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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통영과 한산과 이순신 - 3편 운주당과 제승당, 수루에 홀로 앉다)

탁왕 2024. 10. 14. 10:17

* 3편 연재(10월 9일 -10일 / 운주당과 제승당, 수루에 홀로 앉다) 
 

수루와 조우하다. 이순신 장군께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형언할 수 없는 고민들을 하셨던 장소, 바로 그곳 수루다.

 
15시에 모텔에 도착했다. 『W 모텔』이다. 이 모텔을 예약할 적에 정말이지 저렴했다. 2만 7천 원이라 머뭇거리지 않고 결재했다. 2명이 투숙해도 좁지 않다. 2인용 침대와 냉장고, 전기포트, 헤어드라이, 에어컨, 유튜브가 연결된 TV 등등 지난 추석 연휴 때 단양에서 숙박했던 펜션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다. 비수기이기에 저렴할 것이다. 어떻든 길손에겐 축복이고 감사한 상황이다.
 

저녁 식사로 결정한 돼지국밥! 9천원이다. 전국 어느 곳에서나 맛이 비슷하다. 1인 손님이라고 홀대하지도 않는다.

 
17시, 저녁 식사를 조금 서둘렀다. 모텔 근처에 돼지국밥집이 보인다. 9천 원을 결재하고 푸짐한 저녁상을 받았다. 전국 어느 곳에서 국밥을 먹어도 거의 비슷한 맛이라 실망할 일이 없어 좋다. 더군다나 1인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라 주저 없이 찾게 한다. 그 점이 장점이면서도 슬프다.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여행지에서의 국룰이 되었어!
  밥심으로 여행 다니는 길손을 응원하는 음식이 돼지국밥이지!』
 
이른 저녁을 먹고 통영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걷는다. 굳이 뭔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걷거나 뛰는 사람을 구경하고, 바다 냄새를 즐긴다. 멍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쉼 다운 쉼’을 누린다. 좋다. 마냥 행복하다. 이런 순간을 누린다는 것에 만족한다.
 
 

숙소 아래에서 통영 바다를 감상하며 한참을 걷는다. 멍한 상태를 유지하며 쉼을 누렸다.

 
 
2일 차(10월 10일, 목)
전날 21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주변이 온통 호텔과 모텔 등 숙박 시설이 밀집한 곳이라 사위가 조용했기에 깊게 잠들 수 있었다. 07시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비가 내린다.
“아우 씨! 뭐야 이거?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지난 화요일에 확인했을 적엔 분명히 맑을 것이라 했다. (점심때부터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다시 확인했더니 아침에 잠시 내리는 것으로 예보 중이라 다행이었다. 다만, 일정을 1시간 늦출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모텔에서 나가는 시간을 잠시 미뤘다.
 
영양갱과 편의점에서 가져온 컵라면(진, 순한 맛)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TV로 유튜브를 시청한다. 모텔에서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여행 문화가 세련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유튜브를 이렇게 볼 수 있다니!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하고 07시 10분 무렵 숙소를 나선다. 숙소 주변 도로는 젖은 상태였다. 그런데 터미널 쪽으로 약 3㎞ 정도 달렸더니 그곳엔 아예 비가 내린 흔적이 없었다. 정말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 작은 땅에서, 그것도 통영에서 비가 이 정도로 지엽적으로 내린다니.
 
『한산대첩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산산조각 박살난 침략자들의 말로를 볼 수 있는 곳
  도서 중의 도서, 그 중에서도 한산도!』
 
07시 23분,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부는 한산했고, 근무자들이 아침 식사 중인지 07시 30분부터 매표한단다. 08시 출항하는 배가 가장 빠르기에 기다렸다가 표를 사기 위해 카드와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어디 가세요? 신분증도 같이 주세요.”
신분증을 같이 내밀었는데, 같이 달라는 매표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산도 제승당이요. 689cc 오토바이도 있어요.”
“통영시민 아니죠?”
“부산 사람입니다.”
“왕복으로 할까요?”
 

표를 사고 오토바이를 배에 올리기 위해 준비한다.

