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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거제도)

탁왕 2023. 9. 11. 10:25

*휴대폰으로 보며 읽을 경우 세로가 아닌 가로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제 글에는 여러 개의 n행시가 있거든요.

 

2023. 8. 03(목) 맑음(무더위)
  8월 2일과 3일, 1박 2일로 다녀온 여행 일정을 기록한다. 먼저 출발 하루 전(8월 1일) 있었던 일들 가운데 정리할 것이 있다.
  1일... 낙동강관리본부(출근길 편도 36㎞)로의 출근길이 평소보다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왕복 72㎞ 거리인지라 아침에 조금 늦게, 18시 이후 조금 이르게 출근하거나 퇴근하면, 조금 일찍 조금 늦은 출발들에 비해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 시간을 더 사용해야 한다.

『낙엽이 발 사이로 퀭하니 굴러가듯 낙동강과는   인연이 없는 줄 알았지!
   동행하게 된 여러 팀원과
   강의 수위를 수시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길 무렵
   관망하는 제삼자에서
   리(이)유를 찾고 문제점을 짚어내고   조치해야 하는
   본디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어느샌가 나의   일부가  되었지
   부디 서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할 수있기를…….』

  1일(화) 아침 출근길이 조금 늦었음에도 도착까지 금방이었다는 심리적인 반응이 작동한 것은 여행을 하루 앞둔 자에게 찾아온 행복한 설렘 때문일 것이다.


  부지런한 시간은 사무실에서도 어김없이 흐른다. 무언가 분주하고, 무언가 낯설고, 무언가 긴장된 듯한 그러면서도 기대감이 흐른다. 그런 부류의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8월 1일 자 인사명령에 따라 우리 팀원들도 많이 바뀌었고, 본부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직원들이 오고 갔다. 가는 이들의 얼굴에서는 안도감이 돈다. 안도감을 「다행」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도 있겠다.

『오세요. 여러분!
  고마워요! 함께 해주어서 정말 감사드려요.
  가면을 벗고 진심으로 마주 보아요.
  는(은)빛 세상을 여러분께 약속할 순 없지만,
  자랑스러운 동료가 되어 드릴 순 있어요.』

  표정을 감추었지만,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기운마저 숨기진 못한다. 그런데 남은 이들에게서 넉넉하게 느낄 수 있는 비장함과 마음의 상처가 나를 슬프게 한다. 슬프다 못해 그 아픔이 전이되어 종국엔 내가 아프다.
  여러 번 수정을 반복한 끝에 사무분장을 마무리할 무렵, 본부에 손님이 찾아온다. 새 둥지를 마련한 새 얼굴을 격려하고 그들 관리자에게 배려와 당부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다.

『사소해 보이는 한 줄의 글귀가 무엇이라고
  무심한 듯 소심한 듯 예민해진 임들의 얼굴
  분분한 의견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팍에  날아드는구나.
  장렬히 전사할 수도 없는데, 이것은 숙명이련가!』

  단출하게 오기도, 많은 동료가 방문하기도 한다. 나는 손님들이 들려주는 소식과 정보들에 주목하지 않고, 그 표정들을 읽는다. 함께 일할 팀원의 모습 모습이 이전 근무지에서 어떠했는지 담소를 나누는 짧은 시간에 퍼즐 맞추듯이 그려지기도 한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지!


  평소와 달리 분주하면서 소란스러움이 길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업무 파악을 위해 차츰 직원들이 차분해진다. 이때다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다음 팀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던졌다.
  “이곳이 여러분에게 최선이 아닐 수 있을 것인데, 근무하는 동안에는 함께 마음을 모아서 일해 봅시다. 부탁드립니다. 또 내일부터 3일간 휴가를 갑니다. 떠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문도 해야 하는데, 혼자 휴가 가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없더라도 박성진 주무님을 중심으로 일해 주시고, 모르는 업무가 있으면 꼭 동료 직원에게 물어서 처리하십시다. 함께 일해 봅시다.”

