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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2차 전국일주 - 대구, 문경, 연풍휴게소, 이천, 남양주, 서울 중랑구) 1편

탁왕 2023. 9. 12. 10:22

*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 1일 차(1편)

 

2023. 5. 20(토) 맑음
지난 5월 15일(월)부터 19일(금)까지 오토바이로 2차 전국일주를 다녀왔다. 그 여행기를 일기에 남겨둔다. 일기이면서 일종의 여행 수기라고 해도 되지 싶다. 

 
1일 차 기록이다. 기장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곧장 올라가는 일정인데, 많은 라이더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또는 부산에서 서울로 곧바로 내려오거나 상경하는 영상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린 것을 보았다. 그들이 도전한 것과 같은 도전을 오롯이 하고 싶었다. 언제 또 해볼 것인가? 기회가 있을 적에 해보자! 이게 이유였고, 2차 전국일주를 짤 적에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이 부산에서 서울로 하루에 바이크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다.
 
15일(월) 새벽에 일어났다. 가슴이 설렜다. 5%의 걱정과 95%의 흥분과 기대, 행복감으로 무장한 채 아침 06시 40분 무렵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이가 졸리는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를 포옹했다. 같이 포옹하면서 천천히 안전하게 다녀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안심시키고는 부리나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2(이)것이 자유이자 행복이지 차가운 새벽 공기도 이 기분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누비는 내 영혼의 자유로움
 국토를 달리는 내 몸의 전율과 흥분
 일터에선 느낄 수 없는 해방감에 구름 속을 산책하는 듯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즐기려 한다네』
 

 

금산주유소에서 애인과 휴식 중인 MT-07

 


대략적인 노선은 일광신도시에서 정관 – 양산 – 삼랑진 – 경산시 – 대구시 – 상주시 – 괴산군 – 이천시와 여주시 방향 – 양평군 – 남양주시 – 서울 중랑구 순으로 이동하는 경로였다.  첫 경유지인 대구시 인교동을 들렀다. 인교동엔 55년 역사의 오토바이 거리가 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곳이고 라이더들에겐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바이크 수리 장인을 포함해서 오토바이 관련 업체들이 몰린 곳이고 관련 상품들이 없는 게 없다고 하는 동네라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
 
09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있었고, 그곳에 여러 대의 바이크가 주차 중이었다. 마침 빈 곳이 있어 주차했더니 맞은편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날 보며 오토바이를 언제 뺄 거냐며 시비조로 말을 걸어왔다. 내가 주차한 곳 가게 주인이 마침 내가 주차한 딱 그 위치에만 다른 차들이 주차 못하게 봐 달라며 자기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말투에서 시비성 기운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고, 여행을 망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곧 옮길 것이고 친절하게도 당신이 그런 얘길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받아쳤다.
 
야마하 매장(MT-07 만든 회사가 야마하)이 있어 들어갔다. 일하는 직원에게 MT-07 윈드 스크린 길이가 지금 내 오토바이에 부착된 것보다 조금 더 긴 제품이 있는지, 또는 그런 제품을 판매하는 곳을 아는지 물었다. 친절하게도 이 직원이 밖에 주차된 내 오토바이를 확인하고는 인터넷 서핑해서 정보를 알려주었다. 내 기억력을 나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폰 카메라로 촬영해두었다.
 

인교동 야마하(위) 매장과 오토바이 거리(아래)

 


알려준 그 윈드 스크린은 길이가 40cm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그 정도면 주행풍을 넉넉하게 차단할 순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30cm 정도 길이였다. 겨울 라이딩 중 찬 공기를 계속 맞으면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다. 지난 1차 전국일주에서 뼈에 사무치게 느낀 사실이기도 하다. 혼자 검색해선 찾을 수 없었는데, 이게 성과라면 성과다.
 
