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6(일) 약간 흐림
4월 15일인 토요일 어제 12시 반 정도에 전국일주를 떠났던 오토바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끝은 늘 그 처음으로 돌아오는 법이라 했던가...^^ 흥미진진했고, 순간순간 위험하기도 했던 MT-07과 함께 떠났던 전국일주기를 이번 일기에 남겨둔다. 먼저 5박 6일간의 간단한 코스를 정리하면,
1일차 – 일광신도시를 출발해서 가급적 국도 7호선을 타고 강릉으로, 중간에 들렀던 곳은 울진 망양휴게소, 이현세 만화 매화벽화거리(울진군 매화면 소재), 울진 죽변 스카이레일이다. 죽변 방문했을 적에 *** 씨를 만났다. 강릉에 투숙했던 호텔은 「파인아트라벨」인데, 일정 중 가장 좋았다.
2일차 – 호텔을 출발해서 큰형 집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 ****로, 중간에 들렀던 곳은 화진포해수욕장, 진부령, 용산역 주변, 동부이촌동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기록한다.(강릉에서는 태풍 급의 바람이 불었고, 진부령을 넘어 내려가면서는 비바람이 몰아쳤음)
3일차 – 큰형 집에서 출발, 군산으로 갔다. 중간에 들렀던 곳은 만리포해수욕장과 변산반도, 그리고 보령시에 사업장이 있는 박** 고문 현장사무실(보령시 청소면 야현리 619-1)이다.(날씨는 괜찮았으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임)
4일차 – 군산에서 해남으로, 들렀던 곳은 새만금 방파제, 한국농어촌공사(새만금33센터), 진도 철찰산(진도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었음), 어촌마을(목포지방해양수산청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한 건물에 있는 곳임), 진돗개 테마파크, 해남의 어촌마을 옥동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어장.(미세먼지가 그렇게 강하진 않았음)
5일차 – 해남 봄 호텔에서 여수로, 땅끝 마을(송호해수욕장과 땅끝 터미널 방문), 이름 모를 어느 어촌마을,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수많은 어촌마을들을 지나감. 비가 왔으나 바람은 없었음. 호텔(여수 CD호텔) 앞 「남진이네 게장, 간장 명가」에서 게장 정식을 먹음. 식사다운 식사였음.
6일차 – 집으로....! 호텔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들렀던 곳은 삼랑진역임. 비가 왔고 마지막 날 일정이라 매우 피곤하여 곧장 집으로 달렸음. 또 거리상으로는 부산 시내를 지나는 것이 짧지만, 시내 도로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가다 서다를 무한 반복하는 벌을 받고 싶지 않아 양산으로 돌아옴.
2023년 4월 10일 새벽, 대망의 전국일주(1차)를 떠나는 첫날에 애인(MT-07)과 기념하다. |
1일차부터 기록을 시작하자. 평일에 기상하던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전날 가방을 정리했기 때문에 아침에 달리 더 준비할 것은 없었다. 07시에 출발을 할 것이었기에 복장을 갖추기 전에 오토바이 텐덤석에 가방을 결박했다. 이것도 물론 전날 연습차원에서 묶어보았다. 제대로 결박하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일기를 확인했을 적에 5박 6일 중 비가 오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가방이 들어갈만한 비닐주머니를 챙겼는데, 그 주머니는 마라톤대회에서 받았던 것이다.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아내와 포옹을 했다. 아내는 하루 일정 중 중간중간 가는 곳을 톡으로 올려서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게 해달라 했고 나는 매일 그렇게 했다. 와이프의 잘 다녀오라는 염려 섞인 말을 뒤로 하고 출발했다. 아침 날씨는 조금 싸늘했다. 옷을 잘 챙겨 입었는데도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크에 따로 사이드 백을 달지 않아 여분의 옷을 챙겨갈 공간이 별로 없었다. 첫날 입었던 복장은 여행 내내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일주일의 자유가 주어졌고, 누구의 지시를 받지도 않을 시간을 자유롭게 누릴 생각에 바이크를 타는 내내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포항 진입 전에 국도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1시간 반 이상 달린 뒤였고, 추웠던 탓에 따듯한 커피로 속을 녹이면서 오뎅과 토스트로 요기를 했다. 여행 때문에 기분이 업 된 상태여서인지 맛있었다. 여주인은 오토바이로 온 것을 보면서 자기 남편도 최근 바이크를 타게 해달라며 조르고 있단다. 절대로 안 된다며 경고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속을 데운 다음 울진 망양휴게소로 향했다. 해가 뜨면서 날씨는 좋았다. 달리기에도 포근할 정도였다. *** 씨와 통화했고, 순천 모친 댁에서 죽변으로 돌아오는 중이라 했다. 오후 1시 반 정도에 도착할 것이라나... 만나 커피라도 마신 다음에 출발할 생각으로 이현세 만화매화거리와 죽변 스카이레일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여행 중 중간 도착지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식사까지 4시간을 쉬었다.
