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 경산, 제천 여행기(난포고택, 반곡지)
![]() |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526-6 소재 『난포고택』 |
1일 차(2025. 3. 01. 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선행 조치라고 해야 할까? 숙소를 먼저 예약해 둔다. 그러지 않으면 폭염과 추위, 폭우 등의 날씨 때문이라든지, 회사 또는 다른 일정이 있어 핑계를 댄다든지 여러 이유를 스스로 찾아서 떠나지 않으려 할 것 같아서다. 물론 예약했다고 취소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기에 앞서 숙소까지 달려가는 상상을 한다. 상상하면서 행복감을 먼저 느껴보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쌓아 간다.
『여지껏 여행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人이 있을까?
행여 그런 사람 보거들랑 ‘훈이의 여행일지’를 좀 소개해주라!』
이번에도 출발 열흘 전에 제천시 소재 모텔을 먼저 예약했다. 제천시에 터전을 잡고 거의 평생을 살고 있는 큰누나에게 연락했다. 오토바이로 제천에 갈 건데, 교회에 잠시 들르겠다며 인사 겸 안부를 전한다. 혹시 잠자리 문제로 염려할까 싶어 따로 숙소를 정해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했더니,
“그럼 제천에 오거든 저녁을 같이 먹자!”
“네! 그때 찾아뵙고 말씀 나누시죠.”
해마다 설을 전후해서 매형 부부가 어머니 댁을 찾았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큰딸인 지혜가 출산을 했기 때문이다. 넷째다. 누나도 슬하에 1녀 5남을 두었다. 지금처럼 초저출산의 시대에 누나가 여섯을, 지혜가 넷을 벌써 세상을 향해 생명을 선물했다. 애국자라 생각한다. 장하디 장한(?) 지혜에게 용돈이라도 주고 싶은 애잔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애잔하다: 애처롭고 애틋하다.
숙소를 예약한 이후부턴 거의 매일 일기 예보를 검색한다. 흐린 날씨로 예보가 되었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비가 오는 것으로 변한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계획을 보류했을 것이다.
출발 이틀 전부터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준비 과정을 돌아보면 특별한 것도 없는데, 꽤 긴 시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방한 물품과 먹을 것, 배터리 충전 용품을 챙기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특히 먹을 것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여행을 핑계로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목적으로 떠나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쟁여둔 것도 커피와 사과, 빵, 두유 정도인 것을 보면 정작 그렇지도 않다.
토요일 아침이다. 출발에 앞서 커피 물을 올리고 세안을 한다. 주섬주섬 라이딩 기어를 점검한다. 복장을 갖추기 전에 사고를 대비한 안전 장구를 이렇게나 입어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거듭 되뇌인다. 사이드백에 담은 물건을 확인한 다음, 지하로 내려가 오토바이에 부착한다. 정품 백이 자체만으로도 무게가 있어서인지 묵직한 느낌이다. 800 MT에겐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장거리 여행에 앞서 사람도 기계도 쉬어야 한다.
『안전을 위해 라이더들이 주고받는 인사가 있지.
전방에서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안라! 무복!을 기원하지.
장비가 받힘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야.
구차한 변명 대신에 꼭 보호장구를 착용하길 바라!』
![]() |
여행을 떠날 800 MT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이제 떠나야겠지? |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아파트를 나선 시각이 정확하게 07시다. ‘기장군 오후 17시 무렵 비 예정’이 휴대폰에 이미 올랐다. 겨울에도 눈과 비가 오지 않기로 부산만 한 지역이 없는데, 그런 도시에서 비가 온다면 경산과 제천은 예측이 필요 없을 것이다. 08시 35분 무렵, 운문댐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달리는 동안 날씨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도로 여건과 주행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영상임에도 열선 그립과 시트는 물론이고 열선 장갑의 도움까지 받는다. 추위가 정말 싫다. 폭염과 추위(강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에 선택하라면 폭염을!
