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백두대간 종주 - 7편 / 눈과 비 사이에)

탁왕 2024. 4. 8. 08:53

* 7편 연재(노나무재, 두문동재, 함백산, 만항재, 사길령, 화방재, 내리고개, 소야재, 도래기재, 주실령)
 
4일 차(3월 28일, 목요일. 오후 비)
인체의 감각 시계는 놀랍도록 정확하다. 4일 차에도 05시 30분에 기상했다. 눈을 뜨자마자 일기예보부터 확인한다. 비 소식이 있지만, 어제보단 포근할 거란다. 오늘 주파해야 할 거리가 대략 340㎞다. 큰 대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속도 또한 거북이 수준일 것이다. 그래서 늦어도 07시 30분엔 출발하려 했다.
 
혹여나 남아 있을 피로를 제거하기 위해 종합영양제를 먹고,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고자 뜨거운 물로 마사지하듯 전신을 데운다. 몸이 가벼워졌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28번째 노나무재, 비 예보가 있어 장갑이 젖지 않도록 비닐을 씌웠다.

 
 
노나무재(정선군 화암면 백전리 601-11)까진 어렵지 않게 달렸다. 터널 입구 현판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긴다. 두문동재(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 2-140)를 향했다. 문제가 발생했다. 목적지 1를 남기고 더는 진입할 수가 없었다. 쌓인 눈이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입구를 막은 상태였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29번째 두문동재 후방 1킬로 지점에서 멈추다. 제설이 전혀 안 된 상태였다.

 
 
이곳 태백은 산세가 거칠고 날카롭다는 느낌이다. 계곡이 깊고 지형이 조금 험하다. 잘못 느낀 건가? 두문동재를 뒤로하고 어서 출발하자!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0번째인 함백산, 이곳을 지나쳐 왼쪽 입구쪽으로 한참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함백산(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 214-24)을 오를 적에 눈이 날리다가 급기야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아니었다. 순간 무서웠다. 폭설이면 어떡하지? 도로에 금방 갇힐 건데! 인증하는 장소를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위쪽으로 올라갔다. 네비에서의 목적지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눈발이 굵어진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바이크를 움직여선 안 되지 싶어, 세운 다음에 80령 종주 계획서를 다시 확인했다. 멍청하게도 지나쳤다. 아래쪽 입구에서 등산로 쉼터 표지판을 찾았어야 했다. 표지석만 찾았던 실수였다. 초행길 여행자에겐 언제 어디서든 발생해도 발생할 그런 실수다.
 
함백산 인증하고, 만항재(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865)로 향한다. 1㎞ 거리라 그나마 다행이다. 서둘렀다. 도착할 무렵 눈발이 약해진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1번째인 만항재, 함백산 인증 장소에서 가깝다.

 
 
사길령(태백시 혈동 161, 사찰 팔보암 뒤쪽 50m)을 향해 내려갈 때 눈이 비로 바뀐다. 신기하기도 하지! 해발 차이가 확연하다는 증거다. 사길령 표지석은 사찰 팔보암 건물 뒤쪽으로 약 50m 올라가야 한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2번째인 사길령, 팔보암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갔다.

 
 
사찰이 고요하고 조용했다. 목탁 소리도 독경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간혹 소곤소곤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본건물 방문이 열리면서 사찰 복장을 한 나이 지긋한 남자가 나오며 말을 걸어온다.
“처사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사찰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워서 미안합니다. 팔보암 뒤쪽에 사길령 표지석이 있어서 부득이 올라왔습니다.”
“여행 다니시는가 보죠? 어디서 오셨는지요?”
“네! 부산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날씨가 별로 안 좋네요. 조심히 다니시지요.”
“죄송합니다만, 사찰 화장실을 좀 사용해도 되겠는지요?”
“그러시지요. 사찰 저 안쪽으로 쭉 들어가시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화장실이 급했는데, 다행이다. 11시 15분, 계속 비가 온다. 그 사이에
화방재(태백시 혈동 산 52-2)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3번째인 화방재, 인증사진 찍을 때 본격적으로 비가 내렸다.

 
 
내리고개(영월군 김삿갓면 내리 산 99-5)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4번째인 내리고개,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중이다.

 
 
소야재(영월군 김삿갓면 내리 산 1-19)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5번째인 소야재, 비 때문에 메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도래기재(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산 1-39)를 인증사진을 남기면서 통과했지만, 속 비가 내려 메모를 할 수 없었다. 메모를 못 하니까 보고 느낀 것을 긴 시간 기억할 수도 없다. 장소 마다의 느낌과 감각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쉽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6번째인 도래기재

 
 
주실령(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산 1-53)에 도착해 인증사진을 담고 주변을 살폈더니 고맙게도 비를 피할 정자가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기록할 수 있었다. 이때 이미 우의 안쪽으로 옷이 젖기 시작했다. 우의로도 방수를 완벽하게 할 순 없었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37번째인 주실령, 이때 어찌 알았으랴?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소야재~주실령을 지날 때 차량이 뜸했다. 그렇지만 덤프트럭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메모를 그때그때 할 수 없는 것이 여행자로서 슬프다. 내 기억력이 나중에 메모하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팔보암을 통과한 이후로는 눈이 쌓인 곳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눈 쌓인 곳을 통과할 적이면 정말 무서웠다.
 
도래기재주실령을 지나면서는 산과 계곡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전까진 산과 능선 계곡이 나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행자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저 자연이 오토바이와 같이 달리는 중이라 생각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몸을 녹이기 위해 커피도 마셨으니 다시 달려보자. 빗길이니 모쪼록 조심 또 조심하자.(8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