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 - 1일 차(통영여객터미널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한산도 제승당,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 중의 하나였다. |
10시 30분, 통영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유료 주차장이라서 관리인의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주차장 입구 안전지대에 세웠다. 터미널과 조금 떨어진 위치지만 상관없다.
‘바이크를 배에 싣는 장소를 확인하자.’
『통통배가 연상되는 이곳 통영은
영혼의 우상이신 이순신 장군님 문화재가 있는 곳!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한산대첩의 신화가 멀지 않은 곳!
객기 부리며, 서호 전통시장에서 힘 자랑 돈 자랑하는 외지인도
선원이 되어 신화의 고장 통영에서 돈 벌고 있는 외국인도
터전을 잡고 대를 잇고 있는 토박이도
미안하면서도 감사하고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그분을 향한 마음만큼은
널리 전파해도 좋을 참된 애국심이 아닐까 싶다.』
통영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위 사진은 주차장 입구 안전지대! |
도로에 표시된 안내를 따라 터미널 왼쪽으로 걸었다.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서 차량을 선적하게 되어 있었다. 그 입구에 경비실이 있지만, 경비원이 보이지 않아 촬영하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이! 거기 들어가면 안 돼요!”
언제 나타났는지 60대 중반은 넘었을 법한 경비원이 뒤에서 날 부른다.
“출입 금지에요. 들어가면 안 돼요.”
“아! 저기 사진 촬영만 하고 금방 나갈게요.”
“사진도 그냥 거기서 찍고 나오세요.”
“네!”
선착장, 경비원의 지적을 받아가며 출입문 밖에서 간신히 촬영했다. |
말다툼할 일이 아니기에 순순히 따른다.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선글라스를 벗고 밝은 표정으로 마주 보며 경계심을 풀고자 했는데, 잘 안 되었다. 젠장!
“저기요. 아저씨! 제가 내일 오토바이를 배에 실어서 한산도 들어가려고 하거든요. 아침에 첫 배가 몇 시에 있나요?”
“한산도 제승당 가시려구요? 다들 거기 가더라고요. 첫 배는 06시 20분이고, 그다음엔 07시에 있어요.”
다들 거기 간다는 말에 궁금한 것이 있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06시 20분요? 빠르네”
“오후에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출항합니다.”
“그럼 한산도에서 나오는 배 시간은요?”
질문하는 중에도 배에 차를 선적하기 위해 승용차들이 계속 진입한다. 운전자를 제지하며 연신 ‘어디 가십니까?’하고 묻고 안내한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분이다.
“나오는 배 시간은 한산도에서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터미널 문을 열고 대합실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긴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고, 일부는 표를 구매하는 중이었다. 대합실엔 도서관(파도 소리 도서관)이 있다. 상상도 못 했다. 명품관과 편의점, 카페도 보인다. 배를 타는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시외버스 터미널 풍경과 같다고 봐도 되지 싶다.
터미널 안에 있는 파도 소리 도서관! |
10시 50분 무렵, 길었던 대기줄이 사라졌다. 모두 탑승한 다음이라 터미널이 텅 비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는데, 일순간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2일 차에 일찍 배를 타도록 하고, 1일 차는 통영 해변도로를 한 바퀴 돌면서 구석구석을 눈에 담으려 한다. 떠나기 전에 매표원에게 확인할 것이 있어 다가갔다.
“저기 한산도 제승당이요.”
“네”
“오토바이를 싣고 가면 요금은 얼마나 나와요?”
“오토바이가 큰가요? 작은가요?”
위: 탑승을 기다리는 관광객 / 아래: 탑승 후 텅 빈 터미널 |
‘뭐지? 뭘 기준으로 크고 작은 걸 구분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음! 689cc입니다.”
“큰 거네요. 5천…. 아니 4천 원입니다.”
“편도가요?”
“네!”
“크고 작은 기준은 뭔가요?”
“125cc 미만은 작은 것이고, 그 이상은 큰 겁니다.”
“그렇구나! 내일 뵐게요.”
법적으로 소배기량과 대배기량을 구분할 때도 그와 같다.