매화면 이현세 만화마을, 한 번은 가서 볼 것을 권한다. |
이현세 만화벽화거리는 기대 이상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포함해서 대표작들이 마을 벽화에 재현되어 있었다. 내용을 즐기면서 구경한다면 반나절은 충분히 필요할 듯싶었다. 벽화에 재현된 만화도 여지없이 이현세 만화가의 솜씨를 그대로 담았다고 봐도 된다. 직접 당사자가 그린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벽화들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를 뿐이지!
분위기와 벽화의 규모, 주변 풍경들을 눈으로 스캐치하면서 돌아다녔고, 벽면의 만화들은 휴대폰에 담았다. 특이한 점은 크지 않은 마을에 학교, 면사무소와 우체국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평일인 월요일에 찾아서인지 나와 같은 외지인은 많이 만나질 못했다.
죽변 스카이레일 주변을 한참 돌아다녔다. 오후 1시 반이 지난 시간에 *** 씨를 만났고, 관광지 바로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레일을 탔고, 커피도 같이 마셨다. 식사는 내가, 나머지는 ** 씨가 계산했다. 굳이 그러겠다고 했다. 부산을 떠나 죽변에서의 삶은 어떤지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직장(울진군에 의료원이 있다는데, 그곳에서 일한다고. 당연히 앞서 다닌 직장은 그만두었다고 한다.)과 여가생활 등 궁금한 것도 물었다.
죽변 스카이레일 아래, 바다가 아기자기하며 이쁘다. |
죽변 스카이레일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등대가 나온다(오른쪽) |
강릉으로 떠나기 전에 ** 씨가 선크림을 사주었다. 굳이... 강릉에 가면 강릉항에 커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데, 새겨듣질 않았다. 도착해서 보니까 정말 커피거리가 있었다. 오래 구경하진 않았고, 바이크로 돌아보았다.
강릉항과 커피거리, 대단한 규모였다. |
닭강정과 맥주를 사서 호텔 방에서 혼자 마셨는데, 흥분된 기분 탓이었을까 그마저도 마냥 운치 있다는 생각..
여행 중 공통적인 사항 하나를 기억났을 적에 기록한다. MT-07에게 연료를 넣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탱크 용량이 그다지 크지 않아(생긴 것은 탱크 용량이 아주 색시하면서 빵빵하다) 하루 두 번씩은 주유소를 찾아야했다. 출발 전에 연료를 가득 채웠고, 그 연료로는 360킬로를 주파할 수 없다. 연료 게이지가 한 칸 남았을 적에 주행 방향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았고, 그때 채우면 7리터 정도 들어갔다.
6일간 주파한 거리는 2,140㎞이고 바이크에 찍힌 평균 연비는 리터당 25.2㎞였다. 계산상으로는 6일 동안 84리터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계이지가 한 칸 남았을 적에 넣게 되니까 하루 2회는 반드시 넣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리터당 25㎞ 이상 달린 것은 MT-07에겐 대단한 것이다. 이 아이는 사실 속도 면에서 절대 (오버)리터 급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미들급 엔진(689cc)으로 시속 220㎞까지 나온다. 고속으로 달리는 라이더들과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는 바이크다. 속도 면에서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시속 150㎞ 이상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이 나라에선 없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도로로의 바이크 진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MT-07은 150㎞ 이상 속도를 얼마든지 언제든지 그리고 쉽게 낼 수 있다. 그 정도로 달리게 되면 휘발유 1리터당 15-17킬로 나온다. 여행 중에 어떤 경우에도 과속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1일차 정리를 마친다. 호텔에서 일찍 잤다. 하루 6시간 이상 바이크를 운전한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다음 날을 위해 피로에서 탈출하고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최고의 방법은 충분히 자는 것이다. 때문에 여행 내내 밤 10시 전에 잠들었다.
