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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보성 여행기 - 1편 / 벌교 홍교와 소설 태백산맥, 고된 삶)

탁왕 2024. 10. 28. 11:15

* 1편 - 1일 차(보성 여행기 / 벌교 홍교와 소설 태백산맥, 고된 삶)
 

벌교 홍교,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1일 차(2024. 10. 25. 금)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여행 준비 과정 기록은 건너뛰자! 아내가 집에 없기에 1일 차 아침 출발 전에 큰딸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딸들은 세월을 따라 건강하게 성장했고, 숙녀가 되었다. 아빠 눈엔 눈깜짝할 시간이었다. 세상의 젊은이들이 딸을 볼 적엔 아리따운 아가씨겠지만, 여전히 옹알이할 적의 어린 생명으로 보인다. 손바닥 위에 아이를 올려두고 따듯한 물로 엉덩이를 씻기던 그 순간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출발 전 애인의 모습, 뒷 자리에 놓인 장갑을 보온성 장갑으로 바꾸려다 그만두었다.

 
 
무더위가 언제 물러갔을까? 그렇게 패악질을 부렸는데 말이다. 환절기인가 보다. 새벽 공기가 제법 차갑다. 전날 준비한 보온장갑을 착용할까 고민하다가 아침 기온이 15도 정도라는 딸의 말에 기존의 장갑으로 바꾸었다. 보온장갑이 손을 보온하는 반면, 스로틀을 감을 적에 미끄러운 느낌이 있어 운전할 적엔 맘에 들지 않는다. 주행풍은 견디는 것으로 하자!
 
06시 40분, 집을 나섰다. 습도가 조금 높다는 것 외엔 날씨를 탓할 것이 없어 보인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가을 하늘이 길손을 마중한다. 어둠이 가시면서 사위가 밝아왔다. 일광에서 장안으로 넘어갈 적에 차선 밖에 멈춘 것으로 보이던 SUV 차량이 급격하게 2차선으로 합류하면서 들어왔다. 하필이면 꼭 내 앞이다. 방어 운전! 덕분에 사고를 피했다. 클락숀을 울렸더니 그 차량도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30대의 덜떨어진 내 모습이라면 그 차를 막아서고 정차한 다음 욕설을 퍼부었을 것인데, 중년 남자인 지금은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하면서 그냥 갈 길을 간다.
 
시내를 통과하기 싫어 삼랑진역을 경유지로 찍었다. 목적지의 하나인 벌교 홍교까진 시내를 통과할 때보다 15분 정도 더 소요하는 걸로 나와 미련 없이 돌아가기로 한다. 『통과할 결심』을 했다가는 출근 시간대라 틀림없이 교통지옥 부산을 경험하게 된다. 『회피할 결심』을 한 것이다.
 
양산에서 삼랑진을 향해 달리는 동안은 추웠다. 물론 산을 넘어가는 주행 여건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계절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반면, 산과 들과 계곡에서 만나게 되는 공기가 화창하고 깨끗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진주 진양 농협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고 잠시 쉬다. 

 
 
진주 진양 농협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운 다음 화장실을 찾았다. 집을 나설 적에 급한 볼일을 해결했는데도 급똥이 찾아왔다. 바지에 지릴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할 것이다. 괄약근을 뚫기 위해 비비적비비적하는 놈을 막고자 엉덩이를 부여잡고 어기적거리면서 걷는다. 화장실이 청결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악취는 없었다. 그런데 불행일까? 다행일까? 화장지가 딱 6칸 남아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것의 두 배가 필요한데 말이다.
※비비적비비적하다: 좁은 틈으로 빠져나오려고 자꾸 비집다.
 
11시 43분, 보성 벌교 홍교(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에 도착했다. 내가 알고 있는 홍교는 조정래 작가의 걸작 태백산맥과 관련이 있다. 소설에 나오는 『김범우』가 홍교를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 소설을 읽고 궁금했는데,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홍교가 대교까진 아니더라도 규모가 있는 다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홍교 안내판에도 소설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 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태백산맥 1권 257쪽)』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상상한 홍교와 현실은 달랐다.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여겼었다.

 
 
기록을 보면, 벌교 홍교는 벌교읍에 있는 조선 시대의 화강석 석교라 하고, 길이는 27m, 높이 3m의 홍예(?)를 3칸 연결하여 축조했다 한다. 홍예가 뭔진 모르겠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이 있긴 한데, 찾아보길 희망한다. 특이한 점은, 이 다리를 위해 주민이 60년마다 회갑 잔치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홍교는 겪어서 알 것이다. 근현대사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교훈(가르치고 일깨움)을 품었으나, 말이 없구나! 홍교야!』
 
홍교 안내판 바로 옆에 정자가 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갈 것을 명령하는 안내판이 길손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다. 메모하는 중에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누추한 옷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에 입을 벌린 모습으로 올라왔다. 인사를 드린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기 다리 있잖아요!”
“어…. 에!”
“저기 다리 말입니다. 60년마다 환갑잔치를 열어준다는데, 사실인가요?”
“저거 홍이다리에요!”
 

최종열 어르신과 대화를 나눴다. 만주에서 사셨던 분이라 궁금한 것을 물었다.

 
 
궁금해서 여쭈었는데, 동문서답이다. 다시 물어본다.
“홍의다리요? 홍교라고 하데요. 저기 60년마다 환갑잔치 열어준다는데, 왜 잔치를 하는지 혹시 아세요?”
“그냥 하는 거요!”
 
그냥 한다고? 그럴 리가?
“어르신 여기 원래 주민이시죠?”
“여기 7년 살아요.”
“7년이요? 아! 여기 주민이 아니셨다가 7년 전에 오신 거에요?”
“에!”
 
원주민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서 왔다는 거지? 싶었다.
“원래는 어디 사셨는데요?”
“만주요!”
“네?”
만주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적엔 ‘원주’라고 들렸다. 발음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만주요! 중국 만주”
“만주라고요? 아! 그러세요?”
“에! 이승만 대통령 때 해방되고 한국 왔어요.”
상상도 못 한 말씀을 하셔서 관심이 없었다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