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편 연재(일붕사와 봉황대, 호암 이병철 생가와 장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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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대웅전과 무량수전이 동굴 안에 조성되어 있다. |
11시 27분, 일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의령을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 한 가지를 먼저 소개하자면, 강원도 영월을 여행할 적에 주차장마다 요금을 지불해야 했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일붕사 주차장 초입 왼편으로 기암괴석처럼 또는 영월군의 선돌처럼 생긴 봉황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의령군의 자랑거리인지 제3경이라 표현한 것을 보았다.
『봉황대와 일붕사가 의령군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황새의 머리 형상에서 흥미를 느꼈다가 최대 동굴 법당에서 마음을 빼앗겼구나!
대표 관광지로서 의령군이 자랑할 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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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주차장 왼쪽에 봉황대가 있다. 봉황새의 머리처럼 생긴 바위 절벽을 말한다. |
봉황대는 봉황새의 머리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 절벽을 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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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거리에서 올려다 본 봉황대! | |
옛날에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을 장소라 생각하며 안내판을 보았더니 역시 그러했다. 봉황대의 위치가 세계 최대의 동굴 법당으로 알려진 일붕사 옆인지라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찾고 있다. 영월의 선돌만큼 신비롭진 않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전체를 관망하면 봉황새 머리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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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1(입구 쪽) |
일붕사 4천왕문 초입 왼편으로 정성을 다해 쌓은 돌탑이 길손의 시선을 붙잡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의 소원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일붕사가 소재한 봉황산은 유래에 따르면 신라시대 삼국을 통일한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 장군의 첫 요새지로서 신라 최고의 군부대였던 봉황대가 머물렀던 곳으로 그 이름을 따 봉황산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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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2(종무실 주변) |
동굴 안에 대웅전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놀란 점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안내였다. 제1 동굴 법당인 대웅전 넓이가 1,260㎡에 이르고, 높이가 8m에 달한단다. 동양 최대의 동굴 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고, 제2 동굴 법당인 무량수전도 300㎡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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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3(대웅전 앞) *폭포수가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 자연적인 모습이라 한다. | |
무량수전과 대웅전이 자리 잡은 봉황산이 부산의 해동용궁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특별하다는 느낌과 함께 수려하다. 사실이다. 크지 않은 돌산임에도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그렇게 꾸몄거나 조성한 탓도 있을 것이다. 산 중간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설혹 인공적으로 조성했다손 치더라도 자연미에 가깝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길손이 인공적일 것으로 판단한 그 폭포수는 자연적인 것이라는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우기에는 더 많은 폭포수가, 건기에는 소량의 물들이 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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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4(무량수전과 대웅전 내부) |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인지, 그럴 것이라 길손의 마음이 동했기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무량수전에서도 대웅전 내부에서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진심이다. 무언가가 길손으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끔 했다.
『대웅전이 기네스북에 등재된 동굴 법당이라는 안내판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웅장함을 동굴에 담기 위해 사람과 기계의 힘을 빌려 자연을 훼손한 것인가였어.