2일차..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전날 준비한 컵라면과 먹다 남은 닭강정으로 아침을 때웠다.(아침을 챙겨 먹은 것도 강릉과 큰형 집 두 번임.) 따듯한 국물 생각 때문에 라면을 먹은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닭강정은 다 먹지 못했다. 출발 전에 미리 가방을 묶었다. 여행 내내 반복했는데, 집으로 복귀하면 반드시 사이드 백(88만원임)을 달고 말리라 다짐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휘이이이... 하는 소리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강릉 날씨는 바람 외엔 괜찮았지만, 진부령 쪽으로 하늘을 보았더니 비구름이 가득한 상태였다. 화진포 해변으로 방향을 잡았다. 숙소에서 60㎞ 정도 거리였을 것이다. 2시간 걸렸고, 도중에 여러 번 사고를 걱정할 정도로 주행상태가 위험하고 불안했다. 태풍급 바람은 주행 중인 오토바이를 사정없이 휘감았다. 이러다가 큰 사고 나는 거 아냐? 하는 걱정 때문에 80㎞ 이하로 속도를 낮추었다.
화진포로 올라가는 동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람이 불었고, 여차하면 도로 밖으로 처박힐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왼쪽에 산이나 아파트 단지, 또는 차단막이 있으면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으며, 뻥 뚫린 도로를 지날 적이면 무서웠다. 그 정도로 바람의 위력이 대단했다. 연신 바이크가 비틀거렸고, 나는 중심을 잡고자 안간힘을 썼다. 절대 사고를 당할 수 없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간신히 화진포에 도착했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강한 바람이 모래와 먼지들로 사방을 메웠을 뿐이다. 카페도, 매점도, 박물관도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화진포 해양박물관, 영상 편집하는 법을 몰라 아쉽다. 맑은 날 태풍급 위력의 바람이 불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진부령을 지나 서울에서 60킬로 후방 지점 식당을 들러 뉴스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 강릉에 큰 산불이 났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희한했다. 화진포로 가는 내내 오늘 산불이 나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걱정을 했으니까!
20분 정도 쉬었는데도 바람은 여전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진부령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강한 바람을 걱정했고, 진부령에 도착해서는 백두대간 중 한 곳에 도착했다는 생각과 그곳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흘리커피(아르바이트 중인 학생에게 내 명함을 주었다. 혹시라도 부산에 와서 ***을 방문하게 되면 내 명함을 가지고 날 찾으라 했다. 그러면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또는 명함을 그냥 버려도 된다 했다.)」라는 곳에 들러 몸을 녹인 다음 다시 출발했을 적엔 비까지 내려 좌절했다.
백두대간 진부령,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오토바이로 백두대간을 다녀오는 것이다. |
우의가 가방에 있었기에 진부령을 내려가다가 빈 건물이 있는 도로 밖에 바이크를 세워 짐을 풀었다. 금방 멈출 비로 보이지 않아 우의로 갈아입고, 다시 가방을 묶었더니 40분이 지났다. 복귀하면 사이드 백을 꼭 달고 말리라.
비를 맞으며 서울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위험했다. 바람도 무서웠지만, 비에 젖은 아스팔트는 커브 길에서 여차하면 미끄러질 수 있었다. 속도를 높일 수 없었다. 시속 80㎞를 넘기지 않고 주행했고, 계속 비를 맞아서인지 헬멧 안에는 온통 김이 서려 시야가 흐렸으며, 더군다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설상가상이라 하지 않을까! 최대한 속도를 내지 않고 또 2차선에서 주행 중인 다른 차량들과 속도를 맞춰서 서울로 서울로 향했다.
거의 2시가 가까운 시간에 주행 방향 도로 옆 식당에 들렀다. 처참한 수준의 몰골과 달리 해장탕으로 선택한 점심은 진국이었다. 몸을 녹이고 다시 채비를 한다. 그러면서도 행복했다. 정말 연극 같은 한 장면이지 않나 싶다. 비바람 때문에 주행은 겁이 나는데, 여행은 즐거운 상황이니 말이다.
