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2023. 12. 23.(토) 맑음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설 적의 목적지는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 너머 배내골 지나 간월재 입구의 식당이었다. 따듯한 오뎅국물과 감칠맛 나는 김밥과 김치를 떠올렸지만, 이러한 내 욕심이 추위로 좌절되기까진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광에서 장안으로 달리는 그 잠시 동안 열선양말을 착용하지 않은 발목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영하 5도였다. 추위가 열선장갑(가성비가 좋았다. 이 정도의 성능이라니!)을 뚫진 못했지만, 가장 취약한 부분인 발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계속 가다가는 후회할 것 같았다.
‘어우 씨**! 너무 춥다. 양산 배내골은 더 추울 건데, 이 상태로 계속 갔다가는 아무래도 후회할 것 같다. 안 되겠다. 목적지를 바꾸자’』
토요일 아침이다. 따듯한 방과 거실을 오가면서 한참을 고민한다. 그 생각의 중심엔 당연히 오토바이와 여행이 있다. 지난 수요일부터 휴가를 시작했고, 12월 26일까지 출근하지 않는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최소 1박 2일에서 최대 4박 5일 일정으로 전국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발걸음을 부여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추위와 눈이다. 지난 화요일로 기억한다. 보령시 사업 현장에서 근무 중인 박** 고문께서 단체 톡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것은 전체를 하얗게 덮은 눈이었다. 일반국도와 지방도를 타고 전라도 방향으로 떠나고 싶었던 오토바이 여행 욕구를 한 순간에 식게 만들었다.
『연말, 사람과 시간이 중요한 시기이지
말로써 천 냥 빚을 갚기도 하는…….』
둘째는 연말 약속이다. 지인들과 직장 선후배 동료들과 날을 골라가며 잡은 저녁 약속이 하루건너 하루꼴이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다. 서로의 속내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벽을 허물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에 여행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럴 때는 여행을 뒤로 물려야 한다. 더군다나 연말이지 않은가!
장거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기에 토요일 오전을 선택해서 가까운 곳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오전 09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최근 사들인 열선장갑(열선 양말과 자켓은 구입하지 못했다)까지 착용하고 겨울잠에 가깝게 취침 중이던 애인 MT-07을 깨운다. 곧바로 강력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엔진이 으르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서두의 글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서 목적지로 향하다가 추위 때문에 일편단심일 줄 알았던 목적지를 변경하기에 이른다. 줏대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정관으로 향하지 않고 좌천마을 입구에서 우회전한다. 나사마을과 간절곶을 돌아보는 것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추위 때문인지 토요일 오전이면 그렇게 많이 보이던 라이더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하긴, 신호를 기다릴 적에 옆 차선의 운전자들이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보긴 했다.
‘이렇게 추운데, 오토바이를? 미친놈인가? 당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눈빛이었다.
『겨울 추위만 상상하진 말아 줘!
울타리를 넘어가야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듯이
바다가 겨울과 조우했을 적에 비로소 그 장관을 보여줘
다시 못 볼 아름다움과 품격과 품위를 품었거든.』
나사마을 입구에서 우회전하며 해수욕장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쓰레기가 나를 먼저 반겼지만, 겨울 바다가 수만 개의 해를 품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와 해수욕장이 오른쪽으로, 마을이 왼쪽으로 있는 도로를 지나간다. 이 도로에 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많이 보였던 캠핑카가 단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나사해수욕장 입구(상), 수 많은 해를 품은 바다(중), 이 도로에 그렇게 많던 캠핑카가 없다니...(하) |
방파제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라이딩하면 전망과 경치 좋은 위치에 ‘ON THE MOON’ 이라는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다. 그 앞쪽으로 커다란 콘크리트 삼발이가 거센 파도를 지키기 위해 늘어서 있다. 특히 이 지점에서 많은 캠핑카를 볼 수 있었다. 어쩌랴! 역시 추위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나사마을 해안도로와 '온 더 문' |
조금 더 나아가면 나사마을에서 가장 그림이 잘 나오는 곳이 있다. 벤치와 데크가 있어 쉴 수 있는 장소라 커피와 과일 등을 챙겨 왕왕 찾곤 했다. 데크를 따라 해안이 기역자로 꺾이는 곳인데, 동해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찾은 적이 없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한번 꼭 찾아가시라.
데크와 벤치 앞으로 동해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
그곳에서 데크를 따라 왼쪽으로 50m 정도 이동하면 『나사리 해돋이 경로당』이 있다. 떠오르는 해를 거의 정면으로 받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이고, 왼쪽의 정자와 소나무가 경로당과 무척 잘 어울린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겐 그야말로 명당이지 싶다. 양쪽으로 위치 좋은 곳에 빈 건물이 도열한 부분은 옥에 티다. 영업했을 것인데, 빈 건물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명당의 이름값과 실리 중에 뭘 선택할래?
당연히 실리이지! 안 그래?』
경로당(위) 앞 도로 좌우 건물이 모두 비었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인데도... |
나사리 경로당 앞 도로에서 해안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고래 문양을 달고 있는 커피가게를 만나게 된다. 건물 옆엔 손님들이 쉴 수 있는 텐트도 두 동이 있다. 일전에 찾았을 적에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해서 먹은 적이 있었는데, 둘의 조합이 제법 괜찮았다. 영업 중이면 주문할 참이었지만, 주인장이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커피 가게(상), 호텔(중), 펜션(하) |
그 옆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온 더 웨이브’라는 호텔과 을씨년스러운 펜션 건물이 보인다. 펜션의 1층 상가가 비어 있는지 추운 겨울에 더욱 찬바람이 부는 듯하다. 상가 창문을 엑스자 모양으로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강한 바람에 깨지지 말라고 그랬지 싶다.