대구를 지나 달리는 왼쪽으로 시원한 강줄기가 나타났다. 저게 하천이야 강이야 호수야…. 생각했는데, 멍청하게도 다름 아닌 낙동강이었다. 낙동강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나? 어떻게 저런 모습의 낙동강을 여태 모르고 살았지?  낙동강은 한동안 나와 같이 달렸다. 곡선의 자연스러움은 좌에서 우로, 또는 그 반대로 강줄기가 내달렸고,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을 응원하기 위해 돌과 풀과 나무와 갈대들이 양방향에서 도열하고 있었다.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왕왕 새들이 노래하며 날아오른다. 장관이었다.
 
싸늘함을 느꼈던 새벽 공기가 10시를 지나면서 따듯해졌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내 몸이 덥다는 반응을 보인다. 오토바이 운전은 2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자동이 아닌 매뉴얼 바이크라 기어변속과 스로틀 조작을 매우 집중해서 해야 했다. 특히 스로틀(엑셀)은 GPS 기준 시속 100㎞를 넘기지 않으려고 미세한 감각까지 동원해서 운전했기 때문에 오른손이 떨리고 저리다가 나중엔 감각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 주기가 1시간 반 정도 운전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스로틀을 미세하게 조작하는 이유는 거의 70마력의 힘을 가진 700cc의 이 오토바이가 약간이라도 과하게 당기면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 통제가 안 될 정도로 힘이 좋기 때문이고, 비싼 오토바이들은 라이더의 그런 실수조차도 잡아주는 전자장치가 있지만, MT-07에는 그런 것이 없다.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주기적으로 쉬면서 커피와 당분을 보충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새문경농협 인근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바이크를 세웠다. 꽤 오래 운전했고, 점심시간을 넘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농협과 파출소, 면사무소까지 있는 동네인데 주변에 식당이 별로 없었다. 큰길에 파출소가 있었고 농협은 그 옆이었다.  경찰이 이용하는 식당이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파출소 직원에게 식당 소개를 요청했다. 경사 계급을 한 직원이 자신 역시 이곳에 발령받고 온 것이 최근이라 식당을 잘 모른단다. ‘하필이면 당신이 최근 발령받았다고?’
 
다만, 큰길 다리 건너 왼쪽으로 면사무소가 있고, 그 옆에 묵국수를 파는 식당이 있으니 가보란다. 건널목을 건너 진입해야 하는데, 큰길로 계속 지나가는 바람에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중앙분리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연풍휴게소까지 내달렸다.
 
연풍휴게소(충북 괴산군 연풍면 소재)는 밖에서 볼 때는 조용했고, 안에서 식사할 때는 깔끔했다. 바나나 한 개로 아침을 때웠기 때문에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1만 1천 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았다.  식사하고 빈 그릇을 퇴식구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만지면서 쉬다가 일어나 그냥 나가려 했다. 당연히 직원이 제지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빈 그릇을 안 치우고 간다고? 뭐 저런 예의 없는 놈이 다 있지?’ 나는 정중히 직원에게 사과했다.

 

연풍휴게소 내부 식당(위)과 제육볶음(아래)


 
이번 여행을 앞두고 바이크 양쪽으로 사이드 백을 달았다. 4박 5일 일정에 필요한 옷이며 세면도구 등을 나눠서 담았는데 공간은 충분했고, 102만 원을 지불하고 부착한 보람이 있었다. 다만 비 올 적에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 여행하는 동안 커피값을 절약하기 위해 집에서 가져온‘다비도프’커피를 따로 챙겨서 매일 아침 보온통에 담았다. 작은 컵으로 두 잔 분량이지만, 혼자 마실만한 양이었다. 이 얼마나 경제적인 행동인가!
 

연풍휴게소에서 나를 훈육시킨 공자님!


일반국도를 주행 중에 가끔 내 오토바이와 속도 경쟁하려는 특이한 놈(?)들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미친놈(?)은 창원시를 지날 적에 운전면허 시험용 승용차를 운전하는 작자였다. 시험용 차량이 응시자 테스트 목적으로 그곳에 나왔을 리 없고, 아마도 운전학원 관계자가 일 때문에 그 차량을 사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차량이 합류 도로로 나온 다음에 굳이 나를 추월해서 내 앞을 막아섰다는 것과 약간의 정체 지역에서 옆 차선을 이용해서 내가 앞서나가자 이 양반이 풀 악셀을 밝아가며 또 나를 추월해서는 앞에 선다. 내가 인지한 시점이 바로 그때였다. ‘뭐야! 이 개새끼는…….!’
그렇게 몇 ㎞ 달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분리되는 도로를 타고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누구와도 속도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행을 마칠 때까지 지켰다.
 