『동료가 된다는 것은, 동료를 얻는다는 것은
  지옥마저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이지』

  여행기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빠트리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1일(화)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본부장께서 공원관리부 간부들과 점심을 먹었다. 안재홍 부장께서는 선약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식사 후 커피숍을 찾았고, 그곳에서의 풍경 세 가지를 기록해둔다.

 

  첫째, 본부장께서 커피를 쏘았다. 그게 뭐? 라고 할 수 있으나, 본부로 발령받고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시작된 비상근무와 연속된 영상회의들로 인해 위로는 본부장님부터 아래로는 팀원들까지 모두 많이 지쳤던 것이 사실이다.
  본부를 책임진 제일 큰 어른께서 이를 기억하고 마음을 다독여 준 것은 높게 평가할 부분이다.

 

  둘째, 작은도서관이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는 것과, 셋째는 오토바이에 대한 관심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작은도서관을 지원하고 확장해 나갔던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이 보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의 위로가 된 것은 내게 소중하다. 혼자만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바이크 얘기를 할 때마다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왜 그 얘길 꺼냈는지 후회하며 수습하기 바빴다.

 

  본부장께서 바이크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컸다. 부디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큰 행복을 주는 새로운 세상이 또 있다는 것을 바이크를 통해 경험하시길 기대해본다.   퇴근하고 여행 준비를 서두른다. 바이크 사이드 백을 분리해서 집으로 가져가 1박 2일 일정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다. 챙길 적의 그 소소한 행복감이라니, 그 흥분감이라니.

『여러분! 새로운 세상이 있다니까요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말아요. 특별한 곳에 있지 않아요
  자유를 만끽하고자 떠나면서 오토바이를 믿고
  의지하면서 다른 세상을 발견하는 순간순간이
  마냥 행복한 시간들이니까요.
  음! 세상을 다 가진 자의 기분이 이와 같겠지요.』

   여행을 떠나는 날에는 언제나 일찍 잠에서 깬다. 알람 시각인 05시 30분까지 20분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열대야로부터 날 보호해준 선풍기는 고맙게도 일관된 모습이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석 장의 날개로 얼마나 파닥인 걸까?
  나비의 날갯짓 바람을 만들다가 종국에는 태풍의 위력으로 열대야와 새벽까지 전쟁을 치른 고마운 아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까지
  풍성한 시원함이 몰려오기까지
  기운 센 이 선풍기의 수고로움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선단이와 유리는 거실에서 자고 있다. 간만에 휴가 날짜를 맞춘 모녀는 늦은 밤까지 넷플릭스의 귀한 고객이 되어 웃고 웃으며 등장인물 한명 한명을 평가했으리라. 모녀로부터 두 걸음 떨어진 곳에도 힘겹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열대야와 접전 중인 선풍기가 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수년간 봉사하며 훈장 같은 부상을 얻은 녀석이다.

 

  전날 밤에 바이크 사이드 백에다 여행에 필요한 의류와 위생용품 등을 담아 두었다. 아침에 준비할 것은 명품 커피인 ‘다비도프’ 향을 듬뿍 담은 텀블러와 뜨거운 물, 그리고 매실 엑기스와 하나 될 깨끗한 물이 전부다.


  천천히 준비한다. 혹여 아내와 딸이 깨지나 않을까 싶어 작은 소음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커피와 사과, 매실 섞은 물, 의류와 우의, 면도기, 칫솔과 치약, 치간 칫솔, 볼펜과 메모지(가장 중요하다. 여행 내내 기록해야 한다), 보호장구(헬멧, 팔꿈치와 무릎 보호대), 선글라스, 그리고 군용신발(바이크 탈적에 복숭아뼈를 보호한다)까지 준비가 되었다.
  유리를 깨우지 않고 선단이와 인사를 나눈다. 나에게 위치추적 앱을 지우지 말라고 한다. 저번 여행 때처럼 실시간으로 감시(?)할 목적이다.