용산에 도착했을 적엔 다행스럽게도 비가 멈췄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용산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었다. 그 기억의 흔적을 찾으려고 찾아왔는데... 우선 용산역 광장과 그 주변은 흔적도 없었다. 용산역 광장으로 진입하기 전의 블록은 윤락가였고, 광장은 넓었으며 그 왼쪽에 양지학원과 성지학원이 있었다. 이젠 내 기억에만 남았다. 또 큰 도로에는 육교가 있었는데 사라졌으며, 도로 넘어 몇 블록 안에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재수하는 동안 달동네에 살았지만, 재개발 되어 부촌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돈 벌기 위해 세차를 했으나, 그 아파트 단지는 해운대의 엘시티보다 더 화려하고 비싼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전 사망한 가수 현미가 살았던 그 렉스아파트가 말이다.
두 가지 흔적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렉스아파트 옆에 왕자맨션이라고 당시에 비교적 저렴한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그게 그대로였다. 동부이촌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찻길을 건너야 했는데, 그 기찻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마 위로를 얻었다고 할까.
큰형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용산에서 32㎞ 정도 거리였다. 형 집에 도착하기 전에 기름을 채우고, 주유소 옆에 세차장이 있어 바이크를 씻었다. 나만큼이나 처참한 몰골로 바뀐 MT-07을 그대로 데려갈 순 없었다. 꽃단장은 아닐 지라도 깨끗하게 씻길 순 있었다. 근 30분을 씨름한 끝에.
도착했을 적에 큰형수와 사돈(형수 모친)이 계셨고, 갈비탕으로 저녁을 준비해 주셨다. 반찬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웠으며,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큰형이 도착했다. 큰형수와는 방송계 사정, 최근 OTT 동향 등을 들었다. 드라마 업계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라 형수의 방송 작가로서의 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신다.
형수 얘길 모두 듣고 내가 느낀 점은 업계 사정이 변해 방송 작가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창의적이고 기발한 신진 작가들에게 밀려 작품성 싸움에서 살아남기가 몹시도 힘들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내 생각을 형수가 알게 된다면 가슴아파하겠지만, 여튼 식사를 하고 일찍 잤다. 내일을 위해.
3일차, 출발 전에 형수가 아침 식사를 건강식으로 제공해주었다. 그런 식사를 매일 받고 있는 큰형은 절대 아파선 안 되겠다는 농 섞인 말을 건냈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큰형에게 내 바이크를 소개했다.
일산 동구에서 아침 07시 반 정도에 출발했다. 만리포를 거쳐 보령을 지나 군산까지 가는 일정인데,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는데만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겨우 40㎞ 거리를 통과하는데 말이다.
시화호(처음엔 새만금인 줄 착각했는데, 박** 고문이 바로잡아 주었다. / 시화호도 아니다. 아산 방조제인데, 실수 조차도 기록하고자 삭제하지 않는다.) 공사 현장이 대단했다. 이렇게 엄청난 공사를 할 줄이야... 감탄하다가, 군산에서 해남가면서 통과한 새만금 방파제 일대는 더 어마어마해서 감격했다.
만리포, 정말이지 영상을 편집할 줄 몰라 안타깝고 아쉽다. |
만리포를 들렀고,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와우! 하는 감동의 멘트를 토해냈다. 나에게 이런 날이 있다니...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다. 파도소리를 듣기도 하고, 영상에 담기도 했다.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게럭지일 것이다... 묵은 김치와 게를 넣어 만든 찌개인데, 별미라는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 속이 게운할 정도로 맛있었다.
보령에 들러 박** 고문을 찾았다. 현장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고, 그곳에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었다. 군산에 도착하면 근대역사문화거리를 돌아보라는 얘길 해주었고, 새만금도 꼭 구경하란다. 같은 탁구장에서 운동하던 사람을 보령에서 그것도 전국일주를 하던 중에 만나는 행운을 누릴 줄이야! 보령에서의 공사현장은 2027년까지 예정 되어 있다고 한다. 자신은 감리 현장사업소의 책임자이고, 그 기간 동안 계속 그곳에서 근무할 것이라 한다.
