길을 배치했다. 화룡점정! 선성수상길을 방문하고자 많은 사람이 찾고 있기에 예끼마을이 그 덕을 보는 듯싶다.
예끼마을 담벼락과 길바닥 그림들 |
선성수상길에서 5km 거리에 도산서원이 있다. 찾아가려면 산과 호수 사이로 놓인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참, 그리고 천천히 들어가야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도 이렇게 꼬불꼬불했었지.
병산서원과 마찬가지로 도산서원 역시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서원이 조선 사회에 성리학이 정착하면서 사림 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 교육기관이라는 것은 국사 시간에 배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유산인 도산서원 | 전경 | 매화나무 |
안동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다만, 19세기 후반 서원 철폐령에도 영남 유학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중요성을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또는 배웠음에도 잊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도산서당으로 들어가기 전, 뜰에 매화나무가 가득하다. 어쩌면 1년 내내 매화향이 넘실거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궁금하다. 이 매화나무가 과거에도 있었을까? 근래에 정비하면서 심었을까? 어느 쪽일까?
도산서원에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했던 기숙사가 있단다. 동재와 서재로 나뉘는데, 전교당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이 동재(박약재)이고, 왼쪽이 서재(홍익재)이다. 역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동재(박약재) | 서재(홍익재) |
기숙사는 또 있다. 건물 왼쪽으로 농운정사라는 기숙사가 있다. 퇴계의 제자들이 공부했던 곳이라 한다. 동재 서재로 나눈 것처럼, 농운정사도 세 부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동쪽 ‘시습제’라는 마루는 공부하는 곳. 서쪽 ‘관란헌’마루는 휴식하는 곳. 마루 뒤쪽 ‘지숙료’에는 서당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머물렀다 한다. 해석이 뭐 이렇지? 학생들이 머무는 것이야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지 않나? 서당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꼭 지숙료에만 머무나?
도산서원 앞에도 역시 안동호가 펼쳐져 있다. 뒤로는 산이 감쌌고, 앞에는 호수가 열렸으니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새소리와 귀뚜라미 울음 등 생물들의 화음이었을 것이다. 달리 공부 외에 무엇을 했을까 싶다.
도산서원 앞 안동호 |
『도무지 가늠할 길 없는 민족적 교육 열기를
산과 호수가 감싸고 있는 도산서원에서 감탄하며 다시금 듣게 된다.
서재에서 퇴계께선 무슨 어떤 생각하시면서 후학양성 했을까!
원래의 품격과 품성이 서원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10시 이후이지 싶다. 도산서원 매표소 앞 주차장이 붐볐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장이 있지만, 누구든 먼 곳에 가려 하겠나. 안동시 종합 관광 안내지도 앞에 리터급의 BMW 오토바이가 보였다. 대형 관광지도인지라 내가 안동시의 어느 곳을 돌아보았는지 살펴보고자 그 바이크 있는 쪽으로 갔다. 지도상에 나타난 안동호의 규모가 의외로 크고 넓었다. 대단한 넓이구나! 생각하는 도중 내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그 오토바이 언제까지 주차할 거예요?”
BMW 오토바이가 내 소유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렇겠지! 라이딩 복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니 그랬을 수 있다.
“제 오토바이가 아닙니다. 제건 반대쪽에 있습니다.”
“아! 본인 소유 아니에요?”
안동시 대형 관광지도 (아래 왼쪽에 BMW 바이크가 있다) |
짜증이 났다. 화가 난 이유는 그 사람이 오토바이 소유주를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왜 당신이 오토바이를 주차선 안에 주차해서 다른 차량에게 불편을 주느냐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인간이 바로 빌어먹을 놈의 자식이다. 유료 주차든 무료 주차든 오토바이도 주차선 안에 당당히 주차할 수 있다. 무슨 상관인가? 유료면 요금을 지불하면 되고, 무료면 모두 같이 사용하는 것이지 말이다.
서원을 다 돌아보고 바이크를 출발시키려고 준비 중인데, 매표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양반이 내게 다가오더니 그곳에 바이크를 세우지 말란다.
“왜 그러세요?”
“그곳에서 도산서원 안내도를 촬영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기 세우면 안 됩니다. 촬영하는데 방해 됩니다”
바이크를 세운 다음 나도 안내도 앞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했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안내도에 기록된 글자가 너무 작아 누구든 가까이 가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바이크는 한참 뒤에 있었다.
“이보세요. 저도 매표소에서 입장권 사서 구경하고 나왔거든요. 방해 안 돼요. 무슨 방해가 된다고. 그리고 이제 출발할 겁니다.”
이 사람의 인식에 화가 났다. 오토바이와 그 소유주를 얕보는 것이다. 내가 따지는 목소리로 항의했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세상에는 별사람이 다 있다는 걸 명심하고 화내지 말자 다짐했다.
10시 45분 정도인 걸로 기억한다. 일광까지 검색했더니 거의 오후 15시 도착으로 나왔다. 출발을 서둘렀고, 점심도 건너뛰고 중간에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달렸다. 과속은 삼가면서 바이크의 특성을 잘 살려 달리고 또 달렸다. 다행스럽게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경주에서 약간 밀렸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중간에 연료를 채운 것을 제외하면 거의 240km 거리를 휴식도 없이 운전했다. 매우 다행하게도 아무런 사건이나 사고 없이 14시에 도착했고, 도착할 무렵에 비가 내렸다. 가방 정리를 하고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포착해 세차장에서 바이크 목욕을 시켰다. 즐겁고 흥겹게, 그러면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는 행복한 남자다. 나는 행복한 중년 남자다. 바이크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