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자, 오토바이, 여행(백두대간 종주 - 2편 / 대설은 난공불락)
2일 차(3월 26일, 화요일, 맑음 / 진부령)
어제 21시 무렵에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뒤적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잠들었다. 충분히 숙면한 것이다. 비와 눈 소식 때문에 걱정이 되었는지 꿈을 꾸었다. 눈 쌓인 80령 어느 깊숙한 도로에 고립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 자신이었다.
잠들기 전에 침대 옆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다. 바깥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빗물이 창문을 연신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계속 오는구나. 비라서 다행인데, 눈이면 어쩔 뻔….’
뒤척이다 06시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이런 제기랄! 눈이 비와 섞어 날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열었다. 행안부에서 어젯밤 11시를 넘겨 보낸 안전 문자가 먼저 날 반겼다. 「오늘 23:20 대설 경보 발령. 야와 활동과….」
‘망했다. 이거 큰일인데!’
☆ n행시는 폰을 가로로~~^^
『대설이 예보되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그래선 안 된다며 기대했어
설설 기는 자동차를 보며 나는 절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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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아침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래는 숙소인 오션투유리조트, 저렴했다. |
강원도 산간에 눈이 쌓였다. TV 일기예보 화면에 진부령을 비추었고, 온통 설국이었다. 80령 전체를 종주하려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쩌면 1번 진부령부터 13번 멍어재까진 다음을 기약해야 할 지도 몰랐다. 3월이 거의 지나가는 26일에 저런 대설이라니! 불과 2일 전엔 서울 기온이 낮 최고 20도에 육박했다는데, 믿기지 않았다.
08시 20분, 리조트 밖엔 눈이 멈추었다. 비도 그친 듯했지만, 그렇다고 진부령으로 갈 순 없었다. 그곳에 눈이 녹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해당 관공서에서 성실하게 제설작업을 했길 기대하고 바랐다. 제설작업을 한다는 전제로 정오 무렵 출발한다면 도로 사정이 나아져 있진 않을까? 희망사항이었다.
10시 50분에 퇴실했다. 복장을 단단히 갖추고 11시 정각에 진부령을 향해 스로틀을 당겼다. 시내 도로는 눈이 온 건지 비가 온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시내를 벗어나 진부령으로 향하면서 도로 주변으로 쌓인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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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으로 올라가는 도로 중간 부분이다. 쌓인 눈을 보며 올라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
해발 500m 진부령으로 올라가는 동안은, 그 순간만큼은 오토바이로 내가 와서는 안 되는 설국에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대설은 사실이었다.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인 상태였다. 오토바이로 찾아온 건 미친 짓이었다. 다행히 큰길은 염화칼슘으로 제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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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80령 계획에서 1번 진부령 인증사진. 애인을 함께 사진에 담았다. |
진부령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미시령을 검색했더니, 곧바로 네비가 도로 통제 중임을 알려준다. 이 진부령 도로도 서울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염화칼슘으로 제설했을 것이다.
☆ n행시는 폰을 가로로~~^^
『2차 위기는 쌓인 눈에서 비롯되었지
차례차례 다가올 위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될 것인지
위기는 기회라고 했지만,
기회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마저도 모르는 상황이라 답답해!』
올라가면서 잠시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 아스팔트 상황을 발로 감지했는데, 고성군에서 염화칼슘을 살포해 미끄럽진 않았다. 다른 구간도 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제설 중인 작업 차량을 여러 곳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시령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하단 뜻이다.
‘안 되겠다. 돌아내려 가자. 1번만 인증하고, 미시령부터 멍어재는 어쩔 수 없다. 다음을 기약하자.’
☆ n행시는 폰을 가로로~~^^
『포기해야 할 순간인가 싶었어.
기회로 만들 순간일 수도 있는데,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
할 수 없다고 침울해하는 것만으로도 나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지.
까불지 마! 포기는 개뿔!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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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소똥령 쉼터에서 조촐한 점심을 먹다. |
내려가다가 백두대간 소똥령 쉼터에서 조촐한 점심을 먹는다. 12시 50분 무렵,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소똥령 쉼터에서 강릉 가둔지 펜션(2일 차 숙소)으로 출발했는데, 사위가 맑아지면서 고성군 시내가 화창해졌다. 따듯하기까지 했다. 곧바로 도로 옆으로 바이크를 세운다. 우천에 대비해 착용한 우의와 방수커버를 모두 벗겨내고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
약 20분 동안 혼자 갖은 어수선을 떨다가 정리를 끝냈다. 우의를 계속 입고 있으면 안쪽 옷들이 높아진 습기로 물에 젖듯이 엉망이 된다. 오후 비 소식이 없기도 해서 모두 벗긴 것이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그런 나를 보았다면 재밌는 구경거리였겠다 싶었다. 신발커버를 털면서 스포츠 타올로 빡빡 문지르질 않나! 사이드 백 커버를 정리하느라 탈탈 털면서 움찔움찔 어깨춤을 추질 않나!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 두 팔을 번쩍 하늘 높이 올리면서 우의 바지를 털질 않나! 아주 가관이었을 것이다.(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