  06시 30분에 일광신도시를 출발했다. 부산권역과 도심지 혼잡 지역을 벗어나기까지 꼬박 1시간 걸렸는데, 시내를 달린 코스가 공교롭게도 낙동강관리본부를 통과하는 도로였다. 7월 초에 발령지를 확인하고 오토바이로 출근하려면 어느 길로 가게 될까 생각했었다. 만화리를 넘어 반송과 석대를 지날 것이고, 충렬사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우회전한 다음 만덕터널을 넘어 덕천으로 가지 않을까? 바로 그 코스대로 달린 것이다.


  구포대교를 건너 김해 불암장어마을을 지났다. 불암장어마을에서 신호를 기다릴 적에 왼쪽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항공기가 보인다. 탑승자 중엔 나와 같은 여행자도 있으리라. 행복한 시간이 되길. 07시 40분 무렵 김해시 한림면 CU 신천점에서 휴식 시간을 가진다.

『구포대교를 오고 가며 출퇴근을 재촉했지
  포구가 있었기에 구포일 것이야! 되뇌면서!
  대로를 달리면 어김없이 시야에 잡히는 낙동강아
  교량 아래 어느 수위까지 올라올 거야?』

  출발을 서둘렀다가 09시 25분 무렵, 고성군 고성읍 지역 CU 편의점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도로 사정은 좋은 편이다.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없는 불편은 주변의 산과 들과 계곡을 구경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무더위는 견디기 어렵다.


  맞바람으로 바이크 엔진 열기를 식힐 수 있지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와 아스팔트 복사열이 더해져 대단한 고통을 선사한다. 이열치열이라고? 그래 불볕더위와 맞서며 라이딩 경험을 가지는 것도 나름 추억이 되겠지. 시장기를 느껴 준비해간 빵과 사과와 커피 한 잔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또 출발해야지…….

『불덩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듯한 날씨에 몸이 녹아내린다.
  볕을 피하고 싶은데, 너! 이 무더위야.
  더위를 이렇게 풀어 놓으면, 너는  시원해지는 거야?
  위로해주랴? 칭찬해주랴?』

  11시 25분, 거제시 남부면 저구마을 어촌계 어민복지회관 건물 아래 그늘진 곳에 바이크를 세웠다. 이번 여행 목적지가 거제도이고, 시간은 충분하다. 때문에 무리해서 라이딩할 필요가 없다. 1시간 반 정도 운전했더니 두 손이 감전된 것처럼 저린다. 알람처럼 정확한 증상이고 어김이 없다.


  고성읍과 통영을 지나 거제로 진입할 적에 고무 타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 바이크 앞에서 주행 중인 1톤 트럭에서 나는 악취였다. 연기가 심하게 나서 매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운전석 뒤쪽 타이어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날 것처럼 연기와 악취를 내뿜었고, 운전자는 창문을 닫은 상황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주변에 다른 여러 차량이 같이 주행 중이었는데도 그 트럭에 신호를 주지 않는 것이다. 상황 파악이 금방 되었다. 모두 창문을 닫았고, 운전석 냉방을 위해 공기가 차량 내부에서만 돌도록 조작했기에 고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럭 옆으로 달려가 운전자를 보며 연신 클락숀을 누른다. 4번 정도 신호를 보냈더니 중년의 아저씨가 돌아본다. 왼손으로 트럭 뒤쪽 바퀴를 지적했더니 백미러로 돌아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곧이어 오른쪽 깜빡이를 넣고, 바깥쪽으로 차를 빼는 것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갈 길을 계속 달렸다.


  거제도를 한 바퀴 돌 생각이라 반시계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달리도록 경유지를 잡았다. 먼저 둔덕면 호곡마을에 들어섰다. 호곡어촌계는 뭔가 깔끔하면서 조용하다. 훤히 트인 바다 쪽으로 길게 방파제가 나왔고, 마을에는 교회와 마을회관, 배를 자체적으로 정비할 수 있는 정비소도 있다. 큰 마을은 아니지 싶은데, 호곡마을에서 화도라는 섬을 연결하는 페리호도 있다.  방파제 좌우로 선박이 정박 중이고, 어민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분주히 어선을 점검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11시 50분 무렵, 저구 어민복지회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비단이 연상된다. 저 멀리 실루엣처럼 여러 섬도 흐릿하게 보인다. 비단 위에 잘 그린 한 폭의 그림 같다. 그 바다 위를 바나나보트가 누비고 다닌다. 아마도 휴가차 찾은 외지인들일 것이다. 연신 들려오는 행복한 비명이 파도 소리와 잘 어울린다. 모처럼의 휴식일 것이다. 저 행복을 어찌할 것인가…….