호텔을 지나면 평동마을이다. 평동마을에서 간절곶이 가까운데, 간절곶으로 향하는 그 해안길이 그야말로 찾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바다와 맞닿은 해안이 인간이 무질서하게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인공적인 가공물로부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 있다. 그곳으로 계속 구조신호를 보내는 듯이 먼바다로부터 파도가 다가온다. 그 너머의 바다엔 헤아릴 수 없는 태양의 빛이 담겨 있다. 이런 것을 장관이라 하지 않을까?
간절곶으로 향하는 도로(위), 해안과 겨울 바다.(아래) |
도로가 간절곶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막혔다. 사람과 자전거를 제외한 오토바이와 차량은 좌회전해야 한다. 오토바이로 좌회전해서 도로 옆에 세웠다. 길 왼쪽으로 왕호떡(1개 1천 원)과 어묵(1개 7백 원)을 파는 어르신 부부가 있다. 당연히 무허가 건물일 것이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 찾았을 적엔 분명 철거한 것으로 보였는데, 추위와 함께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겨울 바다와 잘 어울리는 왕 호떡집(위), 오뎅 국물과 왕호떡을 먹으며 겨울 바다를 감상하다(아래) |
간절곶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주차장 맞은편 아래가 간절곶이다. 이렇게 추운 데도 많은 사람이 찾았다. 너무 추워 아예 헬멧을 벗질 않았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지나가면서 힐끔거린다. 무슨 상관이랴!
간절곶 주변 풍경 |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잔디광장이 보인다. 굉장히 넓다. 그곳에서 축제라든지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봄이 돌아오면 많은 사람이 먹을 것을 챙겨서 봄바람을 즐기기 위해 가족과 같이 이곳에 올 것이다.
간절곶 이용 안내(위), 잔디광장(아래) |
도로 왼쪽엔 간절곶 공원이다. 그곳을 풍차(대형 우체통은 간절곶의 상징이고, 풍차와 등대 건물이 대표적인 건축물이다.)가 지키고 있다. 예전까진 풍차 건물 주변으로 다른 조형물이 없었는데, 온통 공룡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관광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집약한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이다. 그 너머엔 바다와 잘 어울리는 카페가 있다. 아이들이 공룡들과 어울릴 적에 아빠와 엄마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와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풍차 건물과 그 주변 스캐치 |
간절곶을 조망할 수 있는 커피숍 |
간절곶 앞의 바다는 설명이 따로 필요치 않다. 글을 만드는 실력이 미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과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그 무엇을 찾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꼭 찾아오길 희망한다. 그러길 소망한다.
『장관이다.
관찰자의 모습으로 보아도 장관이다.』
잔디광장 아래엔 화장실이 잘 관리 중이다. 디자인이 나쁘지 않다. 아마도 간절곶과 어울리는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여러 고민을 했지 싶다.
이 정도 디자인의 화장실이라니, 넉넉한 점수를 줄 수 있다. |
대형 우체통을 만나기 위해 데크를 따라 잠시 올라가다 보면 원양어업 개척비를 만날 수 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비를 세운 것은, 한국수산개발공사 남해호에 승선하다 불의의 사고로 이역만리 피지에서 순직한 원양어선원(진금철, 경남 동래군 일광면)의 개척정신을 길이 전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 9월 한국수산개발공사 사장이 설립했다 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순직한 선원의 당시 주소지가 일광면이라는 점이다.
원양어업 개척비, 일광면 사람이었던 진금철 님의 명복을 빈다. |
개척비에서 약 100m 정도만 더 올라가면 간절곶의 상징인 대형 우체통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간절곶을 찾기 위해 방문하지만, 이 우체통을 보기 위해 간절곶을 찾는 이도 있다. 이날 평소와 다른 장면이 있었는데, 대형 우체통 오른쪽 잔디광장에 여러 사람이 모여 무언가 행사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시 낭송 행사였다. 이 추위에…….
간절곶 상징 대형 우체통(위), 시 낭송 행사(아래) |
길 건너 맞은편엔 간절곶 휴게소가 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 찾았더니 사장님이 최소 2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내가 찾았을 적에 그때 비로소 문을 열었다 한다. 20분씩이나 기다릴 순 없어 커피를 마시진 못했고, 잠시 쉬면서 햇빛으로 몸을 데우면서 그들의 시 낭송을 지켜보았다.
간절곶 휴게소 |
시 낭송에서 가장 많이 애용된 시는 ‘해야 솟아라….’로 시작되는 작품이었다. 몇 사람이 연이어 이 시를 낭송했기에 찾아보았다. 이 작품은 『박두진 시인의 ‘해’』였다. 설명에 따르면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한 후의 평화로운 세계를 노래하는 시라 한다. ‘해야 솟아라’라고 하는 구절이 어떤 시보다 이곳 간절곶과 맞았을 것이다. 그래서 많이들 준비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휴게소 바로 옆엔 그 유명한 간절곶 등대 건물이 있다. 등대 외벽에 여러 종류의 거울이 걸려 있는데, 오목하기도 볼록하기도 해서 찾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간절곶 등대, 많이들 찾는 장소다. |
12시에 다가갈수록 기온이 오르고 있었지만, 추위에 더 노출되었다가는 감기나 피로에 시달릴 것 같아 이 정도로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짧은 거리를 움직이면서도 촬영을 위해 가다 서기를 반복했는데, 단 한 마디의 불평불만도 군소리도 하지 않고 동행하여 준 연인이자 애인인 MT-07에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