 
왕복으로 하면, 시간 관계없이 프리패스가 된다는 건가? 싶어 물어본다.
“왕복으로 하면 나올 때 언제든 탑승이 되나요?”
“아니요. 표를 변경하면 돼요. 또는 전화를 해도 되고요.”
안 된다는 얘기다. 돌아올 적에 한 번 표를 구매하면 될 일이지, 번거롭게 여러 번 티켓팅할 필요가 없다. 실적 때문인가 싶어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그럼 편도로 주세요. 고맙습니다.”
 
07시 40분, 바이크를 배에 싣는다. 안내선을 따라 어제 진입했다가 제지당한 곳으로 들어갔다. 먼저 입장하는 승용차를 기다리며 직원에게 표를 보여 주었다.
“저 뒤로 가세요. 넓어서 좋을 거예요.”
“뒤로요?”
“네. 들어가면 또 안내할 겁니다.”
 

차량은 주차할 수 없지만, 바이크에겐 공간이 넓은 사각지역, 승무원의 눈치를 보면서 주차에 성공했다.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어 조심해서 진입한다.
“저기 뒤에 넓은 공간에 세우세요.”
“네!”
승용차가 주차할 수 없는 사각이 있었다. 그 공간이 오토바이엔 꽤 넓었다. 다만, 배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보면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바이크를 세우는 것이라 마음에 걸렸다. 배가 크기 때문에 굳이 걱정까진 하지 않는다. 주차하는 것을 보고 승무원이 미덥지 않았는지 다가온다. 제대로 세웠다.
“이렇게 주차하라는 거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출항 직후의 모습!

 
 

오토바이를 배에 싣고 떠나는 여행이 벌써 두 번째다.

 
 

통영에서 업무 관련 워크샵을 할 적에 자주 갔었던 호텔(콘도?)! 배에서 바라보며 촬영할 날이 올 줄이야!

 
출발 20분 만에 섬에 도착했다. 당연히 한산도이거니 생각하며 영상과 사진 촬영을 하고 내릴 준비를 하는데, 당황스럽게도 배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차량에 탑승한 승객과 대화 중인 직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여기 한산도 아닌가요?”
“아니요. 여긴 **마을(명칭을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슬프다)인데, 조그마해요. 한산도는 5분 정도 더 가야 해요.”
그 말에 얼마나 진정이 되었는지, 많이 놀랐다.
“다행입니다. 여기가 한산도인 줄 알았어요.”
 

사람과 차가 내릴 준비를 하기에 이곳이 제승당인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한산도로 가는 바다 위에서!

 
 
08시 25분, 드디어 한산도 제승당에 입항했다. 도착 무렵에 비가 조금씩 내려 걱정이 되었다.
‘이거 비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며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비가 그쳤다. 다행이라 한숨을 내쉰다.
 

위: 한산도 제승당에 도착하다.   중간: 한산도 곳곳을 시영버스가 다니고 있다.
아래: 탐방지원센터가 선착장에 있다. 센터 오른쪽으로 가면 제승당이다.

 
 
선착장 오른쪽 제승당으로 향한다. 관람 요금은 무료인데, 입구 쪽 관리 건물에 근무 중인 직원이 있다. 해설사였다. 들어가기 위해선 입구 쪽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자전거 역시 진입 금지라고 되어 있음에도 직원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자전거로 들어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너네는 왜 안 지키는데?’
 

제승당 입구,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모두 문 밖에 두고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서 약 500m 정도 걸어야 한다. 해변이 작은 호수를 품은 것처럼 타원형이다. 해변과 바다를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곡선으로 굽은 길을 걸어간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해변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막아 두었다.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엔 화살나무가 도열했고, 왼쪽으로 적송이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임란 때 장군께서 이 적송으로 함선과 거북선을 건조하셨다고 한다.
 
『이토록 뛰어난 단 한 명의 리더로 인해
  순전히 보존하게 된 내 나라 팔도강산!
  신이시여! 성웅을 이 땅에 내려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 순전히: 순수하고 완전하게
 

바다가 호수처럼 보인다. 제승당으로 가려면 타원형으로 굽어진 도로를 걸어서 500m 정도 걸어야 한다.

 
제승당으로 진입하려면 대첩문(크게 이기는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진입 전에 경상남도 제승당관리사무소 건물동이 도로 왼쪽으로 있다. 직원들이 근무 중인 것으로 보인다. 주변은 청결하고 반듯하지만, 해변엔 최근에 버렸을 것으로 보이는 비닐 등 쓰레기도 보인다.
‘관리사무소장 직급이 뭘까? 5급일까? 4급일까?’
어찌 직업병이 도지지 않겠는가?
 