『저를 소개할게요. 저구어촌계입니다.
  구면은 아닌데, 많이 본 듯해요.
  바다의 아름다움도, 어촌의 조용함도
  다시 돌아볼 적에 다른 어촌계로 착각할지도 몰라요.』

  남부면으로 넘어갈 적에 산속 도로 양쪽으로 수국이 가득했다. 아마도 꽃길 조성사업을 관공서에서 했지 싶다. 눈길을 사로잡은 수국이 무척 보기에 좋았다.


  13시 25분, 학동 흑진주몽돌해수욕장 근처 식당에 도착했다.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넘쳤다. 왜 아니 그러겠나! 나도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데. 주변에 파라솔이 설치된 지역으로 선이 그어져 있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갔더니 영업 구역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파라솔을 임대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식당에서 해물칼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2인 이상 주문 시 가능」이었다. 오토바이로 혼자서 여행 다닐 적이면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1인 주문이 가능한 메뉴를 물어보곤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나는 해물칼국수를 먹고 싶다고…….

『흑진주를 닮았나 보다. 작은 돌들이 말이다.
  진한 검정들이 곳곳에서 자태를 뽐내며 교태를 부린다.
  주인은 나인데…. 당신은 누구신지?  묻는 듯하다.
  몽돌이 주인인 이곳에서
  돌대가리라고 함부로 놀려선 안 될 것 같다.』

  몽돌해수욕장에 도착하기 전, 저구어촌계를 출발해서 장승포로 향하던 중에 경유지를 현장 확인 없이 설정했다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내 오토바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도록 설계가 되지 않았다. 포장된 공도로만 가야 한다. 웬만하면 계속 갈 생각이었지만, 연이은 비포장도로 사정을 확인하고 되돌아 나왔다. 까딱 실수했다간 그대로 넘어질 수 있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더위에 넘어진 바이크를 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나를 앞서 달리던 그랜저 승용차가 편도 1차선 도로에서 경고도 없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클락숀을 눌렀더니 그제야 쌍 깜빡이를 넣는다. 급정지한 오른쪽으로 여자용 공중화장실이 보였고, 조수석에서 성질 급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리면서 나를 잠시 돌아본다. 그 표정이 사뭇 ‘내가 오줌이 좀 급해서 차를 세웠다. 뭐 어쩔 건데?’ 이랬다.


  장승포로 향하던 중 ‘바람의 언덕’ 안내판을 보고 급하게 방향을 꺾었다. 휴가철임을 실감하게 된다. 해금강 구경하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엔 휴가 중인 사람들과 그들을 싣고 온 차들이 가득하다. 내려가서 구경하려다가 포기하고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바닷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
  람사르 등록된 습지가 부럽지 않은 곳
  의지할 곳 기댈 곳 찾아 헤매다가 이곳
  언덕에 서서 홀로 바람을 맞을 적에
  덕분에 휴가 중임을 감격해한다.』

  진입하는 도중에 아무래도 산책로이지 싶어 입구 쪽에 바이크를 세웠다. 그곳에서 2백 미터 남짓 될까?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땀으로 범벅이 된다. 바람의 언덕이 잘 보이는 그늘진 곳이 있어 굳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또한 주변에 가득했다.


  소나무 그늘에서 휴대폰에 그림을 담는 것으로 대신한다. 바람의 언덕에 도착하기 전에 다대어촌체험마을에서도 잠깐 바이크를 세웠다. 개펄 위로 갈매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햇빛을 즐기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정말로 불볕더위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인간과 다른 모습의 갈매기들……. 그 모습 모습이 불볕더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부러웠다.


