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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경산, 제천 여행기 - 2편 / 경산향교와 겨울을 품은 백두대간)

탁왕 2025. 3. 6. 09:58

* 2편 연재(경산향교와 겨울을 품고 있는 백두대간) 
 

경산시 중방동 760 소재 ‘경산향교’

 
10시 20분 무렵, 경산시 중방동 760 소재 ‘경산향교’에 다다랐다. 향교 후방 2백 미터 지점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 올라가는 중간에 쉼터가 있고, 오른쪽 간선도로 너머 경산시 시민운동장과 체육관이 조성되어 있다. 향교는 언덕 위 터가 좋아 보이는 곳에 상당한 규모로 자리 잡았다.
 
『경축일인 삼일절에 경산향교를 찾은 길손의 눈에
  산이 품고 있는 향교 위상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향교 곳곳에서 느껴지는 선조들의 숨결 속에
  교육의 힘으로 나라 일으킨 조상님들의 결기가 숨었더라.』
 

간선도로 왼쪽 언덕에 경산향교가 있고, 오른쪽엔 시민운동장과 체육관이 자리 잡았다.

 
 
경산향교가 창건된 시기는 고려 공양왕 2년인 1390년이라 한다. 기장군 소재 아담한 규모의 기장향교만 기억해서인지, 경산향교의 규모에 놀랐다. 당시 이 지역 유림의 세와 힘의 확장성이 얼마나 강력했겠는지 향교를 통해 엿볼 수 있지 싶다. 역사적인 의미 등은 기록하지 않겠다. 난포고택과 마찬가지로 향교 내부를 돌아볼 수 없어 아쉽다. 삼일절이어서인지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고 있지만, 여전히 햇빛을 즐길 수 있다. 포근함을 느낄 정도이니 영상 10도는 넉넉하게 넘겼을 것이다. 비가 올 것에 대한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경산향교로 올라가는 도중 오른쪽에 쉼터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야 향교를 돌아볼 수 있다.

 
 
12시 15분, 칠곡군 가산면 소재 세븐 일레븐 편의점에서 잠시 멈췄다. 화장실이 급했고,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여행하는 즐거움에 먹는 것을 잊어선 곤란하다. 향교를 떠나 대구시 북구를 통과하며 달리는 동안 간선도로 수준이 거의 주차장이었다. 가다 서기를 무한 재생하는 듯한 느낌이었고, 중학생 때 고장난 카세트가 늘어진 대중가요 테이프를 구간 재생할 때 느꼈던 짜증 섞인 감정이 되살아났다.
 

칠곡군 가산면 소재 세븐 일레븐 편의점. 화장실과 점심 해결을 위해 잠시 멈추다.

 
 
휴일인데, 더군다나 삼일절인데 말이다. 평일 출퇴근 시간대라면 그나마 이해가 될 것인데, 이렇게 많은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이유는 뭘까? 무려 4차선의 대로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이 거대한 교통 트래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부산시의 교통 상황 정도는 가볍게 찜쪄먹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오토바이 장점을 충분히 발휘해서 누구보다 빨리 앞서갈 수 있었지만, 차례를 지켰다.
 
편의점에 도착할 무렵의 하늘은 완전히 해를 가렸다. 머잖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비 오기 전에 제천에 도착하도록 하자. 달리는 동안 가끔 라이더를 만났는데, 일기예보 때문일까? 단체로 달려가는 바이크 무리를 볼 수 없었다.
 
“따듯한 커피 내릴 수 있나요?”
“네!”
어려 보이는 여직원이 동그란 눈동자로 길손을 응시한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목소리가 또렷하고 청명하다.
“얼만가요?”
“작은 컵은 1,200원이고, 큰 컵은 1,500원입니다.”
“큰 컵은 어떤 거죠?”
“거기 아래에 있는 거요!”
“아…! 작은 잔이라고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착각했네요. 화장실은 어디죠?”
 
생리현상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
“이 건물하고 옆의 공장 건물 사이에 계단이 있는 곳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여기 열쇠요.”
“네! 고마워요.”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거울 속의 길손을 응시한다. 머리칼은 헝클어졌고, 거지꼴이다. 라이딩 복장을 한 것이 조화롭지 못하고 험상궂다. 갑자기 여직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처럼 생긴 놈이 불쑥 편의점에 들어섰으니 어린 여성이 긴장하진 않았을까? 주변에 민가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근무하면서 나와 같은 손님 때문에 긴장할 때가 적지 않을 것 같다.
 
빵과 사과, 따듯한 커피와 두유로 점심을 해결했다. 특이하게도 편의점 있는 곳에선 지나가는 차량의 소음이 증폭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형적인 문제지 싶다.
 
상주시 공검면 소재 ‘공갈못 주유소’에서 멈춘다. 13시 35분 무렵이었다. 편의점에서 주유소까진 도로 사정이 좋았다. 덕분에 오토 크루즈 기능을 작동시켜 50㎞ 가까이 달렸다. 도중에 승합차 한 대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지나갈 때 운전자가 창문을 내려 엄지척을 해주었다. 유유자적 달리는 모습이 멋져 보였을 수도 있고, 그 운전자의 로망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떻든 크루즈 성능은 더할 나위 없다. 공갈못 주유소는 처음이 아니다. 단양 여행을 할 적에도 찾은 기억이 있다. 맞을 것이다.
 

상주시 공검면 소재 ‘공갈못 주유소’, 앞선 다른 여행을 떠날 적에도 이곳에서 쉰 적이 있다.

 
 
15시 12분, 제천시 큰 누님 집 후방 1.6㎞ 지점에서 다시 멈췄다. 메모할 것이 있어서이다. 앞선 주유소에서 제천으로 향하는 길은 단양 가는 길과 겹쳤다. 때문에 경천호와 사인암 가는 길을 따라 지나왔고, 백두대간의 하나인 댓재를 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백두대간답게 온통 눈이 쌓여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데, 더 무서운 것은 도로를 덮고 있는 녀석들의 정체였다. 제설 목적으로 관할 지자체에서 살포했을 모래가 깔려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차하는 순간, 바이크는 미끄러질 것이었다.
 
『백두대간에 겨울이 여전한 것은, 백두대간을
  두고 떠나려는 겨울에게 미련이 남아서일까? 겨울을
  대신할 봄을 맞을 시기가 아니라는 백두대간의 고집일까?
  간신히 댓재를 넘어가는 길손의 고민이려니!』
 
속도를 최대한으로 낮췄다. 뒤를 따라오는 차량이 있으면 먼저 보냈다. 800 MT의 성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과 모래는 라이더에겐 최대의 적이다. 비가 내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엔진 브레이크에 의존해서 긴장한 상태로 몹시도 천천히 하산했으며, 제천에 가까워지자 비가 언제 내렸나 싶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 식겁한 순간이었다. 여전히 백두대간의 ‘령’들은 겨울을 품고 있었고,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