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2023. 10. 25.(수) 맑음
가을답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씨다. 아침에 낙동강 주변으로 대지를 덮었던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같은 안개만 제외한다면 거의 완벽하리만큼 오토바이로 여행하기에 좋았던 날씨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안개만 뺀다면….
늘 그러했듯이 여행경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연료비: 16,212원(경남 합천군 용주면 고품용덕길 5 합천호농협주유소)
2. 식사비: 9,000원(합천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3. 입장료: 2,000원(합천 해인사, 입장과 주차 요금)
*총계 : 27,212원
※주행거리: 387㎞ / 평균 연비: 1리터당 25㎞ 주행 / 사용 연료: 15.5리터
여행을 위해 하루 휴가를 사용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장기재직휴가를 포함해서 올해 안에 사용해야 할 휴가가 아직도 16일이 남았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사용할 것은 하고, 어쩔 수 없이 남겼다가 소멸하더라도 이 또한 어쩌랴.
쥐어짜듯이 휴가를 결정했고, 좀 멀긴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다시 찾기로 했다. 여유가 되면 합천의 다른 관광지도 돌아보자. 만약 승용차로 갔다면,
1. 합천 해인사와 대장경테마파크
2. 핑크뮬리 군락지 / 영상테마파크
3. 황계폭포 / 함벽루 / 정양늪생태공원 / 합천박물관
이렇게 8곳을 찾았을 것이다. 바이크로는 승용차로 오가는 시간의 곱절이 필요하고, 해가 진 후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정말 위험해서 일부만 방문했다. 해인사와 대장경테마파크, 영상테마파크, 함벽루 4곳만!
출발 전날에 복장이며 커피와 먹을 것 등을 미리 준비한다. 당일치기일지라도 일어나서 출발 전에 준비하려면 최소한 1시간 이상 허비하게 된다. 그러면 여행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침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전날 방바닥에 깔아두었다.
새벽 04시 38분에 눈을 떴다.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 액정을 확인하곤 다시 눈을 감는다. 오토바이로 여행을 떠나는 당일 아침이면 늘 반복하는 일상이다. 중년 남자의 가슴을 이렇게 뛰게 하는 것이 바이크 여행 외에 뭐가 또 있을까? 나중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아야겠다.
눈을 다시 감았다가 출근할 때의 기상 시간인 05시 30분에 일어났다. 분주히 방과 방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챙기고(경비 절약이 목적), 복장을 갖춘다. 인덕션에 물을 올려 두고 끓기를 기다리면서 물티슈로 헬멧의 글라스를 문지른다. 이전 여행에서 하루살이를 포함해 여러 녀석이 충돌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잔여물들이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했다.
06시 20분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헬멧의 세나와 내비가 연동이 되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토닥이다가 포기한다. 안내음성을 듣는 것은 포기하고 눈으로 보면서 확인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게 서둘러 출발한다.
‘친구! 잘 부탁해. 오늘 가야 할 길이 좀 멀다. 안라 무복하자!’
애정을 담아 애인의 엉덩이를 토닥이듯이 MT-07의 연료탱크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진 다음 스로틀을 감는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상태가 좋아 보인다.
부산 시내를 통과하는 경로를 거부하고 양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양산 종합운동장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지났다가 원동면 순매원 쉼터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정차한다. 손이 몹시도 저렸기 때문이다. MT-07의 단점 중의 하나가 1시간 이상 운전하면 손이 저리는 증상이다. 다른 하나는 시트가 몹시도 불편하다는 것과 더 불편한 것은 전자장비가 ABS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정차한 곳에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이 있어 급한 볼일도 해결한다.
그런데 쉼터 아래로 보이는 낙동강이 정말 장관이다. 안동호에서 보았던 그 아지랑이가 낙동강과 데이트 중이다. 강 맞은편 도로와 마을과 산까지 안개가 가볍게 덮고 있다.
『안개 가득한 이 아침이 몹시도 평화로워
개 짖는 소리조차 없는 평온한 아침이구나.