  15시 24분, 장승포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몽돌해수욕장에서 선착장 가는 도로에 휴가 차량이 훌쩍 늘어난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도로 안내판에도 상습 정체구역이란 글귀가 보였다. 이 구간에 큰 호텔과 리조트가 눈에 많이 띈다. 그리고 장승포로 진입하기 전에 전방 오른쪽 산언덕 쪽으로 ‘거제대학교’가 보였다.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서였겠지 싶은데,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큰 글자를 건물 외벽에 새겼다. 근데….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숙박 장소를 예약할 적에 1박 하게 될 ‘타니무인텔’이 사등면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었다. 거제시 특산품이 무엇이 있는지 검색했더니 같은 사등면 소재 ‘성포양조장’이 눈에 들어왔고, 몇몇 블로그에서 소개한 글 중엔 성포양조장에서 생산한 「행운주」가 맛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더위에 지쳤기 때문에 이대로 숙소로 가면 틀림없이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고, 또 2일 차엔 일찍 출발할 것이기에 도착하더라도 문을 열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양조장을 당장 방문하지 않으면 행운주를 살 수 없지 싶어 선착장에서 양조장으로 곧장 향했다.


  20㎞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도로 사정이 나쁘진 않았지만, 휴가 영향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 뙤약볕에 차량이 정체되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고, 그때마다 아주 식겁한다. 바이크도 가쁜 숨을 내뱉는다.
  엔진 열이 120도인가를 넘어가면 펜이 자동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우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신호를 기다리는 바로 그 시간에 어김이 없다. 겨울철엔 아무리 정체 구간을 지나도 한 번도 가동되지 않던 펜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땀으로 몸 전체가 흠뻑 젖는다.


  양조장 입구 판매장에서 사장님의 안내로 행운주 등 5병을 샀다. 직원들과 먹을 생각이다. 사이드 백에 술병을 욱여넣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 오토바이 구경하러 나왔다. 자신도 젊었을 때 오토바이를 많이 탔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는 잠깐 사이에 또 양조장을 찾아온 손님이 있어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양조장 관련 소년 시절 기억을 들췄더니  온통 막걸리였어!
  조심조심 막걸리 심부름하며 홀짝홀짝 마셨겠지
  장난해? 세상이 빙글빙글 돌 거라는 말은 없었잖아!』

  양조장에서 무인텔까지 약 3㎞ 거리였다. 18시부터 이용할 수 있다는데,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고, 무료하게 기다리기보단 편의점에 들러 저녁거리를 구입하고자 해안 쪽으로 내려갔다. 무인텔을 왼쪽으로 보면서 5분 정도 천천히 내려갔더니 성포항이다. 꽤 규모가 있는 항이라 편의점을 기대했는데,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앗싸! 재수! 매우 다행이었다.  컵라면 2개(저녁과 아침), 햇반 1개(저녁), 테라 2캔을 구입했다. 8천 원이 되질 않았던 것 같다. 분명 영수증을 받았는데, 여행기 작성할 때 찾으니 그것만 없다. 어떻든 경비를 절약하게 협조한 하나로 마트야! 더욱 번창하거라.


  무인텔 그늘진 곳에서 서성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찍 도착해도 탈이다. 문자가 왔다. 17시 50분이었고, 그때부터 이용 가능하단다.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날 뻔했다. 휴대폰으로 날린 문자라 전화를 걸었더니 건물에 안내인이 있었다. 그러면 무인텔이 아닌데…….

『무인텔을 숙소로 삼은 첫 경험이 싫지 않아
  인생 공부는 그래서 끝이 없다고 했든가!
  텔레비전, 커피포트,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공기청정기 없는 게 뭐니?』

  사이드 백과 장 본 것을 들고 올라가 숙소에 푼다. 무인텔 구조가 이렇다. 1층에는 승용차가 주차하는 공간이고, 바로 옆 작은 계단으로 2층으로 가면 주차장 바로 위가 숙소다. 주차장에 차량이 진입하면 입구에서 커튼이 내려온다. 외부인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한다. 괜찮은데!