다른 사례는 서울로 올라갈 때인데, 그때도 별로 길지 않은 거리를 달려 빠져나간 그 차량이 굳이 나를 추월해서 내 앞으로 진입했다. 마찬가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옆 차선을 이용해 그 차량을 추월(나는 줄곧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했더니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밝아가며 역시 나를 추월했다가 옆 도로로 빠져나간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미친놈! 너 그러다가 일찍 뒤지는 수가 있다.’
 
서울 중랑구 둘째 형 아파트에 도착하기 104㎞ 후방에서 처음으로 서울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달리면서 내심 기다렸다. 언제 ‘서울’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는지 말이다.
 
여주시를 통과했는데, 시골이었다. 가축들의 똥냄새와 거름 냄새가 진동하는.. 아주 익숙한 느낌의 시골길을 달리다가 하마터면 1톤 트럭과 충돌할 뻔했다.  내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오른쪽이다. 교차로(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오는 도로)에서 좌회전하려는 트럭 기사가 직진 중인 날 보지 않고 자신의 오른쪽에서 진입 중인 차들만 확인하고 끼어들었다. 기사가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어 방어운전을 했고, 덕분에 끼어드는 트럭을 피해서 회피기동을 할 수 있었다. 그 운전자도 미안했는지 손을 들어 마음을 전한다. 십년감수했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지 싶다.
 

이천을 통과하고 더위를 피해 쉬는 MT-07


양평군과 남양주시를 통과해 서울 중랑구로 들어갔다. 남양주시를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국도 왼쪽으로 흘러가는 차분하면서 정중동(靜中動 /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한 한강의 모습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이었다. 지난 첫 일주 때 강릉에서 화진포를 지나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들어올 적에 통과했던 바로 그 도로였다.
‘오호라... 이게 같은 국도로 진입하는구나!’
부산에서 서울로 진입할 적에도 같은 길을 라이딩한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전국일주를 하지 않았다면, 부산에서 서울로 곧장 올라오는 일정을 잡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형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는 자기 방에서 컴퓨터 삼매경이란다.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다는데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일전에 전화로 서울 올라가 형을 찾아갈 것이라 했을 적에 부부가 머뭇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집 정리가 안 된 상태라 동생이 마음 편히 머물기 힘들 것으로 생각하신 모양이고, 집에 도착했을 적에 그런 형의 마음을 이해했다. 사람 사는 집이 어느 누군들 이러지 않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저녁 식사는 둘째 형 아파트 인근 식당에서 감자탕으로 해결했다. 형과 나, 조카 셋이었다. 형의 안내로 중랑구 장미공원으로 향했다. 가며 오며 형은 경찰 시절 자신의 여러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내가 추임새를 넣으며 집중해서 듣자 더 많은 얘길 했다. 그런 모습에서 날카로움이 빠진 형을 느낀다. 퇴직 전에 경찰인 형을 대면할 적이면 늘 칼이나 송곳 같은 뭔가가 형을 감싼 기분이었다.
 

중랑구 장미공원

 


공원 가는 길에 조성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는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또한 장미공원의 규모는 할 말을 잃게 했다. 장미터널의 길이만도 400미터가 넘는다는데..., 우리는 200미터 정도만 걸었다.
 
『친근한 듯 어색한 듯 가까우면서 먼 듯
 절친한 형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 가진 확실하지. 한 시절 내 우상이었던 그는 7살 많은 내 형이지
 둘도 없는 둘째 형아
 째째(쩨째)하지 않고 화끈하면서 상남자 성격이었던 우리 형아
 형 얼굴에 세월 가득 묻어나는 것이 어찌 이리도 애잔한지….』
 

장미터널을 지나며 꽃이 엄청 예뻐 사진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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