가슴 가득 자유와 행복과 즐거움을 담아
득달같이 바이크 타고 여행을 떠난단다. 지금 나보다 행복한 사람?』
피곤할 터이니 잠을 더 자라며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로 볼을 어루만지고 이불을 끌어당겨 온몸을 덮어주는 듯하다. 오전 07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낙동강에 아지랑이가 피었고, 강 건너엔 안개가 자욱하다. |
삼랑진역을 경유해서 대구 달성군 현풍읍을 지나 고령으로 간다. 올해 여행을 다니면서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었고, 일반국도와 지방도를 다니며 위태로운 도로도 여럿 경험했지만, 오늘은 정말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특별히 위험했다. 비와 바람도 없는 날이다. 하늘에는 구름 몇 점만 보일 뿐이었다. 곡예 운전하는 차량도 오토바이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몹시 위험했다.
『위기의 순간이 전혀 없었건만,
험난한 산길도 천 길 낭떠러지를 옆에 낀 비탈길도 아니었는데,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상상도 못 했단다.
만물을 조용히 덮은 안개가 이토록 위험할 줄은!』
원동면 순매원을 통과하고 낙동강을 왼쪽으로 보면 아지랑이를 구경하던 기쁨도 잠시였다. 낙동강과 아지랑이를 훔쳐보는 즐거움이 갑작스럽게 나 자신의 생존게임으로 바뀐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악마처럼 다가왔다.
주변을 뒤덮은 안개 |
고령으로 진입하기까지 거의 1시간 20분 가까이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달려가는 방향의 도로를 덮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까지 들었다. 가시거리가 아주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헬멧에 안개가 계속 부딪히면서 글라스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는데, 달리는 내내 뿌옇게 보이면서 시야를 방해한 것이다. 글라스에 닿아 뭉쳐지는 물방울로 인해 10m 앞도 보이지 않을 상황이 전개되자 몹시 당황하게 된다.
『식겁하겠네! 정말!
겁을 좀 주는 정도가 아냐! 이러다 큰일 날 수도 있겠어.
하고 많은 위험 요소 중에 왜 하필 안개일까?
다시는 무시하지 않을 거야. 라이더에게 안개가 몹시도 위험하다는걸.』
글라스를 개방하고 안경을 벗고도 달려보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준비해 간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고 비교적 자유로운 왼손으로 쉼 없이 글라스를 문질렀다. 이렇게 맑은 날씨에 말이다. 강풍도 없고 호우도 없는데도 말이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식겁했다. 그나마 도로 사정이 좋았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09시 20분을 넘기면서 진행 방향에서는 더 이상 안개가 보이지 않았다. 고령군 덕곡면 시골 마을을 지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고령을 지나면서 도로에 걸린 고령군의 놀라운 군정 구호를 볼 수 있었다. 그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이었다.
안개로 혼이 난 다음이었지만, ‘푸하하하...’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고령군의 고령을 단 한 번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을 표현할 적의 그 고령(高齡)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을 보곤 바로 그 고령(高齡)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령군수님과 관계자 여러분! 좋은 구호이긴 한데, 군정 구호를 보자마자 바로 나이가 많은 그 단어의 고령이 연상되네요! 죄송해요. 이건 제 잘못이 분명 아닙니다. 보자마자 그냥 떠올랐거든요.’
고령군 덕곡면 산골 마을에서 정차했다가 잠시 어릴 적의 고향 모습을 회상했다. 도로 바깥으로 벼를 말리는 정말 오랜만에 익숙하고 반갑기 그지없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확한 벼를 햇볕 좋은 날, 볕이 잘 드는 곳에 내다 말리는 모습 말이다. 조금 전까지 안개 때문에 기겁하면서 신경을 곧추세우고 달려왔는데, 그 안개가 글라스에 부딪혀서 맺힌 물방울이 아직도 헬멧에 여전한데 말이다. 그런 곳을 통과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장소에서 볕에 말리고 있는 잘 익은 벼를 보게 되다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
말려도 그만하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어
리(이)렇게 잘 익은 벼를 사람이 반의반이라도 닮는다면
기적처럼 이 세상이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가을 햇살을 듬뿍 받은 벼는 보송보송해지면서 단단해질 것이다. 농군의 수고로움을 받아 이런 작업을 몇 번 거치면서 좋은 상품이 될 것이고,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갈 적이면 그 풍미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햇살을 잔뜩 품은, 따듯하면서도 감미로운 그 풍미를 말이다.