  옷을 벗어 던지곤 찬물에 샤워한다. 살 것 같았다. 지금이 한창 성수기인데 무인텔 1박 요금이 5만 원이다. 너무 저렴한 것 아닌가? 더군다나 있을 건 또 다 있다. 빵빵한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커피포트, 공기청정기, 헤어드라이기 등등 고마울 따름이다.

  8월 3일 2일 차.
에어컨이 잘 나와 좋기는 했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가동이 되면서 작은 소음을 만든다. 그 소음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한 것 같다. 05시 조금 지나 결국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검색하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천장 마감재가 거울은 아니지만, 누워서 보면 천장 아래의 세상이 그대로 투영된 것을 보게 된다. 거울처럼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보여줄 태세다. 어제 저녁엔 피곤해서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아침엔 또렷하다. 떠오르는 엉큼한 생각 한 줄기…. 부부나 연인이 이곳을 이용하면 그들 눈으로 그들 커플의 밤의 문화를 행위와 동시에 시각화할 수 있어서 인기 있겠다는 야한 생각이 든다.


  무인텔 앞은 바다다. 조선업을 하는 회사가 있지만, 바다와 섬이 또렷이 보인다. 아침 해가 바다와 섬을 뚫고 올라오는 그림 같은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행운이다. 낮에 그렇게 뜨거운 해가 이 순간 참으로 예쁠 수 있다니……. 다시 라이딩 준비하자.

『거리를 잴 수도 있을 법한 가까운 곳에서 해가 떠오른다.
  제법이네! 이렇게 일출이 장관이었어?  멋있어!
  도도한 저 태양은 한낮 불볕을 토해내는 그 녀석이 아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황홀감에 몸 전신으로 전율이 흐른다.
  침착하자! 속으면 안 된다. 저 녀석이 바로  그 불덩어리야!』

  06시 50분, 무인텔을 나섰다. 이른 시간인데도 스쿠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하긴, 어제 조선소 주변을 지날 적에 수없이 정차된 엄청난 숫자의 오토바이를 봤었다. 편리한 이동 수단으로서 그 몫을 넉넉히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계획으로는 ‘거제 맹종죽 테마공원’을 돌아보는 것이 포함되었지만, 너무나 일찍 도착한 덕분에 입구에서 사탕을 핥으며 닫혀 있는 그곳을 멍하게 바라만 본다. 따라서 뭔가 기록할 것도 없다. 다시 출발할 수밖에…….


  다음 목적지인 칠천량해전 테마공원 도착 600여 미터를 앞두고, 왼쪽으로 이쁜 섬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에서 보일 정도였다. 거제시 하청면 어온어촌계라는 곳인데, 맞은편 육지와의 사이에서 콧대 높은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휴대폰 카메라를 줌인한다. 확대한 모습을 보며 섬에 반한다. 사랑스러운 두 공주님인 유리와 유나를 연상케 한다. 자존감 높은 숙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런데 주변 어느 곳에도 섬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다.   확대해서 사진을 찍기도,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도도한 여성의 모습, 자존감 강한 MZ 세대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데 마지막에 남는 느낌은 외로움이다. 왜 또 그렇게 느낀 걸까?


  칠천량해전 테마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08시다. 09시에 문을 연다는데, 주변을 구경하면서 기다리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조선 수군이 크게 패했던 해전, 이순신 장군께서 부흥시킨 조선 수군을 원균께서 말아 드셨다. 다행스럽게도(?) 배설 장군이 12척을 가지고 도주한 덕분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나이다」라는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 명량대첩을 존재하게 만든 해전이기도 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조선 수군을 몰아간 선조와 원균
  천하를 호령하고도 남을 위대한  수군이었거늘! 오호통재라!
  량(양)보하고 또 양보해도 너! 원균은 용서가 되지 않는구나!』

  칠천량해전은 기록에 따르면, 1597년 7월 16일(음)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과 일본군이 이곳 칠천량에서 싸워 대패한 전투였다. 당시 원균 휘하에 160여 척의 전선 거의 모두를 출정시켰고, 그 결과 원균 본인은 물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지휘부가 모두 전사했다.