사진 위: 경상남도 제승당관리사무소 건물동이 보인다. 아래: 제승당으로 향하는 대첩문과 경비 인형 병사들

 
대첩문 양쪽으로 수군 인형 둘이 근무 중이다. 그곳을 통과해 잠시 걸으면 충무문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엔 장애인이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도록 데크를 설치해두었다. 충무문 입구를 지나면 정면으로 제승당이 보인다. 과거 장군께서 참모들과 작전을 세웠던 장소인데, 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기능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승당』이란 이름은 영조 15년(1739년)에 통제사 『조경』이 지금 부지에 다시 세우고 제승당이라 했다고 한다. 장군 때는 『운주당』이었다.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다음 운주당이 폐허가 되었다 한다.
 

진입로와 충무문, 충무문을 통과하면 아래 사진처럼 제승당이 정면으로 보인다.

 
제승당 오른쪽엔 『수루』가 있다. 수루는 장군의 시로 소개할 수 있겠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 시에 등장하는 그 수루가 바로 제승당 옆 건물이다.
 

수루를 보게 되다니! 장군께서 얼마나 고뇌하고 고민하셨을지 상상이 된다.

 
 
09시 20분 무렵, 해설사를 대동한 관광객 무리가 이곳을 찾았다. 해설사의 설명에 이어 안내에 따라 제승당과 수루, 활터, 사당 등을 방문하고 있다. 제승당 뒤쪽 아래에 활터가 있다. 『한산정』이라 한다. 장군께서 부하들과 활을 쏘았던 곳이라는데, 한산정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과녁이 보인다. 한산정과 과녁 사이엔 바다가 있다. 거리는 약 150m 정도 될 것이고, 두 개의 과녁이 길손을 반긴다. 난중일기에도 장군께서 활을 쏘았다는 기록을 번번이 확인할 수 있다. 쏘고 또 쏘시며 실전처럼 준비하셨을 그 당시가 상상이 된다. 존경심이 다시 솟는다.
 

장군께서 활쏘기를 하셨던 한산정! 아래 사진을 보면 약 150m 전방에 놓인 과녁을 볼 수 있다.  중간은 바다다.

 
 
제승당 왼쪽으로 가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다. 『충무사』라 한다. 기록에 따르면 통영시민과 해군작전사령관과 생도들이 양력 8월 14일에 이곳을 참배한다는데, 기록을 보고서도 왜 8월 14일에 참배하는 것인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어리석은 인간아!
 

위쪽 사진부터, 제승당 왼쪽으로 들어가면 좌와 우로 제승당 유희비와 정화 기념비, 정면(아래)으로 충무사가 있다.

 
 
충무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과 오른쪽에 제승당 유희비와 제승당 정화 기념비가 놓여 있다. 유희비는 제승당을 다시 세운 것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 한다.
 
“한산대첩 전투는 아침 08시부터 저녁.....”
수루 계단에 앉아 메모 중인데, 관람객이 수루에 올라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 해설사의 목소리가 조금 시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평소라면 정보가 된다는 생각에 집중했을 것인데, 왜 시끄럽다 느꼈을까?
 

장군의 영정과 방명록, 오른쪽 아래에 몇 글자 남겨두었다.

 
충무사로 다가간다. 정면에 장군의 영정이 보인다. 뭔가 울컥하는 것이 올라온다. 옷을 가다듬고 예를 갖춘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한다. 가슴이 저린다. 아련하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입장했나? 향로에 향이 없다. 오른쪽에 놓인 향과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향 1개를 골라 불을 붙였다. 향로에 정성을 다해 조심조심 꽂아 세운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방문자가 메모할 수 있도록 준비된 방명록에 그 마음을 그대로 옮겼다.
 
 

충무사 내부를 영상에 담았다.

 
 
해설사와 관광객이 수루 왼쪽 데크로 내려갔다. 다시 사위가 조용했다. 메모를 마치고 나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 내려갔다.
 

수루 왼쪽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데크가 연결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적송이다.

 
 

제승당이 품은 호수 같은 바다가 아름다와 영상에 다시 담았다.

 
 
*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