고령군 덕곡면 시골 마을의 벼말리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엔 아주 절딴 난다. |
주변 논에는 아직 수확을 못 한 벼들이 여전히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절반 정도는 농군의 손길이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결실을 거둔 가정에 풍년이 깃들었길 빈다. 농자천하지대본의 마음이 늘 한결같길 희망한다.
부지런히 해인사를 향해 달렸다. 해인사를 약 3㎞ 앞두고 주차 요금을 받는 곳이 있었다. 이륜차는 2천 원인데, 카드로 결제하라는 안내가 있어 요금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카드만 되고 현금은 안 되나요?”
“왜요! 당연히 됩니다. 가능하면 카드로 결제하라는 말이죠”
“오토바이는 사찰 입구까지 못 가죠?”
“네. 주차장에 두세요”
『해인사가 품은 큰 보물을 보고자
인간의 힘만으로는 탄생하기 불가능했을 법한 그 보물을 보고자
사생결단 찾아왔단다.』
주차장에서 해인사 입구까진 약 9백 미터 정도 거리다.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예전에 찾았을 적에 사찰 입구 왼쪽으로 주차한 차량을 본 적이 있어 물었던 것이다.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리면서 걸어서 올라가는데, 오른쪽 차도로 집배원이 타고 가는 오토바이가 보인다.
‘나도 타고 올라갈걸. 또 바보짓을 하는구나.’
MT-07과 해인사 성보박물관과 주차장 |
주차장에서 올라가다 보면 기념품 가게, 산책로, 선재카페와 화장실 등이 보인다. |
09시 50분을 조금 지나면서 해인사에 도착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06시 30분 무렵 출발했으니까 3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해인사를 찾은 목적은 사찰 구경이 아니다. 고려대장경,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보존하는 곳이라 그 장소와 장판을 보려고 온 것이다.
해인사 배치도와 안내문 |
4대 천왕이 지키는 문을 통과하자마자 목탁 소리와 스님들이 경을 읊는 소리가 들려온다. 희한하게도 목탁 소리와 독경(불경의 글을 소리 내어 읽거나 외움)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런데 경내 건물 곳곳에서 스님들의 목탁 소리와 독경 소리가 들려온다. 10시를 넘겼는데, 이 시간대에 아마도 스님들에겐 중요한 일과가 걸려 있나 보다.
이 문을 지나야 한다. |
4대 천왕이 지키는 천왕문(맞는진 모르겠다)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있고, 왼쪽으로 범종과 큰 북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다. 대단한 크기다. 오전 10시 50분 무렵에 스님이 그곳에서 북을 두들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어 잠시 감상하기도 했다. 마당 정면에는 커피와 전통차를 파는 곳이다.
정면이 커피 파는 곳, 왼쪽에 범종과 큰 북이 있는 건물이 있다. |
커피 파는 건물 뒤쪽으로 대적광전(처음엔 대웅전인줄 알았다)이 있다. ‘동광당 명진대선사 열반 25주기 추모 다례재’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곳에서도 스님들과 신도들이 목탁 소리와 독경 소리에 묻혀 경건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현수막에 열반 25주기 추모다례재를 안내하고 있다. |
대적광전 오른쪽으로 가면 우물이 있는데, ‘어수정’이라 되어 있다. 해설을 보면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이라 한다. 왕이 어떻게 이곳 우물을 마셨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기에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왕이 마셨다는 어수정 |
대적광전 건물 뒤편이 고려 팔만대장경판(세계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보관하고 있는 법보공간이다. 무려 81,350판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겼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한역 경전 중 가장 오래된 원판 본이며 틀린 곳이 없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역시 그 설명에 따르면 총 1,514경전에 52,389,400글자 6,791책으로 되어 있단다.
『팔도강산 어디서 인재를 모아다가 걸작을 만들었을까!
만세에 걸쳐 그 기적이 전해지고
대장경에 담긴 선조들의 얼과 정신이 현재와 미래에 현현하리라.
장엄하고 경이로운 이 보물을 만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찾아오리라.』
고려팔만대장경판 안내도, 출입문, 보관 건물이 있다. |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중에 ‘대장경’이 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국사 교육을 통해 알고만 있던 팔만대장경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에서 구체적인 역사로 바뀌었다. 대장경이 우리 역사 전체를 관통하며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역사인지 소설을 읽은 후 소름 돋도록 느낄 수 있었다.
