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미곶 여행기(일출암, 호미곶과 상생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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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의 상징이자 명물인 상생의 손! |
2월 15일(토) / 영상 3도에서 8도 / 구름 약간에 바람 거의 없거나 조금
입춘(2월 3일이 입춘이었다)은 지났지만, 아직 봄이 오진 않았다. 아침 기온이 영하 2도에서 영상 2도 사이를 오르내렸고, 날짜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록 중이다. 이것이 중부 내륙과 수도 서울의 기온이라면 포근한 쪽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부산이라면 춥다고 해석해야 한다. 며칠 전에 부산에도 눈이 오긴 했다. 한강 이남에서 눈이 오지 않기로 정평이 난 부산과 그 주변을 강한 바람과 함께 약 2시간 정도 휘몰아쳤다. 그때도 영하 0도 또는 영상 0도였다.
부산 기온이 저러한데, 이런 일기를 고려하지 않고 숙박을 염두에 두는 타지로의 장거리 여행을,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여행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목적지가 전라도든, 중부 내륙이든 훨씬 추울 것이고, 도로 사정은 노면 살얼음 등으로 위험천만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찌 라이딩을 마냥 보류하기만 하겠는가? 하루 일정으로, 아니 정확하게는 반나절 일정으로 다녀오는 오토바이 여행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계절과 게으름 등과 타협한 결과물이다.
15일인 토요일 아침이다. 06시 알람 소리가 조곤조곤 날 깨운다. 수면에선 벗어났지만, 침대를 벗어나기가 오늘따라 쉽지 않다. 따듯한 침대 속의 온기가 유혹한다. 나가지 말라는 속삭임이 토요일과 결합하여 강력한 마법을 작동시킨다.
‘일어나지 말자! 호미곶 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집에서 쉬자! 아우 후! 침대가 따듯하고 좋은데, 굳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 추위에 꼭 가야 해? 그냥 더 자는 게 어때? 어제 넷플릭스 드라마 본다고 잠자리에도 늦게 들었잖아! 그냥 쉬어!’
『게을러터진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으름장을 놓듯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떠나야지?
름(늠)실늠실 바이크의 움직임에 맞춰 유라시아의 꿈을 키우자꾸나!』
오토바이로 유라시아 횡단을 고민 중인 다른 자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힘에 부치는 중이다.
‘야 이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런 정신 상태로 뭘 한다고? 유라시아를 오토바이로 횡단할 거라고? 에라이 이놈아! 지금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놈이 무슨! 때려치워 임마!’
하마터면 여행을 취소하고 침대에 항복할 뻔했다. 아우우우…. 피곤함에 겨운 소리를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늦게 일어나는 변명을 다른 자아에게 하품으로 내뱉은 것이다. 일정을 포기하려 했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저급하고 비겁한 방어라 할 수 있다.
차가운 물에 세안하고 커피 물을 올린다. 보온이 잘 유지되는 옷들과 열선이 내장된 재킷과 장갑 등을 준비한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 맞서려면 필요하다. 몸을 따듯하게 하는 것이 여행 피로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동안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커피와 사과, 빵, 두유를 준비해서 종이가방에 담는다. 정품 삼박스를 오토바이에 부착했기 때문에 장비와 물건들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바이크에 실을 것인가를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07시 05분에 아파트를 나섰다. 영상 3도의 날씨였고, 다행스럽게도 울산으로 향하는 동안은 바람이 잠잠했다. 장안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가까운 셀프 주유소에 들러 800 MT 익스플로러에게 연료를 주입한다. 고급유가 보인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처음으로 고급유를 선택했다. 일반 휘발유에 비해 훨씬 비싸다. 머뭇거리지 않고 고급유를 선택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오토바이를 아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엔진 세팅 자체가 고급유인지 일반유인지를 확인하지 않았는데, 라이더라는 놈이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것인데, 이래도 되나?
주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800 MT는 정말 거칠다. MT-07이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숨겼다면, 새 애인은 작정하고 강함을 발산한다. 그러면서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 매력이다. 연암교차로에서 산을 넘어가며 곡선 길을 달렸는데, 다시금 느끼는 것이 여러 시스템이 라이더를 대신해서 바이크를 통제한다는 감상이다. 심한 커브 길에서도 안정적이다.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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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강동동 산음마을 앞에서 잠시 쉬다. |
1시간 정도를 달렸고, 울산 북구 강동동 산음마을 앞에서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가진다. 도로 사정은 훌륭했다. 교통 트래픽도 없었고, 눈이 쌓였다거나 살얼음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메모하기 곤란할 정도로 손이 몹시도 시렸다. 주행 중에는 열선 재킷에 열선 장갑을 착용하고 열선 그립과 열선 시트를 가동하면서 달렸기에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연암교차로에서 좌회전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직진하려다가 좌회전 구간을 조금 지나쳐서 멈추는 상황이 발생했다. 오르막 도로였고, 우측이 기울어진 상황이라 오토바이에서 하차할 수 없었고, 도로 바깥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낑낑거리면서 후진할 수밖에 없었다. 제꿍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럴뻔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오른쪽 다리의 근육이 경직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기어코 버텼다. 추운 데도 식은땀이 났다. 사고는 없어야 한다. 과속해서도 안 되고, 신호를 어겨서도 안 되지만, 제꿍은 더더욱 안 된다. 용납할 수 없다.