박 고문을 뒤로 하고 다시 군산으로 향했다. 추천 장소인 근대역사박물관과 그 주변을 돌아보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다녔기 때문에 더는 개펄이 별나지 않다. 다만, 군산에는 1930년대 당시 일제 강점기를 떠올릴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여행 명소로 손색이 없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
특이하게도 철길마을이 있어 찾아갔는데, 명성과 달리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철길 양 옆으로 조성된 가게들이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는데, 거리는 300미터 정도 된단다. 실제 거리는 더 짧은 것 같았다. 쫀득이, 옛날 교련복과 학생복 등을 팔거나 대여하는 것 같았고, 여행지로서 거의 끝물이지 싶다.
철길마을, 내부를 영상으로 촬영했는데 안타깝게도 영상 올리는 방법을 모른다. |
근대역사박물관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소개한 식사 메뉴(짬뽕으로 유명하단다)를 검색했더니 박물관 도로 맞은편에 식당이 있었다. 식당 앞에 바이크를 세우고 들어가 짬뽕을 주문했다. 일반 중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짬뽕이 아니라 밝은 국물 색이었다. 메뉴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타짜 영화에 등장한 식당이라는 것을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유해진이 등장한 바로 그 영화였다.
식당 내부에 걸려 있는 사진 |
맛있게 식사했고 그 맛에 만족했다. 늘 먹었던 짬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메운 맛에 식겁하고 연거푸 기침을 했던 짬뽕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소문났겠지. 식사 후에 호텔로 이동했고, 짐을 풀었다. 호텔 예약은 앱‘여기 어때’를 처음 깔고 이용했는데, 예약하기 쉽다는 장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도 이용해야지 하는 생각은 처음이다.
여독이 쌓여가는 상황이라 역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하면 종합 비타민부터 먹었다. 조금이라도 피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4일차, 군산에서 해남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 가장 감격한 것은 새만큼 방파제였다. 도중에 세 번이나 바이크를 세우고 구경했다. 그 규모라니...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을 현장이었다. 오토바이로 달리고 달려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규모에 놀라고, 인류가 만들어낸 건설 기술로 완공한 방파제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날씨가 괜찮았기에 오롯이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좋은 그림은 모두 영상으로 촬영했는데, 역시 영상 올리는 방법을 몰라 안타깝다. 새만금33센터 주변 전경 |
방파제에서 구경하던 중에 자전거로 여행하는 일행들을 만났다. 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전국을 종주하고 있단다. 자전거로 전국을 돌아본다니... 많이 놀랐다. 나는 바이크로 전국일주 중이라며 소개한 다음,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들의 무사귀가를 빌었다. 그리고 한국농어촌공사(새만금33센터) 안쪽으로 들어가 사진을 좀 찍으려 했더니 정문 입구에서 제지한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기에 돌아 나왔다. 아쉬웠다.
새만금을 지나 점심을 먹고자 식당에 들렀는데, 맛있어 보이는 메뉴는 모두 2인 이상 주문 시에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여 놓았다. 여행 출발할 때 걱정했던 상황이다. 그 식당에서는 결국 소 내장탕만 먹을 수 있었다.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주문, 2인 이상 주문시 가능 |
채석강 |
진도에 진입했다. 가는 곳마다 개펄과 해안이 절경이었다. 그 모두를 영상으로 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설정한 네비가 산 정상으로 계속 안내한다. 시멘트로 포장한 울퉁불퉁한 길이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언제 다시 찾겠냐 싶어 계속 올라갔다. 그 산은 철찰산이었고, 산 정상에 신기하게도 진도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었다.
산 정상에 레이더 관측소가 있었다. |
신발과 옷을 벗고 쉬고 있었더니, 관측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스쿠터를 손보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간단히 내 소개를 했더니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자신도 오토바이를 좋아하는데, 특히 수리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단다. 산 정상까지 50cc 스쿠터를 실고 와서 수리하는 중이며, 오토바이 수리센터를 믿지 말라는 말을 한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다시 하산했다.
철찰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 |
팽목항으로 가는 길을 주욱 따라가다가 거의 마지막 위치에서 이름 모를 다른 어촌으로 진입했다. 팽목항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찾아갔다가는 틀림없이 그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였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을 것이고, 당시 그 상황을 수습하지 못한 당시 정부와 그 일당들에게 틀림없이 욕을 퍼붓고 저주했을 것이기에 가지 않았다.