『조정래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정말 축복이지 않아? 톨스토이가 부럽지 않아!
래(애)쓴 작가의 노고에 정독과 숙독으로 보답해야지.』
잠긴 문 안쪽으로 목판이 보인다. |
마음을 담아 계단 하나하나를 밝아가며 역사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아쉬운 점은 일반인이 가까이 갈 수 없게 거리두기를 해두었다는 점이다. 경계선 밖에서 목판을 볼 수밖에 없다. 보존해서 만세에 걸쳐 후대에 물려 주려면 어쩔 수 없는 조치인 줄 알지만, 실물을 실물 그대로 보고 싶은 욕심이 동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어쩌랴!
선조들이 남기신 거룩한 역사다. 경외감이 들게 만드는 숭고한 역사다. 역사 너머의 역사이며,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임을 이제는 안다. 그러하기에 대장경을 볼 적이면 자연스럽게 숙연해지고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난다. 정말 그러하다.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 |
해인사 후방 6㎞ 지점에 ‘대장경 테마파크’가 있다. 방문한 날(25일) 행사가 진행 중이다. 제7회 팔만대장경 전국예술대전이 그것인데, 10월 21일부터 10월 29일까지 진행된단다. 테마파크 안에는 일하는 인부들이 화분이며 텐트며 작업 도구를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다. 찾았을 적이 오전 11시 30분을 넘긴 시간이었는데 관람 중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테마파크에는 기록문화관과 천년관, 빛소리관, 도예체험관 등 여러 시설이 조성되어 있는데, 무엇인가 새롭다거나 꼭 찾아봐야 할 정도로 땡긴다는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대장경 테마파크 안내도와 전경 |
다만, 대장경이라는 주제를 잡았기 때문에 대장경으로 여러 프로그램이나 체험 관련 시설물들을 배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것은 분명 큰 장점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입장료와 체험료가 저렴하다고 볼 수 없다. 성인 1인 기준 5천 원인데, 틀림없이 해인사를 방문했거나 하는 사람이 찾을 것이다. 그곳도 입장료나 다름없는 주차 요금을 입구에서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든 주차 요금이든 찾는 이(人) 모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마법
장관설을 뱉어 낼 생각은 없지만, 조금 과한 것 같아.
료(요)금을 낼 적에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 줄래?』
합천에 오면 여러 종류의 입장료가 기다린다. 합천을 찾아오는 외지인이 해인사와 대장경 테마파크만 방문하고 말 것인가? 그건 아니다. 영상테마파크도 방문할 것이다. 이곳도 역시 입장료가 기다리고 있다.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청와대 세트장을 가려면 모노레일을 이용해야 하는데, 역시 돈을 내야 한다.
소심한 내 의견은 이렇다. 이 세 가지를 묶어서 어느 곳에서든 티켓 발매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요금도 세 곳 합계 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한다면 어떨까? 운영하는 곳이 모두 달라 어렵겠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합천 영상테마파크까지 무려 40㎞ 거리다. 굳이 영상테마파크 내부를 거듭해서 돌아볼 생각은 없다. 찾아가는 이유는 매표소 앞쪽 오른편에 2층 건물이 있는데, 2층에서 영업 중인 식당이 훌륭하다. 순수 우리 농산물로 뷔페식으로 제공한다. 쌀밥과 잡곡밥, 김치, 채나물 등 나물과 파무침, 잡채, 닭고기, 쇠고깃국 등 푸짐하다. 속에 전혀 부담이 없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데, 더군다나 무한 리필까지 된다. 그런데도 가격은 9천 원에 불과하다.
2층이 식당이다. 무한리필이 된다. |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라는 광고 멘트가 마음에 와닿는다.
리(이)유 있는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자랑이지 싶어.
농군의 아들이기에 더욱 그러할까?
산골의 논과 밭에서 뒹굴며 자랐기에 그러할까?
