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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영월과 단양 여행기 - 2편, 단종과 청령포)

탁왕 2025. 10. 15. 23:32

# 2편 연재(영월과 단양 여행기 - 단종과 청령포, 동강사진박물관, 선돌)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8번지의 청령포(단종 유배지 / 강 안쪽이다). 명절 연휴여서인지 많은 외지인이 찾았다.

 
 
13시 20분 무렵, 청령포 주차장이다. 단종 유배지로 알려진 청령포로 입장하려면 약 100m 정도 되는 강을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승선료가 1인당 3천 원인데, 연휴여서인지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다. 탑승하고 배가 움직이자마자 반대편에 도착했다. 하필 그곳이 단종 유배지이고, 강줄기가 돌아가고 있어서 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지금의 후손들, 청령포를 거점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한 관광 수입을 얻고 있다.
 

청령포를 품고 흐르는 강을 건너려면 요금을 지불하고 배를 타야 한다. 

 
 
단종에겐 청령포(국가 지정 명승 50호)가 고난과 시련의 장소였겠지만, 후손들에겐 축복받은 관광지로 승화한 것이다. 한강 작가가 그렇게 표현했다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다고 말이다. 다른 장소, 다른 관점이겠지만, 이 말은 매우 적합하다. 중국에도 사례가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 덕분에 매년 3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관광수익을 번다고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만리장성은 세계 최고의 공동묘지라고 들은 적이 있다. 건설 과정에서 죽은 사람을 장성 아래에 묻었고 많이 죽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중국인 중 다수가 진시황에 대해 역사와는 다른 평을 하고 있다. 역시 중국 여행 때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다.
 
『청령포! 단종이 머문 곳!
  령(명/命 - 명하다)을 따라 령(囹 - 감옥)이 된 이곳 청령포!
  포부를 떨치지 못한 단종의 단명이 애잔하구나(애처롭고 애틋하다).』
 

배삯을 지불하고 청령포로 들어갔다. 강한 물살에 강변이 휩쓸린 흔적이 보였다.

 
 
배에서 내려 걷는 중에 자갈길 주변으로 강한 물살이 휩쓸고 간 흔적이 보인다. 풀과 나무가 한방향으로 쏠렸고, 뚜렷하다. 주변을 빠른 유속이 상당한 시간 동안 쓸고 지나갔다는 말이다. 폭우가 오면 강에서 가까운 쪽이 침수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가변적인 관광지인 것 같다.
 
청령포는 세조 3년인 1457년에 세조에 의해 단종이 ‘노산군’으로 감봉(강등)되고 유배된 장소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진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다만, 영조 2년인 1726년에 단종 유배지를 보호하고자 일반인이 출입을 못 하도록 「금표비」를 세웠다 하며, 이 금표비로 인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고, 오늘까지 유지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금표비를 사진으로 담았다.
 
『금표비 덕분에 사람의 손길과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던 청령포
  표변무쌍하는 인간 세상을 지켜본 금표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비록 지난 세월이지만, 니가 지킬 가치가 있던 곳이더냐?』
 

단종어소(단종이 머물렀던 기와집)와 청령포를 찾은 많은 관광객이 보인다.

 
 
청령포를 돌아보는 사람이 많다. 배를 타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는 중이다. 연휴를 어떻게 즐겁게 보내지? 이들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그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내려왔다고도 했다. 그럴 것이다. 나는 부산에서 올라오지 않았나! 단종어소(단종이 머물렀던 기와집)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역사 드라마(사극)에서 자주 보았던 정적을 제거하는 여러 장면을 떠올린다. 권력은 매우 비정하고, 냉정하면서 사악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 주체와 객체가 누구였든 간에 예외 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단종 유배지를 돌아보면서 가슴에 남은 생각이다.
“조선의 3대 국왕인 이방원의 별명이 『킬!방원』이라잖아. 하도 많이 죽여서 오늘날 얻은 별명이라네. 세종대왕의 업적이 가능했던 것도 킬방원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어.”
 

단종어소, 망향탑, 금표비 등 청령포 이곳저곳을 촬영했다.

 
 
14시 45분, 동강사진박물관을 찾았다. 역시나 입장료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랴! 그런데, 여러 작품을 돌아보는데도 감흥이 없다. 문외한이라서일까? 전시된 많은 작품을 눈에 담았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작품이 형편 없다는 말이 아니다.
 

동강사진박물관 왼쪽 옆에 영월군청이 있다. 박물관 로비 정면으로 개관 관련 소식을 전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때 열성적인 팬이었지만, 내 마음을 차갑게 식어버리게 만든 야구팀 롯데! 싫은 정(情)도 없고, 좋은 정(情)도 없는 그 롯데의 경기 장면을 딴짓을 곁들이면서 시청하고 있는 길손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살당하든, 안타를 치고 득점을 하든, 연속 홈런을 얻어맞고 실책을 선보인 졸전 끝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든 아무런 감흥이 없는 그런 상태와 같은 느낌이었다. 딱 그 장면이 동강사진박물관에서의 내 모습이었다.
 

사진박물관 내부 전시물 1

 
 
아마도 문외한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동강사진박물관이 2005년 7월 23일 개관했다는 것과 박물관 바로 옆에 영월군청이 있다는 사실이다. 박물관 개관일은 입장했을 적에 독특하게도 로비 정면 게시판에 개관일을 알리는 아주 커다란 사진(그림)이 게첨 되어 있었다.
 

사진박물관 내부 전시물 2

 
 
15시 25분 경이다. 선돌을 찾아 해발 320m의 소나기재를 찾았다. 오토바이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같은 장소를 찾아온 바이크에 시선이 먼저 간다.
“뭘 그렇게 오토바이를 쳐다보노? 여보야!”
좋았던 점은 주차요금도 입장료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선돌 농산물 매점에서 지역 특산물인 된장과 주전부리로 맛있어 보이는 옥수수를 알차게 구매했다. 영월군에서는 이런 것을 허투루 여기지 말기 바란다. 특산품을 구매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선돌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갔을 적에 어떠한 방식의 요금도 따로 내지 않았던 점이 강하게 작용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선돌이 있는 소나기재. 선돌은 '서 있는 돌'을 말한다.

 
 
선돌은 말 그대로 ‘서 있는 돌’을 말한다. 자연과 시간과 날씨가 손을 맞잡고 힘을 모아 길고 긴 세월 동안 정성을 다해 빚어낸 걸작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6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선명하고 또렷하게 선돌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돌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빚은 작품으로 승화했구나!』
 
선돌 사이로 보는 장면이 특별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인공적인 선돌이 아니기 때문에 눈동자에 감정이 실리게 되고,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것이 평범한 무엇이더라도 특별할 수밖에 없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