방문한 어촌에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입주한 건물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지만, 따듯한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없어 오래 머물지 않고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진돗개 테마파크였다. 그 어촌계에서 20킬로 조금 넘는 곳에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호텔가는 방향이었다. 도착하고서 가장 기뻤던 것은 카페가 있다는 것, 또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고압 에어스프레이기가 있다는 거였다. 복장은 미세먼지로 떡이 된 상태였다. 미세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방아쇠를 잡고 한참이나 놓지 않았다. 간간이 방문객들이 찾고 있었는데, 평일이었기 때문일까 한산해보였다. 진돗개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진도개 테마파크, 나를 봐라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인근의 어촌마을로 향했다.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더니 내 입으로 옥동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어장이라 한다. 그곳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분을 만났고 잠시 얘길 나누었다. 그 사람은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정년퇴직했다는 뜻) 귀향했다고 한다. 낚시는 초보라는데, 잡아 올린 생선들만 보면 초보가 아니지 싶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푼 다음, 주변 식당들을 찾아다녔지만, 역시나 먹을 만한 메뉴... 특히 낙지 요리는 2인 이상 주문 시 가능이었다. 해남까지 와서 중식당이나 국밥집을 이용할 순 없었다. 초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1인 식사가 가능했다. 다만, 모둠초밥 1인분에 29,000원이었다.
주방장 1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고, 찾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혼자 바빠 보였다. 남는 것이 시간이라 얼마든지 기다려주었다. 주인 외모가 조폭이나 사기꾼이 연상될 법한 인상이었지만, 초밥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기대하지 않고 찾아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 했더니 덤으로 초밥 2개를 더 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명함을 하나 챙겼다.
바로 옆 건물이 커피숍이었다. 초밥을 먹은 다음 카라멜 마키아또는 무슨 맛일까 싶어 주문했다. 여행의 흥분과 행복,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캔 맥주와 안주를 사려고 인근 마트에 들렀더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 놀랐다. 그들 옷차림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타는 선원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젊은 동남아 외국인들이 구매한 것들은 맥주류 등 술이었다. 아마도 그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체 불가능한 인력일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직장일 것이니 말이다. 그들 표정에서는 침울하거나 슬프거나, 화난 표정들이 일절 없었다. 하루를 마친 즐거움과 일거리가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 같은 표정들로 가득했다. 그들을 응원했다.
호텔에 들러 준비된 물건들을 확인하면서 놀란 것은, 다른 곳과는 달리 이 호텔(해남 ** 호텔)에는 콘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얼마나 웃겼는지... 호텔 측에서 콘돔을 준비할 만큼 그런 손님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뜻이지 않겠나...
5일차, 해남에서 여수로 넘어가는 일정이다. 가까운 거리로 가면 150킬로가 안 되지만, 유튜버 ‘더스티노’에서 추천한 노선을 선택했더니 100킬로가 더 늘었다. 더군다나 안타깝게도 비가 내렸고, 종일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비를 맞으면서 가방을 결박했는데, 깜박 잊고 선글라스를 꺼내고는 평소 사용하는 안경을 넣어버렸다. 풀고 다시 결박하면 되지만, 그러면 25분 정도 허비하게 되므로 그냥 출발했다.
비를 흠뻑 맞았다. 그 모습이 처절했다 한다. |
비가 오는 날씨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가는 길은.... 강릉에서 서울 갈 때 그 위험했던 상황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내가 장기재직휴가를 내고 바이크로 전국일주를 떠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나를 응원하기도 했지만,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왜 타느냐며 되묻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만에 하나 사고를 당하거나 나게 되면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왜 타느냐고 내가 그렇게 말했지 않냐?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는 무슨... 진즉에 그럴 줄 알았다니까!’ 라고 떠벌릴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해안도로를 타고 여수로 가는 길은 평소라면 더할 나위없는 선택지였다. 해안도로를 타고 갔기에 개펄이며 해안선을 즐길 법도 했지만, 마냥 좋을 순 없었다. 안전을 최우선에 놓고 신경을 곧추세웠기에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커브 길에서는 최대한 속도를 늦추었고, 심하게 꺾이는 좌․우회전 도로에서는 심지어 10㎞ 이하의 속도로 통과했다. 반듯한 도로에서도 80㎞ 정도 유지하고, 빨라도 100㎞ 이상을 당기지 않았다. 완만한 회전구간에서도 어김없이 속도를 낮추었다. 덕분에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또 매우 일찍 도착했다.