전지전능한 신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존엄하고 고귀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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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전경 5(약사전, 산신각, 용왕당, 칠성각) |
일붕사를 한참 돌아보는 중에 점심 생각이 났다. 준비한 먹을 것들(구운 찰떡, 귤, 오메기, 커피 등)로 식사를 즐긴다. 시장기를 느낄 정도로 배고픈 건 아니었지만, 넉넉하게 삼켰다. 오토바이 운전에 집중하려면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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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붕사 주차장을 지키고 있는 800 MT와 군계일학의 두루미! |
식사 후 일봉사 입구 쪽 도로 건너편에 조성된 정자에 몸을 눕혔다. 15분 정도 잠들었을까 싶다. 피로를 줄이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 내일(5월 1일, 금요일) 일찍 돌아가려면 괜찮은 몸상태로 안라! 하는 가운데 남은 일정을 부지런히 소화해야 한다. 수량이 부족해 보이는 강가에 두루미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주변과 엇박자가 나는 그림인가 싶었지만, 봉황대를 생각하면 딱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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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내마을에서 호암 이병철 생가로 향하다. 전통 장류 활성화 센터로 확인컨데 마을이 지정된 듯하다. |
12시 45분, 호암 이병철 생가로 향한다. 10㎞ 거리였고, 10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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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 이병철 생가 전경 1(입구 쪽) |
호암 이병철! 지금 주식시장에서 국장이 뜨겁다. 가장 핫한 그룹 중의 하나가 삼성이고, 그 삼성의 오늘을 있게 만든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호암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록에 따르면 1910년 2월 12일 의령군 장내마을 생가에서 태어났고, 1987년에 별세했다.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하고,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하여 경제학을 공부했단다. 그 외 정보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호암 이병철 생가를 찾아 돌아보며 그의 삶과 삼성을 생각한다.
암만! 호암의 삶이 기업과 나라의 기둥이 되고 역사가 되고 있구나!』
*암만하다: 이러저러하게 애를 쓰거나 노력을 들이다.
생가를 돌아보고 느낀 점이 있다. 마을 안쪽에 위치했고, 산과 능선이 포옹하듯이 생가와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마당이 넓고, 부지 전체의 규모에 비해 건축물이 위압감을 줄 정도로 크진 않다. 쓰레기 한 점 찾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인이 지극정성일 것은 불문가지다. 마을 전체가 명당인데 왜 호암만? 이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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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 이병철 생가 전경 2(내부) * 아래 사진은 호암의 엄지 지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
호랑이가 낳은 새끼는 언제나 호랑이다. 여우나 늑대를 낳지 않는다. 생가를 방문하고 느낀 점인데, 호암과 호암의 부모님과 호암의 후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정기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적에도 느꼈던 감정이다. 눈에 띄는 형상이 하나 있다. 호암의 엄지 지문을 작품으로 만들어 위치 좋은 곳에 배치해 두었다. 그의 지문 무엇에서 이 길손과 닮았고, 다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생가가 있는 이 마을은 의령군 정곡면 장내마을이다. 생가 입구 쪽에 장류 특화마을을 소개하는 센터가 있다. 된장 간장 등을 대대손손 맛나게 담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믿으려 한다. 설마 호암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기에 특별한 어떤 의미를 부여할 목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런데 왜 장류를 파는 가게들이 길손의 눈엔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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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내마을 홍보판과 리치 카페 * 아래 사진은 주문한 스무디, 메모하며 시원하게 마셨다. |
그냥 떠나려다 마을 카페(리치 카페)에서 시원한 스무디를 주문했다.
“여기 대표 메뉴가 뭔가요? 시그니처 메뉴요!”
“그런 건 없어요.”
일하는 분들이 모두 65세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3명이 근무 중이었다. 그분들 중 『윤창오』어르신과 대화하며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 가운데 정보를 습득한 것이 있다. 이 카페를 관리하는 곳은 시니어 클럽이고, 의령군에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이런 카페가 운영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커피는 많이 마셨고, 유자나 생강, 대추차 먹을만한가요?”
“모두 다른 곳에서 사가지고 온 거라서요. 다 비슷해요.”
“그럼, 스무디 주세요. 이 마을이 장내마을인가요? 아까 보니까 장류 특화마을로 소개된 것을 봤거든요. 혹시 아세요?”
“잘 몰라요. 우리도 여기 출퇴근해서요.”
“아! 모르시구나. 알겠습니다. 안 물어볼게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여쭈려 했는데, 미안합니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되고 있는 인상이다. 어지간할까? 호암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니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은 여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나저나 스무디가 시원하고 달콤하다. 4천 원 값어치를 한다. 스무디를 마시면서 카페에서 일하고 계신 『윤창오』 어르신과 한참 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은 길손의 기억 속에만 담아 두려 한다.
# 3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