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 연재(내 오토바이로 고향 여행하기 - 두류동과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내가 살던 고향은 중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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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475 BURGER COFFEE 건물이 과거 길손의 가족이 살던 집터다. 그 뒤쪽 위로 천왕봉이 보인다. |
신촌마을은 지금 물레방아 마을로 불린다고 들었다. 이곳에 길손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다. 물론 학교 다닐 학생이 없기에 폐교되었다. 학교 건물과 운동장과 담벼락이 여전히 길손을 반긴다. 1963년 3월 1일 개교했다가 2008년 3월 1일 폐교되었다는데, 바로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곡점에 있는 신천초등학교의 중산분교로 한 단계 떨어졌다가 폐교되었다. 그렇게 모교가 사라졌다. 외지인 출입을 막고 있는 철문과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과 주인을 잃어버린 건물이 과거의 모습을 증명하면서 추억하고 있다. 한 시절 전체 학년에 걸쳐 학생 수가 1백여 명이 넘었던 학교였다. 지역주민이 매년 학교 운동회에 맞춰 한 자리에 모여 단합대회를 했던 곳이다. 기억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가면 함께 잊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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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폐교된 중산초등학교(폐교 시점엔 신천초등학교 중산분교였다)! |
학교 바로 위가 중심이고, 다음이 중산리 중산마을이다. 길손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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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마을! 고향 중산마을 바로 아래 동네다. |
고향마을을 기록하기에 앞서 두류동을 먼저 다뤄야겠다. 두류동은 중산마을에서 더 올라가야 한다. 해발 800m가 넘을 것이다. 이 마을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초입으로 유명하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산청분소가 있다.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라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 탐방안내소에서 필요한 정보와 볼일을 해결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엔 이런 것이 아예 없었는데, 역시 천왕봉을 품고 있는 마을이어서인지 다른 곳과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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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가 있는 두류동!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졌다. |
관리사무소에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김덕성)가 근무했던 것으로 아는데, 잘살고 있겠지? 둘이서 열심히 탁구했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공기는 깨끗하고 향긋하다. 미세먼지도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청소년이었던 길손이 늙고 지친 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을 찾았기에 지리산이 기운을 보태주려는 모양이다. 두류동 주차장에 많은 차량이 대기 중이고, 메모 중에도 등반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하산 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수없이 밟고 다녔던 곳인데, 정작 나 자신이 외지인처럼 느껴진다.
『천왕봉은 단순히 지리산의 최고봉이 아니야!
왕 중의 왕인 모든 하늘의 임금이 머물 곳이 천왕봉이지!
봉오리 정상에서 세상을 보라! 당신의 삶이 새로워질 것이니!』
두류동에서 중산마을로 내려간다. 고향 중산마을은 마을 가운데를 도로가 나누고 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의 마을이다. 아랫마을 가운데를 수직(경사가 심하다는 뜻이다)으로 지나가는 도로가 있는데, 중간 지점의 도로와 만나는 곳은 경사가 심하고 계단식이다. 차량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올라갔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고향 친구인 덕순이가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앞서 찾았을 적에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친구를 찾지 않았다.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할 것이기에 하루 일정으로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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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중산마을 전경 1 |
중산마을까지 시외버스가 들어온다. 마을에서 천왕봉까지 짧은 코스를 타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3시간 3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고, 내려올 적엔 1시간 30분이면 하산할 수 있다. 따라서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 일정으로 천왕봉까지 다녀올 수 있다.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학생 전원이 천왕봉으로 소풍을 떠난 적이 있다. 일부 여학생들은 법계사까지 올랐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버스 정류소 정면으로 건물이 있다. 덕순이 형제가 음식점과 민박, 곶감 생산 등을 하고 있다. 길손이 고향을 기억하는 시작점 이전부터 민박과 식당을 운영했고, 버스표 판매까지 독점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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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중산마을 전경 2 |
정류소 왼쪽 끝에는 빨치산 토벌 기념관이 있다. 소설 태백산맥이 말해주듯이 지리산은 전쟁 때와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빨치산 근거지였다. 산이 크고 깊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작전을 펼쳐도 완전한 토벌이 쉽지 않았던 명산이 지리산이다. 어려서 그 모습을 기억하는 방식이 무기고였다. 길손의 집 아래쪽에 무기고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무기고 지붕에 올라갔고, 아지트 삼아 놀았다. 늘 놀던 장소라 창고 이름만 무기고인 줄 알았던 것이지 정말 총기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어느 시기에 커다란 자물쇠를 열고 어른들이 철문을 개방했을 적에 보관 중이던 M1과 카빈총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빨치산 토벌 당시에 사용했을 군용 장비였을 것이다.