송호해수욕장에 잠시 정차한 것과, 해남 땅끝 터미널에서 휴식을 가진 것, 그리고 2시간 정도 주행한 다음 이름 모를 어촌에서 개펄을 보면서 다리를 푼 것이 전부였다.
땅끝항 여객선 터미널, 잠시 비가 그쳤다. |
점심 식사를 위해 방문한 곳은 해남과 여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인데, 내 기억력이 그 마을 이름을 외우도록 용납할 리가 있나... 마을 진입 전에 들렀던 주유소 주인이 ‘미정식당’을 추천했고, 네비로 검색했더니 나타난 마을이었다. 주유소 주인은 그 식당에 가면 자신이 추천했다는 말을 꼭 해달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식당은 빈 상태였다.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말을 대타로 찾은 식당 주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대타로 찾은 식당인데, 맛있었다. |
큰 기대 없이 찾은 대타 식당이었지만, 맛은 괜찮았고, 주인장은 동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해남과 여수 쪽 버스가 모두 찾아오는 노선이 있는 마을이라는 것과, 가까운 곳에 여수공항이 있다는 것! 또 산업단지는 아니지만,(클러스터를 말하는 것 같았음) 젊은이가 좋은 직장을 가질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젊은 사람이 없냐? 물었더니 대단위 주거 환경은 아직 없다고 한다. 대신 원룸은 충분해서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나.
여수에서는 엉뚱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 여수 밤바다를 본 것도 아니고, 인근 관광지를 찾은 것도 아니다. 저녁 식사를 꼭 현지 식으로 먹고 싶었는데, 호텔 앞 남진이네 게장, 간장 명가에서 1인식을 제공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저녁 7시 무렵에 식당을 찾았고, 게장 정식을 주문했다. 2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양의 식사를 받았는데, 맛보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렇게 많은 양에도 2만원 지불하면 충분했다.
2인 이상 주문 가능인데도, 나에겐 음식을 제공했다. |
식사하면서 식당 벽에 부착된 사진들에 눈이 갔다. 자세히 보았더니 정말 가수 ‘남진’으로 가득했다. 정확하게는 그 ‘남진’이 다른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고, 촬영된 장소는 바로 내가 식사 중인 식당이었다. 이 말인즉슨 남진이네 게장, 간장 명가의 주인이 진짜 ‘남진’이라는 것이다. 가수 남진이 주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손님들을 위해 노래 부를 무대가 식당 한켠에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이브로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6일차, 여전히 조금씩 비가 내렸다. 여독이 목까지 찬 상태라 다른 장소를 방문하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곧바로 귀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그 빌어먹을 부산 시내를 통과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삼랑진역을 통과하여 양산종합운동장 방향으로 해서 정관 월평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았다.
삼랑진역, 오토바이를 타면서부터 자주 통과하는 역이 되었다. |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돌아가는 길도 안전에 방점을 찍었고, 속도를 가급적 줄였다. 마지막 일정이다. 사고 날 순 없다. 건강한 몸과 멀쩡한 오토바이로 집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시야는 잘 확보되었고, 삼랑진역을 지나 양산으로 향하는 길이 맑은 날에 와인딩하기 좋았지만,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잠시 진주시(화장실이 급했다. 호텔에서 물을 마셨고, 인체 시계는 정확하게 반응했다. 커피 한 잔 주문하고 화장실을 물었더니 건물 경비실 아저씨에게 열쇠를 받아 이용해야 한단다. 다른 곳이 없냐는 말에는 옆에 요양원이 있단다. 다행이었다)와 삼랑진역에 도착해서 휴식을 가진 다음,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5박 6일간의 여행을 매우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막내 공주님이 집이 있었다. 공주님이 요리해준 점심을 먹고, 사우나를 가서 잠시 몸을 푼 다음, 비가 내리지 않는 틈을 포착해서 바이크를 세차장으로 데리고 가 꽃단장을 시켰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씻어냈더니 내 기분마저 후련했다.
아내는 토요일 일직이라 했다. 저녁에 **이가 퇴근한 다음, 가족 모두 자리에 모여 나의 전국일주 무사귀가를 축하하는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모두 감사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