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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2차 전국일주 - 완도, 장흥군, 보성군, 백범 은거기념관, 미국마을, 남해) 4편

탁왕 2023. 11. 13. 13:18

*3일 차에 이어 계속(4편)

 

4일 차, 완도에서 남해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완도읍 정도리 677-3번지 펜션 ‘완도친구네’에서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오지 않기를…….
젠장할…. 빗소리가 들린다. 잠이나 더 자라는 자장가 마냥 그 정도 품위는 지켜준다는 수준에서 조용조용 비가 내린다.
이번 여행 일정을 굳이 완도 쪽으로 잡은 것은, 지난 4월 1차 일주에서 남해 해안도로를 달릴 적에 비가 내렸다. 그 아름다운 개펄과 바다와 어촌마을들을 눈에 제대로 담질 못했다. 그 아쉬움을 달랠 목적도 있었다. 빌어먹을….
 
『비 내리는 소리가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은 여행자의 마음 때문이지
 가뭄을 당하는 농부의 심정이 아닌 것이야
 온 마음을 다해 빌고 또 빌었건만....
 다만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비는 지역에 따라 내리기도 그치기도 했다. 어떻든 빗길이라 더욱 긴장해서 운전했다.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시속 90㎞를 넘기지 않았다. 4일 차에 달려야 할 거리가 280㎞ 정도였다. 첫날에 비하면 200㎞ 정도 짧다. 여유가 있기에 조금 늦은 시간인 07시 20분 무렵에 숙소를 나섰다.
 
1차 일주 후에 핸들 가드를 달고, 사이드 백을 부착했다. 둘을 위해 거의 120만 원을 썼을 것이다. 그 성능은 어떨까? 우선 핸들 가드는 가성비가 좋았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바람을 막아 주었고, 빗길에서는 장갑이 비에 젖는 것을 최대한 저지해주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이드 백은 판단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짐을 담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데, 빗길에선 상황이 다르다. 부착 위치가 뒷바퀴 바로 옆이다. 빗물과 흙탕물이 튀는 것에 바로 노출되고, 하드케이스라 비가 스며들진 않지만, 지퍼 부분은 빗물이 스며들 수 있다. 이를 막아 주는 방수커버가 있는데, 이 방수커버가 튀어 오르는 빗물을 막아 주지만, 커버와 가방 사이로 흙탕물이 유입되는 것은 제품 특성상 어쩌지 못했다.
 

장흥군 관산읍 소재 어촌마을에서 잠시 비를 피하다.


비를 피하려고 장흥군 관산읍 소재 어촌마을의 어느 가옥 지붕 아래에 바이크를 세웠다. 1시간 20분 정도 달렸을 것이다. 커피를 꺼내려고 방수커버를 벗겼더니 흙탕물이 안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 빗길을 달려선 안 되겠다. 중간 중간 세워서 방수커버에 고인 물을 털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남해군으로 들어섰을 때는 더 많은 비가 내렸다. 커버 안에 제법 물이 많이 고이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우려는 현실이 된다. 젠장! 물이 제법 고였고, 그 흙탕물이 지퍼 사이로 스며들었다. 덕분에 일부 옷가지들이 젖었다.  사이드 백 방수커버가 새것이긴 하지만, 물이 빠질 수 있게 담뱃불 구멍이라도 만들어야겠다. 고육지책으로 말이다.
 
관산읍 어촌마을에서 쉬는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 달라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통화했더니 내 폰에 설치한 위치 추적 앱 ‘Jagat’으로 실시간 내 이동상황을 보고 있다가 움직이지 않자 혹 사고라도 났는지 확인하고 싶어 전화를 달라한 것이다. 물론 빗길이라 걱정도 되었겠지만,
‘** 씨! 제발 적당히 좀 감시하시오. 아주 많이 거시기 하네 증말!’
 
