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 연재(9월 15일 1일차 - 한글과 앵무새를 부리는 남자와 벼)
단양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이끼 터널이다. 사진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찾고 있었다. |
편의점(영천시 신녕면 소재 세븐 일레븐)을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렸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며 반긴다.
“어서 오이소”
“네! 근데 여긴 화장실이 없어요? 입구에 없다고 적혀 있네요!”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찬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랑(앙)증맞으면서 완벽한 문자를 주셔서요.』
사진 위는 할머니의 명작 글쓰기인 '없읍'이 돋보인다. 아래는 카라멜 마키아토와 얼음컵과 색시한 애인의 자태 |
편의점 출입문에 『화장실 없읍』이라고 적힌 A4 종이가 시선을 끌었다. ‘없읍’으로 메모한 분은 틀림없이 주인 할머니일 것이다. 이럴 때 ‘괴발개발 그렸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순간 어머니가 생각났다.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신 어머니께서 늦은 나이에 교회 한글반에 들어가셔서 한글을 배우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운 한글을 이면지에 연습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괴발개발 그리다: 글씨를 함부로 갈겨쓰다
“야!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그러면 밖에는 화장실이 있는가요?”
“아…. 그건 아무 곳에서나 볼일 보면 되죠”
“아! 그래요?”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냉장고에서 라지 사이즈 얼음컵을 꺼낸다. 동시에 궁금한 것을 생각 중이었다.
‘밖에서 아무 곳이나? 그렇다면 남자는 그런다 치고, 여성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여기 라지하고 레귤러는 가격 차이가 얼만가요?”
“200원 나요. 200원 비싸도 라지 선택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근데요. 화장실이 없으면 어떡해요? 그리고 봉지 커피는 어디에 있나요?”
라지를 선택하면서 물었다.
『화장실 있나요?
장시간 참았더니 터질 것 같아요.
실제 상황입니다.』
“그기 뒤에 커피 있어요. 아니 아니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에. 새벽 2시고 3시고 들어와서는 화장실을 찾아요. 물건도 팔아주지 않으면서.”
“그래요? 물건도 안 사고? 그건 너무했다.”
할머니는 편의점을 방문하는 길손이 화장실만 찾았다가 볼일 본 다음 그냥 떠나버리는 것에 서운한 감정을 넘어 화가 난 모양이다.
카라멜 마키아또와 얼음컵(2,300원)을 계산한다. 편의점 밖 쉼터에서 휴식을 가지며 메모하는 동안 인부 또는 마을 농군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편의점을 찾았다. 한참 얘길 나누더니 각자의 트럭을 타고 제 갈 길 떠난다.
한적한 시골 편의점이 아니었다. 찾는 사람이 많았다. |
한적한 시골의 편의점인 줄 알았더니, ‘한적한’은 틀렸고 ‘시골 편의점’은 맞다. 찾는 사람이 많았다. 역시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고 세상을 봐선 안 되는 것이다. 편의점 손님 중엔 어깨에 앵무새를 올리고 다니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아저씨! 저기요. 촬영해도 되나요?”
“네?”
“너무 신기해서요. 그 앵무새를 좀 촬영해도 되나요?”
“그러세요!”
앵무새는 아저씨가 걸어다녀도, 앉아도 어깨 위를 떠나지 않았다. |
『앵무새 저토록 얌전했던가?
무슨 마술을 부렸기에 어깨 위를 터삼아 놀고 있는지
새(鳥)가 아니라 반려자구나!』
휴대폰을 켰다. 아저씨가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앵무새에게 건넨다. 내가 촬영하겠다며 휴대폰을 들이댄 것에 반응해서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고마웠다.
“대단합니다. 어떻게 훈련했기에 앵무새가 어깨에서 그렇게나 자연스럽게 행동합니까?”
“앵무새는 사람을 잘 따라요. 얘는 아직 어린놈이라 더 잘 따릅니다.”
“고맙습니다. 촬영하게 해주셔서요. 진짜 대단합니다.”
“뭘요!”
군위군 효령면 소재 한적한 도로 옆 논에서 벼가 고개를 숙였다. |
군위군 효령면에 있는 한적한 도로에 멈췄다. 왼쪽으로 보이는 논에서 벼들이 무거운 고개를 숙였다. 잘 자랐다는 증거다. 물론 주변에 보이는 대부분이 논이었다. 길손에게 쉬었다 가라며 벼들이 인사하는 느낌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진행 방향 오른편엔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소속의 『밭 농업기계 개발연구센터 교육 홍보관』이 있다. 오른쪽은 건물이고, 왼쪽엔 개방형 창고인데, 여러 종류의 농기계가 보인다. 시골다운 맛과 분위기가 넘치는 동네다.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재산의 건물과 농기계 |
『벼, 고개 숙인 너에게서 고단한 얼굴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쉬는 사이에 많은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내 오토바이를 보고 그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고, 나도 안라와 무복을 바라며 손 인사를 보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도 경험한 것이지만, 할리를 타는 라이더들은 다른 기종을 타는 라이더들이 보내는 인사에 대체로 응답이 없다. 상대의 인사(무복, 안라 기원)를 무시할 의사가 없다고 믿고 싶지만, 경험을 축적하면서 할리 라이더들 상당수가 여타의 라이더를 무시한다고 믿게 되었다.
12시 7분, 문경시 동로면 소재 경천호 주변 정자에서 쉰다. 정자 이름도 경천정이다. 경천호가 평소엔 수심이 깊었을 듯한데, 방문했을 적엔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가물었다.
사진 위는 경천호 옆 정자 경천정, 아래는 호화 식단의 점심 메뉴 |
점심 겸 휴식을 제대로 하고 출발할 것이다. 빵과 사과, 토마토, 두유, 스니커즈와 자유시간, 찰떡 파이, 한약 1봉을 주섬주섬 꺼냈다. 예보가 무색할 정도로 비는커녕 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자 안은 시원했다.
『낮잠이 나에게 주는 것!
잠시 잠깐이었지만, 큰 화를 피하는 안식처』
정자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깊은 잠을 잘 순 없었다. 도로 옆이라 지나는 차들과 오토바이 소리가 소음처럼 귀를 괴롭혔다. 신기하기도 하지! 새와 벌레들의 울음은 잠을 부르는데, 기계들의 소음은 귀를 아프게 한다. 얕은 잠이었지만, 피로가 훨씬 줄었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