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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자,오토바이(×),여행(백두산과 천지 여행기 2편)

탁왕 2025. 4. 23. 09:31

# 2편 연재(1일 차 - 4월 19일)
 

중국 도문시에서 두만강 너머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을 바라보다. 그 반대가 되는 날이 언제나 올까 싶다.

 
식사 후 도문을 향해 출발했다. 가이드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궁금한 것은 질문을 던졌다. 연변에 거주 중인 조선족(그들도 중국인이다.)이 약 70만 명 수준인데, 연변 전체 인구(약 170여만 명이라 하고 통계 확인은 못함)에서 차지하는 조선족 비중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한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라는데, 젊은 세대는 농사를 선택하지 않고 상해와 같은 대도시로 떠나거나 한국과 같은 외국으로 간다고 한다.그런 영향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70만 명을 육박한단다. 연변의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이동한 것이다.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는 곳! 두만강아, 잘 있었어?
  문을 굳게 걸었는데, 어떻게 해야 그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연변에서 조선족 인구가 줄면서 나타난 부정적인 현상이 있다는데, 올해 입학(특이하게도 9월이 입학 시즌이라 한다)하는 학생들부터 학교에서 더는 한국어를 필수로 가르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상점의 간판이 과거엔 한글 아래 한자를 표기했지만, 지금은 그 위치가 뒤바뀌었다. 한자 아래 한글을 기재하면서도 한글 사이즈가 훨씬 작아졌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한글과 한문 병합 표기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한자 표기로 바뀌게 될 것 같다고 한다.
 

중국 도문시와 두만강과 함경북도 온성군 전경

 
백두산 관광 목적으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면, 현지 가이드도 많을 것 같아 물었더니, 연변에 일천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단다. 지금이 백두산 관광 시즌이라 장가계 등 다른 관광지에서 활동하던 가이드 상당수가 연변으로 옮겼다고 설명해주었다. 백두산 관광 시즌은 겨울이 아니고, 여름이지 않나? 싶은데.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반도의 식구들인데,
  경고하고, 엄포를 놓고 서로의 아픈 곳을 찔러 왔지!
  북소리 크게 울릴 적에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다면
  도도히 흐르는 저 두만강도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 날이 오지 않을까!』
 
도문에 도착했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두만강 너머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 땅에서 한반도의 한 부분을 응시하게 된다니! 반갑다는 감정에 앞서 안타깝고 슬펐다. 두만강 너머는 함경북도 온성군이다. 중국 도문시와 함경북도 온성군 사이를 도도하게 흐르는 강이 두만강이다. 접경 지역임에도 합법적으로 두만강과 북한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도문이다.
 
 

영상으로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을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얕은 지식 한 가지, 두만강은 동해로 흘러가고, 강의 길이가 521㎞이다. 한반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라 한다. 두만강을 끼고 있는 도문시 면적이 1,142㎢이고, 주민은 약 14만 명 안쪽이라 한다. 연길에서 도문까지는 고속도로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두만강과 함경북도가 있다.
 

도문시 강변공원 모습. 버섯처럼 솟은 저 조형물이 뭔지 물었더니, 진달래꽃을 형상화했다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두만강 너머 북한은 썰렁하다. 나무가 없다. 민둥산이라 짐승은 물론이고, 사람도 몸을 숨길 곳이 없다. 과거에 듣기로 벌거숭이 산을 만든 이유가 땔감을 구할 목적도 일부 있었지만, 중국으로 탈출하려는 북한 동포들을 막을 목적으로 숨을 곳을 없앴다고 들었다.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두만강 건너 그곳엔 여전히 삭막하고 싸늘했다. 민둥산 여러 곳이 다른 색깔로 물든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진달래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온성군을 둘러싼 산들이 여전히 벌거벗었더라.
  성한 곳이 어디 있을까? 눈여겨보다 찾게 된 그 진달래꽃!
  군더더기 없는 예쁜 모습에 눈물을 감출 수 없더라.』
 

도문시 강변공원 이모저모! 아래 사진의 다리는 북한으로 건널 수 있는 통로인데, 중국인만 출입이 가능하다.

 
 
도문시 강변공원 아무 곳에서나 촬영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가이드는 자신이 안내한 곳에서만 촬영하라고 한다. 만에 하나 어기면 공안이 단속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렇겠지. 이곳은 접경지역이다. 잊어선 안 된다. 허락된 곳에서 촬영하며 웃기도 하고, 추억도 남겼지만, 북한 온성군 어느 곳에서 중국 도문시를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촬영하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아프고 슬픈 현실이 가슴을 채울 무렵에 하늘도 눈치 챘는지 추적추적 비를 내렸다.
 

확대해서 촬영한 온성군 전경과 이곳이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임을 알게 하는 아래 경고문!

 
 
도문시를 출발하여 용정으로 향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송정(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과 해란강(선조들께서 일제 강점기에 만주를 찾아 자리를 잡을 적에 선택했던 곳이 해란강 주변이다. 강과 들판이 있었기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했다. 말 달리든 선구자들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한목숨 아까워하지 않았던 애국자들의 거룩한 땀방울과 그림자가 녹아 있는 곳이다. 버스가 지나가는 짧은 시간에 그들을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에 귀한 목숨 나라 위해 기꺼이 내놓으신 님이시어!
  송구합니다. 당신들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후손들을 매질하소서!』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