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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울산 주전몽돌해변, 슬도,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탁왕 2023. 11. 2. 17:30

*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2023. 11. 1.() 맑음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다. 아침과 낮의 온도 차가 심하게 출렁인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완벽한 날씨였다. 오토바이로 여행하기 좋은 날씨!

 

오늘 여행 목적지는 울산이다. 장생포 고래박물관은 두 번 이상 다녀왔기에 제외했고, 같은 관광지 범주에 있는 고래문화마을과 슬도, 주전몽돌해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대강의 일정을 잡았다.

 

알람에 맞춰 0530분에 눈을 떴다. 물론 잠은 그 이전에 달아난 상태였다. 일출 시각이 차츰 늦어지고 있고, 여행 목적지가 바로 옆 도시라는 생각에서인지 서둘러 떠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침대에서 굳이 일어나는 것을 만류하는 그런 모양새였다.

 

면도를 곁들인 세안을 하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날이 밝아오면 오른쪽 창문 밖으로 일광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인다. 0620분을 지나가면서 차츰 사위(사방의 둘레)가 본래의 윤곽을 드러낸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숙연해지는 것은

  출발한 인생 열차에 남은 정거장이 적은 때문이지

 

어둠이 걷히는 그 10분에서 20분 사이가 참 신기하다. 유년기와 소년기의 고향 시절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이 농사일을 위해 일찍들 일어나셨고, 논과 밭에서 들려주신 얘기가 있다. 농군이 알아야 할 이런저런 정보를 말씀하시면서 그 중엔 해가 올라오기 직전이 정말 어둡다는 말씀도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우면 곧 날이 밝는다는 신호니까 논밭에 나갈 준비를 그때 서둘러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어둠이 걷히는 순간.

 

아파트에서 내려다볼 적의 그림이 딱 그러했다. 신도시의 이미지가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어둠 뒤에 머물렀다가 순식간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바다 저 멀리 지평선에 물린 하늘이 차츰 붉어지다가 본연의 하늘색을 회복한다. 참 신비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신기한 것도 잠시더구나

  도시를 구성하는 빌딩과 사람이 만들어 가는 풍요로운 문화가 좋았지만

  시절을 기억하고 행복했던 고향을 대신할 순 없어

 

여행을 떠날 적이면 다문 11초라도 빨리 출발하기 위해 서둘렀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아 방과 방을 쏘다녔는데, 오늘 아침엔 넷플릭스 이두나를 시청하고 있다. 여유일까? 좀 늦게 출발해도 까짓거. 나 자신을 향한 소심한 배짱일까? 아니면 기다림일까?

 

평소보다 30분이나 늦은 07시에 MT-07을 깨웠다. 지난 여행 때와는 달리 헬멧의 세나와 내비가 부드럽게 연결이 되었다. 다행이다.

 

울산으로 향하는 길에 출근하는 차량을 살펴본다. 이 공업도시로 향할 적엔 늘 화물차와 트럭을 많이 본다. 이런 차량과 같이 달릴 적엔 긴장해야 한다. 혹여 그들의 사각지대에 걸리진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 자칫 사각지대에 놓이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한동안 출근 차량과 어울리다가 도착한 곳이 고래문화마을이다. 이런 제길! 너무 일찍 도착했다. 0755분이었다. 입장료가 있는 곳이라 여행 순서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계획 : 고래문화마을 -> 슬도 -> 주전몽돌해변

수정 : 주전몽돌해변 -> 슬도 -> 고래문화마을

 

일찍 도착했더니 직원들이 출근 전이다.

 

고래문화마을에서 주전몽돌해변(울산 동구 소재)을 검색했더니 20거리였다. 0820분 도착으로 내비가 알려 주는 것을 보면 가는 길이 원활하다는 뜻이다. 주전몽돌해변까지 약 5남겨두고 매우 위험하게 운전하는 경승용차(기아 모닝)를 만났다. 진행 방향에서 내 앞을 두 번이나 가로막으며 위협을 가했다.

뭐지?’

 

모처럼의 즐거운 내 여행길을 방해하는 너

  닝()(쓰고 난 나머지) 인간이 되려는 것이냐? 이 철없는 것아!

 

속도를 맞춰 모닝 옆으로 이동하여 운전석을 보았더니 젊은 여성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삼거리였고, 직전 차량이 두 차선에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그 모닝이 갓길로 빠지면서 우회전하는 척하다가 신호를 가볍게 무시하곤 갓길에서 직진 도로로 급격한 차선 변경을 해서 들어간다.

이런 미친뭐하는 짓이야?’