『무기고 지붕을 아지트로 삼았을 만큼 유년기의 추억이 녹아 있었던 무기고!
기껏해야 잡다한 군용 장비가 있는 줄 알았지.
고향은 마냥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어. 전쟁터였고,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기도 해.』
주변의 가까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도 탄피와 사용하지 않은 탄환을 찾는 일이 종종 있었다. 친구들도 나도 그것들을 주워 서로 자랑했다. 심지어는 탄피를 갈아 우산대를 끼워 사제 총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그렇게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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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중산마을 전경 3. 아래 사진이 과거 길손 가족이 살던 집터이다. |
중산리는 밭과 논농사를 하던 마을이다. 천수답이기에 가난한 마을이었다. 지리산을 품은 이 마을이 어느 순간부터 등산객을 맞이하게 된다. 시외버스가 들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마을을 찾은 등산객들은 잘 곳과 먹을 것이 필요했으며, 천왕봉까지 오르는 동안 배낭을 대신 짊어질 일꾼도 찾았다.
일회성 방문이 아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많은 등산객이 버스에서 내렸으며, 곧장 마을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마을이, 아니 정확하게는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일 100%의 마을이었음에도 영농의 기억을 잃어버릴 정도로 줄어들기까진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길손 또한 중학교 때 등산객의 배낭을 짊어지고 천왕봉을 오른 적이 있다. 그렇게 손에 쥔 돈으로 원 없이 아이스케키를 사 먹었다.
소작농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렸던 주민 중 일부가 민박과 식당 일을 하면서 농사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돈을 벌었고, 금방 마을 전체로 퍼졌다. 집집마다 민박을 하기 시작했고, 등산객이 원하면 언제든 음식을 제공했다. 나물이나 한약재, 토종닭과 달걀, 곶감, 감떨게(감말랭이의 사투리), 담금술 등을 포함한 지리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약초와 특산물도 팔기 시작했으며, 어느 순간부터 논농사를 하는 가정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이 되었기에 주변 곳곳에 펜션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휴양림도 조성되었고, 야영장도 들어섰다. 수많은 외지인이 돈을 따라 중산리로 들어온 것이다.
교회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을 길 가운데에서 지리산 정상을 바라보면 금두꺼비를 닮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동네다. 볼 때마다 신비롭고 영험스럽다. 치명적인 아름다움까지 품었다.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룻밤 숙박을 요청하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부모님은 흔쾌히 아랫방을 내주셨다. 어머니께서 그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강 기억하는 장면이 이랬을 것이다.
“천왕봉에 갈라고요?”
“네! 내일 일찍 올랐다가 내려올 예정입니다.”
“내일은 가지 마소. 하늘 보니까 천왕봉에 눈이 많이 올 거 같아요. 젊은 사람이 뭔 일인지 모르겠는데, 여자 몸으로 혼자 산을 갈라는 것도 흔하지 않은데, 가지 마소.”
“뭐! 위험할까요?”
“다른 산도 아니고, 지리산 천왕봉이라 산이 깊어요. 내일은 가지 마이소.”
그 젊은 여성은 부모님의 만류를 무시하고 결국 산을 올랐다가 며칠이 지나도록 하산하지 않았다. 폭설이 그치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헬기가 나타났고, 그 헬기는 추위에 얼어서 사망한 사람을 찾아 마을 아래에 착륙했다고 한다. 망자가 바로 그 젊은 여성이었다는 얘기는 어머니께 나중에 들었다. 이런 곳이 길손의 고향이다.
계곡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어릴 적에 보았던 그대로 갖추고 있었지만, 냇가(규모가 있지만, 강이라 부르지 않음)의 모습은 달라졌다. 큰비가 오면 바위들이 움직였고, 그때마다 아지트로 삼았던 동굴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고 또 새로 생겼다. 시간을 잊고 놀았던 장소들이 냇가 이곳저곳에서 꼬마들을 기다렸다. 냇가 반대편으로 연결된 다리 중앙에 선다. 천왕봉을 올려다본다. 웃고 있다. 인자한 얼굴을 품은 금두꺼비를 닮은 천왕봉이!
