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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보성 여행기 - 2편 / 고된 삶과 애국지사?, 충절사)

탁왕 2024. 10. 29. 09:05

* 2편 연재 - 1일 차(10월 25일 금요일, 고된 삶과 애국지사?, 충절사)

 

모의 최대성 장군 영정을 모신 충절사! 보성군은 최대성 장군, 송재 서재필, 백범 김구 은거기념관 등 애국의 고장이다.

 

만주요! 중국 만주

만주라고요? ! 그러세요?”

! 이승만 대통령 때 해방되고 한국 왔어요.”

상상도 못 한 말씀을 하셔서 관심이 없었다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요? 그럼 해방 때 한국 왔고, 7년 전에 여기로 오신 거네요? 원래 주민은 아니시구요!”

!”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궁금한 것을 질문하려는데, 어르신이 혼잣말처럼 하신다. 왜 정자에 오셨는지에 관한 것이다.

 

오늘 노인정에서 음식 갖다주기로 했는데.”

?”

집에 딸하고 있는데, 음식 갖다주기로 했거든요.”

네에! 지금 그럼 음식 오는 걸 기다리시는 거군요?”

!”

! 어르신 알겠습니다.”

 

남루한 옷을 걸친(입었다기보단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쳤다는 쪽이다) 노인의 형상과 때에 찌든 옷에서 고단했고, 힘들었을 삶의 궤적을 상상하게 된다. 그 고달픔에 궁핍함이 족쇄처럼 옥죄고 있다. 고단한 과거의 삶에 무게가 더해지면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러 궁핍함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었지 싶다. 궁금한 것은 만주에서 뭘 하셨던 분인가 하는 것이다.

어르신 존함이 어떻게 되세요?”

?”

존함이요. 어르신 이름이 뭐예요?”

?”

어르신 이름, 존함이 뭔가요?”

! 최종열이오.”

채가 아니고, ! 최종열요?”

! 최종열요!”

 

정자에서 홍교를 감상하다!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입을 벌리고 계신 모습이어서 말씀하실 때마다 발음이 많이 샜다.

고향이 만주셨어요?”

열 한 살 때

 

혹시나 독립운동하셨던 유공자이거나 관련 가족인가 상상했다.

? 열 한 살요? 그때 만주에 가셨어요?”

아녀. 만주서 태어났는데, 열 한 살 때 해방되어서 이승만 때 한국 왔어요.”

! 그러셨구나. 만주에서 태어나셨고, 열 한 살 때 한국으로 오셨네요.”

! 어머니하고 둘이 왔어요.”

그럼, 어르신 어머니께서 고향이 당시 조선이었군요?”

! 그래요.”

 

만주벌판에서 목숨을 담보했던 애국지사가 아니셨더라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셨을 어르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전혀 관련 없는 분이었다. 더는 여쭙지 않기로 했다. 삶의 궤적을 묻지 않아도 얼마나 힘들고 고된 삶이었겠는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고, 어르신과 일면식도 없는 처지지만, 사과며 두유며 길손이 혼자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가방에서 사과즙과 영양갱, 호빵 1개를 꺼내어 어르신께 드렸다.

어르신! 이것 좀 드세요.”

? 어허허허.”

 

연로한 분이라 사과즙과 영양갱 포장지를 벗기고 절단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도와드린다.

혹시 2백 원 있소? 커피 한 잔 먹었으면 좋겠는데!”

 

동전이 있을 리가 없지만, 길다방 커피가 2백 원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커피 한 잔 드시고 싶다는 말씀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여행지를 돌면서 길손에게 커피가 정말 간절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전 2백 원을 말씀하시는 어르신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진 않았다. 결례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르신 동전이 없습니다. 요즘은 다 카드를 가지고 다니거든요.”

카드? .”

지갑을 찾았다. 평소 여행 때는 휴대폰에 카드 하나만 넣고 다녔는데, 이번 여행길에는 뭐에 씌었는지 지갑을 챙겼고, 준비하면서도 내가 이걸 가지고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갑에 천 원짜리가 보였다.

여기 천원 드릴 터이니 동전으로 바꿔서 커피 드세요. 어르신!”

어이구! 고마워요!”

 

노인과 사이좋게 간식을 먹는다. 조촐하지만, 내겐 점심인 간식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서 드시고 있는 간식이 어르신의 점심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 드렸더니 희미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드신다. 고단한 삶이 가벼워지진 않겠지만, 더는 무거워지지 않길 바라면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다.

 

1250, 충절사(전남 보성군 득량면 삼정리)에 도착했다. 사찰이 아니고, 사당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극복에 앞장선 모의 장군으로 불리는 최대성 장군을 모신 곳이다. 의병 수천을 이끌고 순천, 광양, 고흥, 보성 등지에서 2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한 번도 패한 적 없으시다고 한다. 동안치 전투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추격 중에 순절하셨고, 당년 45세였다. 기타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충절사 앞 모습! 모의 최대성 장군님의 동상이 보인다.

 

 

사당으로 진입하는 문은 열려 있었지만, 볼 수 있는 것은 건물, 각종 기념비와 안내판, 장군의 동상과 전적 기록 등이다.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관리하고 있어 감사하긴 한데, 영정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어떨까! 물론 지나친 기대겠지만.’

 

충절사를 돌아보면서 아쉬움이 들었다. 장군의 영정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이번 주에 넷플릭스에서 전란을 봤다. 출연진이 대단했다. 강동원(천영), 박정민(이종려), 차승원(선조), 정성일(갓카와 겐신 / 더 글로리 하도영 역), 진선규(김자령 장군) 등의 배우들을 보게 되어 좋았다. 임란을 배경으로 했고, 신분제도와 불평등, 왕의 무능 등이 주요 내용인데 재밌었다.

 

의로운 이들이 무능한 폭군과 간신에 의해 어떻게 핍박을 받는지 잘 그렸다. 그 영화를 봐서인지 모의 장군을 모신 이곳 충절사가 참으로 쓸쓸해 보인다. 가을이라 마음이 그러한 것인지.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