 

내비가 예언한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주전몽돌해변엔 캠핑하는 텐트가 여럿 있었다. 텐트에서 가까운 주차장 가로등 아래엔 그들이 버렸을 것으로 합리적 의심이 되는 쓰레기가 놓여 있고, 주변엔 까마귀들이 헤집고 있었다. 도착했을 적의 분위기가 상쾌하진 않았다.

 

까치와 까마귀가 다른 점은 도둑과 걸인의 차이라 할 수 있어

  마찬가지가 아니야! 검다고 까마귀를 오해하지 마

  귀인은 아니지만, 까치처럼 도둑도 아니란다.

 

주전몽돌해변의 모습, 텐트가 많이 보인다.

 

몽돌로 가득한 해변엔 인위적으로 정리한 모습은 없는 것 같다. 자연스럽다. 정리 정돈이 안 된 느낌이지만 무질서하단 생각은 들진 않았다. 울산이 각종 화공약품 냄새와 쇠를 갈아내는 소음으로 가득할 것 같은 도시인데,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났는데도 파도 소리와 새소리(갈매기와 까마귀, 까마귀도 엄연히 새다)만 들리는 장소가 산업도시와 공존하고 있다.

 

불과 수 킬로 후방에 금방 만들어 낸 승용차들이 선적을 기다리며 오와 열을 맞춰 대기 중이고, 그 앞엔 운집한 차량을 품을 거대한 화물선이 정박 중이었다.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장면인데도 울산은 그게 가능한 도시인 것이다.

번영할 것이야 울산아! 보존해야 할 것이야 울산아!’

 

메모하면서 집에서 준비해 간 커피와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사실 여행 중엔 배고픔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기상하고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기에 먹어두려는 것이다. 주전몽돌해변에서 방어진항에 있는 슬도로 향한다. 10남짓한 거리다. 슬도는 대왕암 공원 옆에 있는데, 내륙과 연결되어 있다.

 

슬퍼 보이는 문지기로 오해하지 마. 슬도는

  도도하고 콧대 높으며 용맹하면서 품위 있는 섬이란다.

 

슬도 입구 공영주차장에 도착하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느낀 것이 좀 특이하다. 에 방점이 찍힌 섬이라는 점이다. 슬도로 진입하는 길을 따라 대형 삼바리 콘크리트가 깔렸다. 그 옆으로 파도를 견디며 버티고 있는 바위들이 바다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위마다 주인으로 보이는 갈매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쉬면서 햇볕을 즐기는 중이었다.

 

슬도 주변 모습

 

방파제 앞으로 파도가 몰려오다가 부딪히기 전에 잠잠해진다. 물속에서 무언가가 파도의 걸음을 늦추는 모양이었다. 내 눈에는 파도가 천천히 다가와 방파제를 벤치 삼아 쉬는 느낌이다.

 

슬도 앞 바다 위엔 접항하려고 대기 중인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있다. 긴 항해를 마치고 쉬엄쉬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있다.

 

 

슬도 주변으로 많은 낚시객이 시간을 낚고 있다. 움직임이 없다. 다만, 섬 주위를 다니며 바삐 쓰레기를 줍는 여러 근로자의 모습만이 정중동(靜中動,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하게 다가온다.

 

슬도와 연결된 다리(슬도교)를 건너려다가 입구 오른쪽에 슬도를 소개하는 안내글이 눈에 들어왔다. 방어진항이 큰 파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데 그 이유가 슬도 때문이다. 항 앞을 가로막고 섰다기보단 항을 보호하기 위해 신의 한 수를 심어놓은 형국이다. 지난 세월 파죽지세로 몰려왔던 파도들을 홀로 감당한 용맹한 섬이다. 슬도로 인해 방어진항에 오랫동안 평화와 고즈넉함이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슬도 이모저모

 

바다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했다. 슬도 등대를 한 바퀴 돌며 바라보는 항구와 바다의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다. 울산이 아니라 외국의 어떤 항구가 아닐까? 하는 감상에 빠진다. 섬과 등대, 바다와 선박, 사람과 하늘까지 모든 것이 품위가 있다. 평화롭다. 그들이 어울려 천천히 감지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고래문화마을 입구를 지키는 MT-07, 주차장에서 울산대교가 잘 보인다.

 

 

아침 일찍 찾아갔던 장생포 고래문화마을로 향한다. 거의 20거리다. 오토바이가 울산대교를 지날 수 있다면 그 절반 거리도 안 될 것인데, 이럴 때가 정말 아쉽다.

 

고래문화마을, 방문했을 적에 어린이들이 단체로 찾았다.

