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에 이어 계속(2편)
2일 차, 서울 중랑구에서 김제시 순동까지의 여정이다. 중랑구 – 안산 – 화성 – 평택 – 아산방조제 – 삽교호 당진 방향 – 태안 – 안면도 – 보령시 – 새만금방조제 – 부안(변산반도) - 김제시 순으로 달렸다. 전날 밤 10시가 안 된 시간에 잠들었다. 형 아파트는 이사한 지 20년이 지났다는데, 언젠가 찾아온 적이 있지 싶다. 그게 기억에 남아있진 않다. 하긴 금방 지나온 행정구역도 머릿속에서 총알처럼 사라지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새벽 일찍 잠에서 깼다. 04시 40분이었다. 거실에 놓인 소파 겸 침대에서 잤는데, 머리와 다리를 곧게 뻗었을 적에 반듯하게 눕기 힘들 정도로 좁아 불편했다. 새우잠이었지만, 그런데도 꿀잠을 잤다. 형 집이라 마음도 편했다.
일찍 일어난 이유는 심리적인 측면이 크지 싶다. 형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전날 도착했을 적엔 밤 근무를 위해 자는 중이라 했고, 그러다가 밤 8시에 출근했다. 그 시간에 형과 나는 식사하고 장미공원에 들렀기에 만나지 못했다. 16일(화, 2일 차) 아침 8시에 귀가한다는데, 만나고 가기엔 늦지 싶어 일찍 떠나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1차 일주 때 큰형 집에서 07시 반 정도에 출발했을 적에 서울과 경기도를 통과하면서 교통증체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짐을 꾸려 출발한 시간은 05시 40분 무렵일 것이다. 서울의 새벽 공기가 기대 이상으로 상쾌했다. 네비가 동작대교와 큰형 신혼 때 살았던 사당동 방향으로 안내한다. 동작대교를 지날 때는 왼쪽 철길에서 전철이 역방향으로 달려간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도 광고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나 보다.
동작대교로 진입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재활용업체가 있었나 본데, 그쪽 도로에 과속방지턱이 지나치게 많았다. 네비가 무한 재생된다는 느낌이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다. 다. 다.
사당동에서의 추억도 있다. 힘들었을 시절 기억인데, 지금은 기억을 추억하려 한다. 사당역 부근일 것이다. 비싼 BMW 오토바이를 만났다. 그 바이크 가는 방향이 한동안 나와 같았다. 근데 이 라이더가 빌어먹을 또 나를 의식한 모양이다. 나를 제치려고 칼치기와 무리하게 끼어들기, 차들 사이로 지나가 제일 앞쪽에 서기 등... 어찌나 지랄하는지... 그냥 니 속도대로 가란 말이다.
안산과 화성을 지나는 동안 그 교통 혼잡이라니……. 77㎞를 통과하는데, 2시간 반을 소모해야 했다. 이런 썅! 거북이 속도로 가다 서다.... 양손이 저리고 감각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택시 청북면 서해로 큰 도로 옆 GS25에서 커피 마시면서 쉰다. 쉬어야 했다. 두 손이 감전된 마냥 저렸기 때문이다.
편의점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고 목소리가 좋았다. 인상마저 밝아 장사가 잘되겠다는 농을 건넸다. 어디서 왔냐며 묻는다. 부산에서 왔고 전국일주 중이라며 잠시 얘길 주고받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기 메모도 잊지 않았다.
아산방조제를 지나 삽교호 당진 방향으로 달렸다. 이전에 시화호로 잘못 알았던 곳이 바로 이 아산방조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해서 그런 것이다. 제법 규모가 큰 방조제인데, 새만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서산시 수석동을 지나면서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를 바퀴로 치었다. 앞차를 따라가다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이미 죽었고, 사체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인데도 마음이 아팠다. 태안군으로 진입하기까지 2일 차에 로드킬 당한 동물을 너무 많이 보았다. 이렇게나 로드킬로 죽어 나가다니... 그 아이들 잘못이랴!
안면도 방포해수욕장에 들렀다. 어쩌다 검색해서 태안군으로 왔지만, 딱히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고, 포털로 검색했더니 친절하신 「다음」께서 방포해수욕장을 소개했다.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그 해수욕장은 좀 특이했다. 파도가 부딪히는 곳은 모래사장인데, 그 뒤쪽으로는 몽돌로 채워져 있다. 몽돌해수욕장은 온전히 몽돌이지만, 방포는 몽돌과 모래사장이 사이좋게 구역을 분할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몽돌이 세월을 마시면 모래가 될 것이니, 너네는 한 핏줄이어라.
방포해수욕장! 앞은 모래 뒤는 몽돌인 것이 특이하다. |
방포해수욕장에서 같은 탁구동우회원인 박** 고문에게 전화했다. 12시 전에 현장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더니 오란다. 61㎞ 거리였고, 방포해수욕장에서 출발한 시간은 10시 50분이었다. 검색 결과 12시 도착인데, 가는 길이 매우 좋았고, 다행스럽게 도로에 차량도 별로 없었다. 또한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동안은 이게 무슨 신선놀음인가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11시 44분에 도착했고, 박 고문이 승용차로 인근 철도역(청소역)이 있는 동네로 데려가서 두루치기와 김치찌개를 제공해주었다. 점심을 내가 계산하고 싶었지만(진심이다), 박 고문이 계산했다. 정말 감사했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12시 50분에 다른 일정이 있다기에 다시 출발했다.