관광지로 변한 중산마을 여러 곳에 펜션이 들어섰다. 두류동으로 올라갈 적에도 교행이 되지 않는 도로 우측 아래에 펜션과 야영장 여럿을 볼 수 있었다. 토착 지역민은 외부로 나갔다가 외지인이 되어 가끔 고향을 찾는다. 외지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경로로 중산리에 자리를 잡았고, 서서히 원주민이 되어간다. 원주민 옷을 입은 그들이 외지인 옷을 입은 원주민을 반기고 있다.
『원주민과 외지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민이었던 자가 타향으로 떠났다고 외지인일까?
민증(주민등록증)을 바꾸고 터를 잡고 산다고 하여 원주민이 되는 걸까?』
NO 475 버거를 운영하는 혁이(가명)를 만났다. 코로나 이전까지 지리산 민박 식당을 했다가 코로나 이후 업종을 바꾸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고 아재! 우째 오셨어요? 아니…. 어떻게, 오토바이 타고 오셨어요? 복장이!”
옷차림을 보고 금방 알아본다.
“잘 있었어? 맞아요. 오토바이를 타고 왔어요. 배가 고프진 않지만, 온 김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면 하는데 햄버거 중에 뭘 주문하면 되겠수?”
치즈버거를 권하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이 결제한다.
“밖에 있을 거니까 말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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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과 교회가 보인다. 사진 아래는 점심으로 주문한 치즈버그와 아이스아메리카노! |
한창 메모하는 중에 혁이가 직접 가지고 나왔다. 반가웠다. 평소라면 절대로 주문하지 않을 햄버거이긴 하지만, 어떻든 식사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는데, 그런 결정을 한 어머니에 대해 혁이가 격하게 칭찬한다. 잘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딱히 반론할 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혁이 가족은 식당 외에도 자연휴양림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기에 그 경위가 궁금해서 물었다. 차분히 소식을 전하는 혁이 얼굴에서 고뇌와 고민과 결단의 무게가 느껴졌다. 코로나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고향을 등질 생각까지 했었다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이 오롯이 실려서 내게 날아왔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그 모습이 어찌 차분하기만 하겠는가! 가사의 내용처럼 혁이가 웃는 것이 정말 웃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을 전했기에 그 내용이 오염될 것을 예방하고자 여행기에는 담지 않는다.
“식당을 하다가 햄버거 가게로 업종을 바꾼 것은 정말 대담한 결정이다. 이거 아무나 할 수 없는 거야. 나였다면 틀림없이 보따리 싸 들고 고향을 떠났을 거다. 그런 결정을 한 것을 보면 혁이는 홍씨 집안 남자들에게 별로 없는 담력이 남다른 사람이지 싶다.”
친구들을 포함한 마을 일과 가족사에 대해 대략적이지만, 구체적인 소식도 들었다. 형수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고생 많았다. 대단해. 그렇게까지 힘들었을까 싶었는데, 훌륭하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손님이 계속 가계를 찾는다.
“들어가 봐라! 손님 왔잖아.”
“괜찮아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손님 응대를 부탁하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길 나누었다. 벌써 떠날 시간이다. 13시를 넘겼다.
“오토바이 구경할래?”
“몇 cc입니까?”
“800cc이고, 90마력이 좀 넘어.”
“할리에요?”
“아니야. 할리는 실용적이지 않아. 내 기준에서는 기름만 많이 먹는 녀석이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타는 오토바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야. 지금 오토바이는 철저하게 실용적인 걸로 골랐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800 MT를 소개하고 시동을 건다. 바이크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하고 작별을 고한다.
“이제 가야겠다. 고속도로를 갈 수 없어서 승용차보다 두 배 걸리거든. 수고하고 장사 잘해!”
“조심해서 가세요.”
내려가는 동안 바람을 느껴본다. 포근한 이불 위에 누워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무래도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좋다.
쉬지 않고 달렸다. 삼랑진으로 향하는 도중에 할리 라이더 한 명과 상당한 거리를 같이 달렸다. 평소 주행하는 속도가 비슷했던 모양이다. 경쟁도 하지 않는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주행을 즐기다가 삼랑진으로 향하는 교차점에서 갈 길이 나뉘었다. 삼랑진역에서 정차했다. 피로가 누적되었기에 당을 보충해야 한다.
다시 출발했을 적에는 귀가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17시 03분에 복귀했다. 주행거리는 407.1㎞였고, 100㎞ 주행에 필요한 연료는 4.3 리터였다.
※ 총비용: 34,900원
- 연료비: 17,000원(경남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214 / 덕산주유소)
- 식비 : 17,900원(경남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475번길 13 /
지리산 NO475버거앤커피) 아․아, 치즈버거
# 길손의 여행기를 끝까지 읽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