보성군을 지나다가 관광지 안내판 하나가 눈에 꽂혔다. 『백범 김구 선생 은거 기념관』이라는 안내판이었다.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아 내려가다가 되돌아갔다.보성군 득량면 삼정리 쇠실마을이라 한다. 그곳에서 한 때 김구 선생께서 은거하셨단다. 가옥은 잘 복원되어 있었고, 안내문과 기념비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뒤쪽엔 김구 선생께서 사용했다는 우물터도 있는데, 공사 중인지 출입을 막아놓았다.아마도 마을에서 관할 지자체와 협력해서 국비를 지원받아 사업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가옥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로 되어 있었다.
 

백범 김구 은거기념관, 백범께서는 마땅히 온 국민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셔야 한다.

 


백범께서 쇠실마을로 오신 시기는, 안내문에 따르면 1898년 음력 5월이라 한다. 아마도 그때 일본 순사를 죽이고 은거하실 때 쇠실마을에 계셨던 모양이다. 가옥 옆 정자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백범을 떠올린다. 엄혹했던 시절 그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이셨다. 존경심과 경외감을 느낀다.
 
계속 비가 왔고, 숙소 가는 중간 중간에 주변 관광지를 돌아본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물에 빠진 생쥐보다 더 참혹한 몰골로 하동군 금남면 소재 식당(김가네 토속식당)에 들렀다. 점심때였고, 피곤함과 허기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식당 메뉴판을 보곤 좀 놀랐다. 시골인 점을 감안해도 가격이 착했다. 주문한 내장순대국밥 7천 원, 칼국수와 항아리수제비 6천 원, 제일 비싼 것이 아바이 순대와 해물파전이 각각 1만 원이었다. 그래서일까 식당은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
 

김가네 토속식당 메뉴판! 착한 가격에 감동하고 맛에 감격했다.

 


순번대로 한참을 기다렸다가 음식을 받았고, 맛을 보곤 또 한번 놀랐다. 맛있고, 깔끔했다. 딱 남기지 않을 정도로 나왔고, 손님 된 도리로 반찬과 밥, 국밥을 모두 비웠다. 그릇을 차곡차곡 포갠 다음 계산하고 나왔다. 식당밖엔 여전히 비가 내렸다. 어쩌라고! 하늘을 향해 짜증을 냈다. 어쩌자는 거야! 썅! 왜 남해를 여행할 때면 계속 비가 내리는 건데!
 
숙소까지 20㎞를 앞두고 ‘미국마을’이라는 곳을 보았다. 독일마을 모방이지 싶은데, 역시 비 때문에 탐방하진 않았다. 다만, 바이크로 미국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며 뭘 보여주려는 관광지인지 눈으로만 스캔했는다.

 

미국마을, 짧게 오토바이로 돌아보기만 했다.

 

 

커피숍과 펜션, 선물 가게, 미국식 건축물로 지었는지 건축 기법은 잘 모르겠지만 일반 주택처럼 보이는 건물 등이 길 양쪽으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깔끔하고 깨끗한 것이 최근에 등장한 곳이지 싶다.
 
14시 50분에 숙소에 도착했다. C동을 예약했기에 그 앞에서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려오겠다기에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C동을 살펴보았는데, 내가 예약한 금액으로 그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임은 굳이 이해할 필요조차 없이 명약관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이 안내한 곳은 그 방이 아닌 뒤쪽이었다. 설마 그 안이 숙소일까 싶은 생각이 들 그런 곳 말이다. 어떻든 젖은 옷들과 신발, 장갑을 말리느라 부산을 떨었다.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전국일주를 두 번이나 계획했어
 오라는 사람 없어도 갈 데는 많아
 는(은)둔하는 취향이 아니라서  이 얼마나 다행이야
 남몰래 두 번이나 남해를 찾았어. 근데...
 해도 너무하는군. 왜 갈 때마다 비가 오는데?
 군청 공무원이 찾아왔다고 무시하고 텃세 부리는 거야? 앙?』
 

*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