『제자리에서 넘어지는 오토바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꿍! 애인이 넘어지며 내는 소리에 애간장이 녹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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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해를 품은 해수욕장이 아름답다. 도로 건너 건물 2층에서 냥이가 길손을 반긴다. |
오토바이를 세운 길 건너편 건물 2층 양지바른 창문가에서 고양이가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햇살을 받으며 라이더를 반기는 것으로 길손은 상상한다.
‘고마워 냥이야! 너라도 날 반겨주어서!’
보온장갑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손이 시려서 더는 메모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을 정도로 추위에 손이 얼었다.
09시 13분, 포항 남구 장기면 신창1리 마을 앞 도로에 잠시 멈췄다. 간이 해수욕장이 인접한 도로였고, 그림 같은 장면이 라이더의 시선을 훔쳤기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주저 없이 통과했을 것이다. 해수욕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있는 도로 끝부분에 거대한 바위(바위산 규모는 아닌 것 같았고, 바닷물에 잠겼다면 바위섬이라 불러도 좋았을 것이다. 나중에 검색했더니 ‘일출암’이라 한다.)가 자리를 잡았는데, 위쪽으로 독야청청 사계절을 지키고 있을 소나무 몇 그루가 바위섬의 주인인 양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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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구 장기면 신창1리 마을 앞! 간이해수욕장 끝부분에 돌출된 일출암이 돋보인다. |
외지인이 이 마을과 해수욕장을 찾아오게 만드는 계기 또는 관광 포인트가 있다면 아마도 일출암일 것이다. 그 뒤에 규모가 작은 바위섬이 하나 더 있었고, 그곳에도 소나무 몇 그루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일시에 시선을 빼앗는 일출암의 존재는 놀라움과 감탄이더라.
출생의 근원이 궁금해지는 그 고운 자태에
암벽 끝에서 활짝 핀 가시연꽃을 보는 듯하다.』
※가시연꽃: 발아 조건이 까다로워 백 년 만에 피는 꽃으로 불린다.
길손이 모르긴 해도 마을에서 틀림없이 보호하고 관리하는 소나무와 바위들일 것이다.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가까이에서 즐길 순 없고, 두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수채화 같은 장면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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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즐기는 강태공과 자유롭게 비행하는 철새들! 그리고 많은 새들이 바다에 내려서 쉬는 중이다. |
해변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캠핑 중인 차량과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이 여럿 보였다. 구름이 조금 낀 날씨지만, 나무랄 것 없는 일기다. 바다와 하늘 사이의 공간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갈매기와 철새들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스스로가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
바다 위에 저렇게 많은 새들이 내려앉다니! 마을과 일출암을 품은 해수욕장과 바다의 그림이 참 예쁘다. 길손에겐 그렇게 보였다. 메모하는 중에 할리를 타고 경쾌한 풍악을 울리며 도로를 달려가는 라이더가 보인다. 서로 손을 들어 안라와 무복을 빌었지만, 꼭 그렇게 시끄럽게 마을을 지나야 할까? 당신의 행동이 주민에게 영향을 미쳐 오토바이와 라이더를 혐오하게 만들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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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새천년기념관의 위용! 올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
오전 10시에 호미곶에 도착했다. 바람이 조금씩 분다. 길손보다 앞서 도착한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가족끼리, 부부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그렇게들 찾아왔나 보다. 오토바이로 찾은 이는 길손 외엔 없었다.
새천년기념관을 촬영하고, 호미곶의 상징이자 명물인 『상생의 손』까지 걷는다. 광장이 넓어서 제법 많은 외지인이 찾았음에도 텅 빈 것처럼 보인다. 내려가는 왼쪽으로 거대한 가마솥이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으로는 명품관과 『연오랑세오녀』 상징물도 조화롭게 놓여 있다. 『상생의 손』 정면으로, 오른쪽과 왼쪽, 그 뒤쪽으로 해안과 바다, 바닷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돌들이 군무를 이루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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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가마솥과 상생의 손! |
미세먼지가 많지는 않으나, 공기의 질이 쾌적한 수준은 아니다. 바람도 조금 분다. 그럼에도 해안과 바다와 상생의 손이 초월적인 장면을 제공하기에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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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상생의 손을 구상한 이는 누구였을까? 그 아이디어에 감탄할 수 밖에! |
상생의 손을 자세히 보면 오른손이다. 이 손에 대한 설명이 기록된 표지판이 있지만,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싶진 않다. 지금 이 나라는, 이 사회는, 국민 모두에게는 상생이 필요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사회가 아니라,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살아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다른 이를 제거하려는 세상이 되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저 상생의 손이 상징하는 바가 마음에 크게 와닿는다. 시국 때문일까?
『상생, 공존하는 삶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생생하게 보게 되는 백척간두에 선 듯한 이 현실들이 안타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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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 상생합시다! 제발!
하늘엔 솜이불 같은 구름이 펼쳐졌다. 그런 기운이 세상과 우리 모두를 따듯하게 덮어주길 소망한다. 간절히 소망한다.
쉬지 않고 달렸고, 13시 02분에 귀가했다. 총 236.4㎞ 달렸고, 100㎞를 주파하는데 필요한 연료는 4.6리터였다.
※총 주행거리: 236.4㎞
- 리터당 21.74㎞ 주행
- 9.2리터 사용
※ 전체 비용: 17,870원(연료비)
- 17,870원: 2. 15. / 신아시아드주유소(기장군 기장대로 996)
*한국어 공부 타임!
# 무르춤하다: 뜻밖의 사실에 가볍게 놀라 물러서려는 듯이 행동을 멈추다.
# 하냥다짐하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에는 목을 베어도 좋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