청소역사 전경과 유래 |
청소역에서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했다 한다. |
경유지를 채석강(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검색해서 달렸는데, 중간에 새만금방조제를 지난다. 방조제로 진입했다가 잠시 바이크를 세웠다. 액션캠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다른 장소들은 폰으로 기록을 남기고 새만금은 달리는 상태에서 영상을 담고 싶었다. 방조제 길이만도 20㎞는 족히 되지 싶다. 그 대단한 건설 역사를 두 번이나 통과하다니….
채석강에 도착했다. 1차 일주 때 들렀던 곳이라 달리 주변을 구경하진 않고 커피 전문점 그늘진 벤치에서 여행기를 기록하며 잠시 쉬는 것으로 대신했다. 휴식을 취한다. 아무렴! 행복은 이런 것이야.
변산반도 국립공원 인근에 ‘불멸의 이순신’촬영지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네비를 찍었더니 커피 전문점 가까이라 바이크로 가보았다. 실수였다. 촬영지는 임시 휴장(안내문이 도로 입구에 있었지만, 나중에 확인함) 중이었고, 진입도로는 공사 중으로 비포장 상태였다. 휴장을 확인 못하고 무리하게 들어가려다가 하마터면 바이크가 넘어질 뻔했다. 더운데 식은땀까지 났다. 식겁했다.
입구로 힘들게 나와 오른쪽 바닷가를 찾았다. 어촌계가 괜찮아 보였는데, 직접 갔을 적엔 바닷가 냄새가 아주 심하게 코를 괴롭혔다. 궁항어촌계에서 관리하는 곳이란다. 기온이 너무 높아 땀으로 범벅이 되는 중이라 주변 탐방을 포기했다.
『궁금해서 찾아갔어! 궁항마을 어촌계
항구도시 부럽지 않은 마을 어촌계인데 깨끗(?)하기까지 하네
어쩔시구 저쩔시구 나도 여기서 어부가 되어볼까나! 보소 나그네야.
촌스러운 생각 하들 말고 가든 길 가시게!
계획대로 여행이 끝날 때 나그네야! 우리 이름이라도 기억하면 영광일 거야!』
궁항어촌계 주변 탐방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였다. 바이크 복장 자체가 더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럴 땐 슬프다.
김제시 숙소를 검색했더니 54㎞ 나온다. 이틀간 운행거리가 길었는지, 두 손이 저리는 것은 물론이고 엉덩이가 쑤셔서 앉아 있기 힘들 정도다. 클러치 잡으며 기어 변속하는 것만으로도 왼손이 저린데, 엔진의 떨림까지 그대로 전해져 220볼트 전기가 왼손에 계속 흐르는 것 같았다. 오른손도 다르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54㎞ 남았다.
김제시로 가는 길은 정체 구간이 없었다. 국도이긴 해도 고속도로 수준으로 달릴 수 있었는데, 중간에 트럭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연이틀 했다. 역시나 방어운전을 한 덕분에 사고는 없었지만, 너무 놀라서 욕도 나오지 않았고 경적도 누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몸이 힘들고 지치면서 식겁하고 있는 데도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제는 평야다. 학교 수업을 통해 머릿속에 찍혀 있는 공식이다. ‘김제 평야' 그 단어는 틀리지 않았다. 평야답다고 인정해야 한다. 땅이 비옥하다는 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시야를 가리는 능선이나 산들이 가까이엔 없었다. 저 멀리 흐린 실루엣 마냥 보일 뿐이었다. 아내도 같은 기억을 하고 있는지 통화할 때 숙소가 김제라고 했더니 ‘김제 평야?’라고 되묻는다. 머뭇거림도 없이 말이다.
16시 45분 무렵 모텔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인근 편의점에서 기네스 캔 맥주 4개(2개 사면 8천 4백 원이고, 4개는 1만 1천 원이었다. 4개 살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크림 3개, 오징어 다리, 컵라면(왕뚜껑) 등을 사서 모텔로 돌아왔다. 더위로 혼이 난 다음이라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아이스크림 3개를 한 번에 먹어 치웠다. 이래도 되려나? 다행히도 속은 괜찮았다.
저렴하게 예약한 숙소라서 조금 부족해도 참을 생각이었지만, 딱히 나그네에게 부족한 것도 없었다. 방에 놓인 유선 전화기에 광고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빈 곳이 없을 정도라 유심히 보았더니 공통점이 있었다. ◦◦다방, ◊◊다방, 다방, **다방, ... 다방, ... 다방... 하나 같이 끝의 두 글자가 다방이었다. 해남에선 호텔에 콘돔이 놓여 있더니... 아마도 커피를 마실 목적으로 다방을 광고하는 건 아닐 것이다.
*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