물 건너온 상품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아 그런 거야.』
영상 테마파크 후방 약 2㎞ 지점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제까지 이용한 모든 주유소에선 가득 주유하면 기름이 넘치기 전에 기계가 인지하고 강제로 주유를 차단한다. 그런데 이 주유소(합천호농협) 주유기는 차단하질 않아 아까운 휘발유가 최소 5백 원어치 이상 넘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주유소를 찾는 고객이 요구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야.
유가 상승으로 고통받기에 정액 정량 정확을 원할 뿐이야.
소가 웃지 않겠어? 깊게 찌르지 않아 넘쳤다는 그 말 말이야!』
셀프 주유가 아닌 곳이고, 다른 손님들도 같이 주유하고 있었기에 굳이 내가 주유기를 잡는 수고를 한 까닭에 넘친 부분에 대해 제대로 항의도 할 수 없었다. 직원에게 성질을 부렸더니 깊게 찌르지 않으면 차단이 안 된다고 변명한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런 경우가 오늘 처음인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합천 영상 테마파크는 여러 번, 청와대 세트장은 한번 찾은 적이 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 합천이 있다. 이곳을 영상 장면 장면 속에 심은 작품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청와대 세트장도 마찬가지다.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장소,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들 |
입장료를 굳이 내면서까지 또 들어갈 생각이 없다. 14시 10분이다. 다시 출발하자.
영상 테마파크에서 약 10㎞ 거리에 함벽루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합주 지주사(합주 지주사? 뭔 말인지 모르겠다) 김영돈이 세운 누각이라 한다. 여러 번 보수를 했다 하고, 함벽루는 대야성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과 정양호를 내려다볼 수 있어 아주 옛날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란다.
함벽루와 황강 |
『함께 풍류를 즐겼다는 함벽루에 올랐다가
벽체가 없는 목조 누각이라 놀란 것이 아니라
누각 앞을 흐르는 황강의 아름다움에 놀라 감탄사를 내뱉는다.』
누각 내부의 현판에는 이황, 조식, 송시열 등과 같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네.
현판에 여러 글이 걸려 있다. |
기록처럼 함벽루 앞에는 황강이 흐른다.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흐르는 것이 이곳을 즐겼던 시인들처럼 나지막하게 시를 읊조리듯이 강물이 흐르는 느낌이다. 정말 풍류를 즐겼을 만한 곳이다. 선조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보는 눈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황강이 품은 함벽루일까? 함벽루가 품은 황강일까?
강이 흘러온 세월만큼 고민해야 답을 찾게 될까?
구경하며 기록했더니 벌써 오후 3시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집까지 얼마나 걸리나 싶어 내비를 검색했더니 18시 15분 도착이라고 안내한다. 합천박물관은 도저히 안 되겠다. 박물관을 돌아보려면 최소한 30분은 필요한데, 가서 돌아보는 시간을 더하면 집에 도착하는 예정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 더군다나 퇴근 시간에 몰리게 되면 정말 곤란해진다.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기 약 100㎞ 후방(고령이지 싶다)에서 3명의 라이더를 만났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바이크는 모두 할리였다. 내 바이크 5대 가격이어야 그들 바이크 하나를 구입할 수 있을 고가의 오토바이다. 그들은 할리를 타고 풍악소리가 주변에 다 들리도록 음량을 최대치로 높이고 질주하는 중이었다.
‘쿵짝 쿵짝 쿵짝 쿵짝....’
그런데 하필이면 나와 가는 방향이 한동안 같았다. 삼랑진을 지나 트윈터널이 있는 방향까지 이어졌다. 그들도 양산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들과 라이딩을 할 생각이 없는데도 진행 방향이 같고, 속도 역시 평소 내가 주행하는 속도와 같았다. 약 100㎞ 속도로 주행하고 있었다.
같이 달리기도 했다가 내가 추월하기도 했다. 추월한다고 그들을 젖힐 수도 없다. 리터급 오토바이인지라 배기량에서 미들급인 내 바이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결국 삼랑진역에서 잠시 정차했다. 준비해 간 커피를 한잔하며 그들을 먼저 보내고, 간격이 벌어지게 했다. 다시 출발했을 적에 그들을 만나진 않았다.
출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길을 따라 집으로 복귀했다. 도착 시간은 17시 20분이었다. 55분을 앞당겨서 돌아왔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동행한 MT-07에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