 

고래문화마을은 고래박물관과 모노레일로 연결되어 있다. 최소 두 번 이상 방문했던 고래박물관은 가지 않을 것이고, 모노레일을 타고 전체 전망을 구경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보면서 만지는 것이 여행의 재미다. 그렇게 돌아다닐 생각이기에 모노레일도 이용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서 우측으로 30m 거리에 매표소가 있고, 성인 1인 기준 2천 원이다. 단체 입장 땐 11,600원이었다. 재현해 놓은 장생포 옛 고래마을을 보기 위해 꼭 입장료를 내야 할까, 고민하면서 매표소로 향했다.

여기 2천 원이요

카드는 없나요?”

있습니다. 여기요. 근데 이 티켓을 누군가에게 보여 줍니까?”

여기 고래마을은 괜찮고, 저 위쪽에 있는 웨일즈 판타지움에 가시면 보여 주셔야 입장이 됩니다.”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째는 웨일즈 판타지움이 실감체험관이라 되어 있는데, 뭘 보여 주는 거지? 고랜가? 둘째는 왜 하필이면 한글 명칭도 아니고 웨일즈일까? 관람 끝내고 돌아오고서도 왜 웨일즈인지는 알지 못했다. 고래의 영어 발음도 아닌데, 누구 아시는 분?

 

장생포 고래마을은 관광지마다 있을 법한 과거 5070년대 마을을 재현했다. 다만, 고래마을이라는 것이고 그 규모는 작았다. 굳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구경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가까운 경주에 가면 더 큰 규모와 실제 물품들로 과거 우리들이, 부모님 세대가 살았던 마을을 잘 재현한 곳이 있다. 7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번 가볼 만하다. 2천 원을 내고 불만을 품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게 바로 웨일즈 판타지움 때문이다.

 

고래마을의 여러 모습

 

고래마을에서 얻은 신선한 정보는 이것이다.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라는 사람이 1912년에 울산을 방문해서 1년간 머물렀고, 그 기간 동안 한국계 귀신고래(귀신고래도 한국계가 있나? 처음 접한 정보다.)를 연구했으며 1914년에 논문까지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이 앤드류스는 고고학자이면서 미국인이라 한다.

 

고고학자가 귀신고래를 연구했다는 것이 특이하긴 하다. 그리고 그때 연구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인디애나 존스라는 영화에도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고래마을에 앤드류스 전시실이 있었고, 각종 자료 중에 인디애나 존스에 나왔다는 정보도 안내 중이었다.

 

엔드류스 관련 전시실

 

웨일즈 판타지움은 고래마을 뒤쪽에 있다. 올라가다 보면 무궁화동산을 지나게 된다. 뭘 보여 주는 거지? 왜 웨일즈일까? 궁금해하면서 올라가 데스크 직원에게 티켓을 내밀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란다.

 

역시 짐작대로 고래와 관련된 것이었다. 첫째 방을 보곤 제주도에서 보았던 아르떼 뮤지엄이 떠올랐다.

건물이 자그마한데, 10분씩이나 보여 준다는 거야?’

 

입장하기 전에 외부를 한 바퀴 돌면서 건물 크기를 확인했다. 궁금증을 가지고 다음 방으로 이동했더니 해답을 바로 찾았다. 고래와 울산의 관광지 등을 소재로 만든 미디어 아트 실감 영상이 상영 중이었다. 8분에서 10분 정도 분량이다. 울산과 바다와 십리대밭길을 자유롭게 누비는 고래가 내내 등장한다.

웨일즈 판타지움, 미디어 영상의 장면

 

영상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턴 나 자신이 더 자유롭게 고래처럼 하늘과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십리대밭길에서의 영상은 사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고래와 함께 담았다. 2천 원을 낼 만했다.

 

아이들과 같이 웨일즈 판타지움을 찾아오면 좋을 것 같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신기해하면서 감탄할 것이다. 고래의 크기에 놀라 두 눈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 중에 고래의 꿈을 궁금해하고, 실감 영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면 나중에 그 아이 중 누군가가 이 나라에 크게 이바지하지 않을까?

 

다 돌아보았더니 12시 반이다. 고래마을과 관광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식사하러들 간다. 준비한 빵과 두유, 커피를 먹고 마셨더니 크게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 한다. 귀가해서 먹어야겠다.

 

총 주행거리: 137

평균 연비 : 23.6

(울산시를 돌아다니며, 신호등에 걸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평소 여행할 적의 연비보다 비효율적이다. 시내 주행이 아니었다면 리터당 1이상은 더 가야 한다.)

사용 연료 : 5.8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