  그늘진 데크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입구를 막고 있다며 미안해하신다.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 중이고, 하루 3시간(08시부터 11시까지) 일하신다고. 한 달 27만 원을 버신다고 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일하시긴 어떠세요?
  머라고? 몇 시간 일하냐고? 세 시간 일햐!
  니(이)렇게 일하시면 얼마씩 받으세요?
  와따메! 어디 보자! 한 달에 27만 원 받는구먼.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와 여행자는 동화되어 간다.
  화기애애 화기애애…. 불볕더위 아래서 그렇게  웃음이 피어난다.』

  궁금한 사실 몇 가지를 풀 수 있었다. 어온어촌계에서 바라본 그 섬에는 이름이 없단다. 또 작은 섬이라 들어가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이쁘면서도 외로운 이유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거제시에서 흔하게 보는 바다 양식 대부분이 굴 양식이라고. 기업화 되었다고도 한다. 전시관에서 일하는 직원이 2명인데, 공무직이란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면서 소소한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 두 분이 사는 집이 전시관이 위치한 이곳 옥계마을이라는데, 마을 연혁에 대해서는 모르시고, 들은 적도 없단다. 그렇게 4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시관 문이 열렸다.


  전시관을 돌아본다. 관리 인력을 제외하면 찾은 이는 나 혼자다. 또 문을 열자마자 찾아온 사람도 내가 처음일 것이다.  전시관 내부는 내가 상상한 대로다. 연전연승하던 조선 수군이 어떤 과정을 밟아가다 칠천량에서 지휘관까지 사망하며 패전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유튜브를 통해 공부가 되어 있는 상태라 내가 상상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형식으로 배치했겠거니 상상한 것이다. 패전한 전투를 우리 모두 기억하게 함으로써 같은 사례와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주제는 잘 잡았다.


  50분 정도 돌아보았다. 성질 급한 사람이면 10분이면 될 것이다. 09시 40분 무렵 전시관을 나와 할머니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밀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무더위를 견디며 부산 시내를 통과할 생각이 단 ‘1’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밀양한천으로 가서 배내골을 넘어 귀가하는 것이 그나마 맞바람으로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거제 시내와 고성, 마산과 밀양 시내를 통과할 적에…. 아! 기록하고 싶지 않다. 정차할 적에 받은 그 열기를 달리면서 맞바람으로 운전자와 오토바이 모두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1박 2일의 이번 여행은 어떻든 더위와의 사투를 벌인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후 3시, 집에 도착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사이드 백을 정리한다. 훌훌 껍데기를 벗고 시원한 물에 몸을 적시고 싶지만, 고생한 오토바이를 먼저 목욕시켜야 한다. 깨끗해 보이긴 하지만, 구석구석 먼저가 많이 쌓였다.
  시원한 물줄기를 내 애인이 되어준 MT-07에 마구 쏘아준다. 시원해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왜 아니 그러겠나. 보는 내가 다 시원하다. 이제 다 되었다. 만족할 수준이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그랬듯이 1박 2일간 사용한 경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연료비 기타(숙박비 제외)
2일: 14,000원(경남 고성군 고성읍 신월리 182-3)
3일: 13,467원(경남 통영시 도산면 남해안대로 14)
2일: 2,300원(아이스커피/김해시 한림면 김해대로   1535/ CU)
2일: 10,000원(해금강외도식당 / 경남 거제시 거제 중앙로 7, 김치찌개)
2일: 2,600원(아이스커피 / 7-일레븐)

※성포항 하나로 마트 약 8천 원(컵라면, 캔맥주 등)
※성포양조장 전통주 54,000원(행운주)
합계:27,467원
이동 거리: 580㎞ / 1리터 당 25.9㎞ 이동  /  사용 연료: 22.4ℓ 합계: 76,900원

숙박비용:50,000원
2일: 50,000원(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등리 2063-4/타니무인텔)
■ 총비용:154,367원
27,467원(연료비) + 76,900원(식비 등) + 50,000원(숙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