터미널 맞은 편에 전통시장인 '서호' 시장이 있다. 방문하진 않았다. |
터미널 주차장 맞은편엔 전통시장이 있다. 『서호』라고 한다. 돌아봐야 할 곳이 가늠되질 않아 시장 방문은 생략한다. 풍화 일주도로로 향했다. 섬과 섬 사이로 아기자기한 바다가 한 폭의 그림이다. 수채화도 이보단 예쁠 순 없다. 여기서 양식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식장에 점점이 떠 있는 부표들! 여행자의 기분 때문인지 내 눈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되었다. |
경제활동의 주축인 양식장이 여행자의 기분 때문인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았던 카드 병정과 이미지가 겹친다. 점점이 떠 있는 부표들이 삼지창을 들고 인어 장교들의 지시를 받는 그런 상상이 살아난다. 당장이라도 물 위를 걸어 먼바다로 행진할 것 같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풍화 일주도로 라이딩 중에 『해란 마을』에서 멈췄다. 11시 50분, 점심을 먹고 휴식을 가질 생각에서다. 주차한 좌우로 마을 정자와 버스 정류장 승객 대기실이 보인다. 대기실은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사방이 유리로 막혔다. 정자가 압권이다. 점심을 그곳에서 먹을 생각으로 사이드백을 분리해서 들고 다가갔다가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바닥이 지나치게 깨끗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베개까지 놓여 있었다.
사진 위, 마을 정자와 버스정류장 대기실(뒤편에 마을회관이 있다)이 보인다. 아래는 길손의 점심이다. |
마을 이장 허락을 받지 않고 길손이 함부로 정자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류소 옆에 마을 회관이 있는데도 정자를 주민 사랑방처럼 활용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추측건대 바람이 불면 여름엔 시원한 공간이지 싶다.
13시 40분, 마동 마을에 도착했다. 행정 주소는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 1035-8번지다. 라이딩 중에 여러 어촌을 지나왔다. 초등학교(또는 분교)와 면사무소, 보건지소, 파출소 등 관공서도 지나왔는데, 어촌들은 다른 듯 닮았다. 공통적으로 풍경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다. 규모 면에서 길손에게 주눅 들게 하는 그런 어촌은 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살갑다는 생각을 했다.
해안도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서 크고 작은 여러 섬들과 바다 위에서 직선과 곡선을 자유롭게 그리고 있는 작은 배들, 구역을 나눠 수놓은 양식장 부표들, 일렁이는 물결에 반사되어 증폭된 많은 햇빛 등 수채화 같은 장면 장면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단면이지만, 순간의 장면을 머리에 담을 수 있어(물론 기억하지 못한다) 좋았다.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 발길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린다는 것! 감탄사를 내뱉게 만드는 삶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는 것! 그러면서 커피 한잔에 시간을 녹이고, 여유를 곱씹으며 쉴 수 있다는 것이 축복 같다. 더할 나위 없는 순간들이다. 내 삶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이런 순간을 아내와 같이 경험하고 싶은 것도 욕심의 하나다. 탠덤 할 수 있는 바이크를 선택해서 같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오길 매일 소망한다.
14시 05분, 『이운 마을』이다.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668-12번지라고 되어 있다. 도착해선 마을 이름을 몰라 궁금했다. 마침 바이크 옆을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여쭈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기 마을 이름이 뭔가요?”
“응? 뭐라구요?”
“마을 이름이 뭔가요? 여기 마을 이름요!”
“이운 마을요.”
“네? 이울요?”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이울’이라고 들었다. 다시 여쭌다.
이운 마을 전경! 나무 그늘이 멋있어서 바이크를 세웠다. |
“이운이요. 여기는 ‘이운’이고, 저쪽은 ‘영운’이요.”
“이운 마을요?”
“네”
“이름이 참 좋네요. ‘이운’이라니”
“어디서 왔어요?”
오토바이를 보고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부산이요!”
“뭐?”
“네! 부산이요. 부산에 기장군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왔습니다.”
“아! 부산! 우리 아들이 부산에 살아요. 그 뒤에 지금 있네요.”
오토바이가 정차한 바로 옆은 담으로 막혔지만, 민가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세차하는 분이 보였다. 그가 자기 아들이라는 말씀이셨다.
이운 마을엔 특이하게도 ‘수산’이 많다. 아령수산, 삼성수산, 영진수산, 호양수산, 봉성수산 등 눈에 보이는 것만 다섯이다. 그럼에도 여타의 어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