![]() |
![]() |
![]() |
경산시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에 잠시 멈췄다. 하늘과 해를 품은 운문댐 전경이 이색적이다. |
잠시 멈춰 장갑을 벗었더니 정말 춥다. 장갑과 그립이 제 기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경산시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에서 운문댐을 내려다보며 메모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행복하다. 길손과 오토바이가 함께 햇빛 아래에서 여행과 휴식을 즐기면 된다. 이런 순간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겠나!
09시 10분이다.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526-6 소재 『난포고택』에 도착했다. 『난포』는 ‘최한’의 14세손 ‘최철견’이라는 분의 아호이다. 조선시대 문신이었고, 청주목사, 전라도사를 지냈다 한다. 명종 원년인 1546년에 축조했고, 당시 조선시대 상류층 주택 양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델이라 한다.
![]() |
![]() |
![]() |
방문한 길손을 위해 문을 열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물론 당시 상류층 주택 양식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길손의 눈에는 아주 웅장하면서 화려하거나, 격조가 대단히 높았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부유함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집의 규모로 그 세를 떨치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의 끝에 상류층 기준으로 절제와 겸손을 가졌던 분인가 혼자 생각해본다. 내부를 구경할 수 없었다. 굳게 닫힌 대문이 길손을 반기지 않아 감상평은 할 수 없다.
『난포라는 아호를 가졌던 분의 오래된 고택에는 절제와 예를
포용하고, 권위와 위세를 포기했지 싶어.
고즈넉한 분위기와 오랜 세월을 품은 고택에선
택함을 받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지금도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
![]() |
![]() |
![]() |
사진 아래 주차장이 비포장이다. 오토바이를 세우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제꿍할 뻔했다. |
다만, 도착해서 바이크를 주차하고자 비포장 주차장 한적한 곳에 멈추고, 사이드를 내려 세우려다가 하마터면 ‘제꿍’할 뻔했다. 바닥에 자갈이 깔렸는데, 사이드가 자갈 사이로 흙에 푹 박히면서 왼쪽으로 넘어지려 했다. 화들짝 놀라면서 온몸으로 버텼다. 간신히 바이크를 수습해서 포장도로 쪽으로 이동시켰다.
“아우 씨! 식겁했네. 이게 단점이구나. 사이드를 확장해야 하나?”
09시 50분, 경산시 남산면 소재 ‘반곡지’라는 작은 저수지에 도착했다. 어떤 곳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달려왔다. 작은 규모의, 아주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수지였다. 포털로 검색했더니 1903년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라고 되어 있다. 주변을 잘 정비했고, 관리 인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저수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산책로와 데크를 갖추었다.
![]() |
![]() |
![]() |
시간도 멈추고, 바람도 멈추고, 길손도 멈추었다. 주변을 모두 품은 반곡지가 거울같다. |
반곡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반곡지 이야기’ 건물이 바로 곁에서 외지인을 반기는 중이다. 주변에는 관광객을 위해 휴식과 커피를 제공할 카페도 있다. 도착했을 적의 첫 느낌은, 이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감상이다. 어쩌면 느리다 못해 멈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사계의 변화를 담은 사진을 보면 때에 맞춰 매번 다른 얼굴을 연출했기에 촬영 장소로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반곡지가 저수지인 줄 모르고 찾아왔지 뭐야!
곡명으로도 그만일 것 같은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아.
지저귀는 새들과 맹꽁이 합창 소리만이 반곡지를 가득 채웠더라.』
![]() |
![]() |
![]() |
반곡지 이야기를 들려 줄 카페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데크까지 잘 갖추었다. |
길손이 도착했기에 바람이 숨죽인 것일까? 시간도 바람도 그대로 멈춘 것 같다. 새소리와 맹꽁이 울음만이 저수지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도로에서 저수지를 볼 적에 정면으로 작은 능선 하나가 있고, 그 모습 그대로 저수지에 투영된 것이 그림 같다. 조화롭고 예쁘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예쁜 그림을 만들었다.
햇볕은 따스하고 추위는 가셨다. 고즈넉하다 못해 여유마저도 쉬어가는 것 같다. 느리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런 면에서 반곡지는 찾을 만하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TV 드라마(달의 연인 등)와 영화(허삼관)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