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편 연재(논개 생가, 무룡고개, 복성이재, 여원재, 정령치, 성삼재, 집으로!)
6일 차(3월 30일, 토요일, 맑은 뒤 약간 흐림)
역시 05시 20분에 일어났다. 눈을 뜨면서 흠칫 놀랐다.
‘어라! 늦잠 잔 거 아냐?’
역시 신체 시계는 정확했다. 정리할 것이 별로 없어 06시에 대충 마무리했다. 날씨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어쩌랴! 다만, 좀 더 고가의 오토바이처럼 알루미늄 박스(3박스, 좌우와 뒤쪽까지 3개 설치)를 달고 다닌다면 비가 오든 어쩌든 관계는 없을 것이다.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한 후 출발한다.
07시 16분, 무룡고개(장수군 의암로 8). 숙소를 떠나 무룡고개로 향하면서 도중에 논개 생가를 지났다. 아마도 관광지를 방문한 곳은 그곳이 처음이지 싶다. 사진으로 남겼다.
백두대간 종주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관광지를 방문했다. 관광지라 해야 할까? 거룩함이자 숭고함인 논개인데... |
☆ n행시는 휴대폰을 가로로 ~~ ^^
『논개는 기생이면서 거룩함이다. 그리고 숭고함이다.
개가(凱歌)를 넘어서는 거룩함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논개는 빛난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76번 무룡고개, 이른 아침인데도 이곳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뭐지? |
무룡고개엔 이른 아침인데도 등산하러 찾아온 사람이 많았다. 대단했다. 무룡고개에서 특이한 점은 대형 주차장을 포함해서 주차장이 여럿 있다는 점이다. 그곳에 많은 주차 공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 궁금하긴 한데,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럴만한, 내가 모르는 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77번 복성이재, 지형이 아기자기 했다. 뭔가 감싸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
07시 45분, 복성이재(남원시 아영면 성리 산 63-1). 안내판에는 명당터가 많다는 설명이 있다. 이곳의 지형을 눈으로 읽고 바이크로 달려오며 느낀 것이 있다. 험하지 않은 산들이 악수하듯이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계곡이 깊지 않고 완만하면서 부드럽다. 때문에 곳곳에 햇빛이 잘 든다. 그래서 명당터가 많다는 걸까?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78번 여원재, 느낌상으론 백두대간 방문지 중 해발이 가장 낮았다. |
여원재(남원시 운봉읍 장교리 827-3), 08시 20분 도착. 여원재에 마을이 있다. 장동마을이라 한다. 그 마을 입구에 여원재 표지판이 세워진 상태다. 백두대간 80령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가장 아래쪽이라 그런가 하고 혼자 생각했다. 달려가면서 그런 기분이었다.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79번 정령치, 호랑이다. 한반도는 틀림없이 호랑이다. |
08시 45분, 정령치(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 정령치 해발이 1,172m다. 여원재에서 정령치로 올라갈 적의 그 감상은 한반도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면서 대륙을 향해 웅장한 목소리로 포효하고, 몸을 말고 있던 큰 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 기상을 느꼈다.
정령치 주차장, 전망대 쪽에서 내려다본 전망이다. 동영상을 촬영했으나 편집할 줄 몰라 너무나 안타깝다. |
이곳 정령치엔 제법 큰 규모의 유료 주차장(4월 18일부터 요금 징수 예정)과 휴게소, 잘 관리 중인 화장실이 두 동이나 있다. 전망대에 올랐다. 해발 1천이 넘어서인지 주변 많은 산이 정령치를 올려다보는 것 같다. 산군님의 명을 기다리는 모양새랄까!
백두대간 80령(내 계획상) 중 80번 성삼재, 한반도가 호랑이라는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
09시 20분, 드디어 백두대간 마지막 성삼재(구례군 산동면 노고단로 1068)에 올랐다. 정령치에서 느낀 내 감정이 맞다는 생각이다. 역시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이곳은 호랑이가 단번에 대륙을 향해 훌쩍 도약할 기상을 품었다.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 기운이 백두대간 곳곳으로 퍼지고 있고, 주변에 가득하다.
성삼재에서 돌아본 주변을 눈에 담듯이 카메라로 담을 수 없어 몹시도 안타깝다. 꼭 찾아갈 것을 추천한다. |
산세가 웅장하고 크고 깊으며, 매혹적이다. 성삼재엔 찾는 사람이 많다. 99%는 승용차로 올라온다. 내가 도착했을 적에 오토바이 두 대가 먼저 와 있었다. 한 대는 서울 번호였다. 그들도 나처럼 종주했는지는 알길이 없다.
많은 사람이 찾는 만큼 이마트 편의점, 커피 전문점, 블랙야크 등이 입주했다. 주차장과 화장실도 그동안 본 그것 중 단연 최고의 시설이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종주를 마무리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누군들 지금의 내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자빠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나를 안전하게 태워 준 사랑하는 애인 MT-07아! 고맙다. 너를 너무 아프게 해서 몹시도 미안하다. 그만큼 더 사랑할게.
울컥해서일까? 가족과 동료, 지인, 친구들이 떠오른다. 내가 이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그들의 배려 덕분이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연결 축이 있어 나를 백두대간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싶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한다.
14시 40분 무렵, 집에 도착했다. 오후 한때 비가 내리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적중하지 않았다. 성삼재에서 출발할 때 코스 확인을 해야 했는데, 일찍 도착하는 걸로 내버려 두었다가 아주 혼이 났다. 네비가 마산 합포구를 통과해 부산 강서구, 사상구, 진구, 해운대구까지 통과하도록 해서 반송을 통해 기장 일광으로 넘어왔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너무나 힘들었다. 가다 서기를 무한 반복하며 여행 중에도 느끼지 않은 피로와 피곤함을 마지막 1시간 30분 동안 약 35㎞를 이동하면서 만땅을 채웠다. 두 번 다시 시내를 통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말이다.
5박 6일간 주행한 거리가 총 1,923㎞이고, 평균 연비는 리터당 23.9㎞였다. 1천 9백여 킬로를 달리면서도 피곤하지 않았는데, 그놈의 시내 주행으로 멘탈이 산산이 부서졌다. 중간 경유지를 양산으로 지정했어야 한다. 정말이지 두 번 다시는 부산 시내를 통과하지 말자. 제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분리해서 가져다 두고 간단한 차림으로 세차장을 찾았다. 6일간의 묶은 때를 벗겨 주기 위해서다.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씻었다. 이만하면 내 애인이 빛이 난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런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 정리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이렇게 백두대간 종주라는 나의 3차 전국 일주가 마무리되었다.
찾지 못한 2번 미시령부터 11번 방아다리고개까지와 49번 하늘재, 50번 이화령은 머지않은 시간에 반드시 다시 찾아가리라.
* 13편에서 계속(부록1: 비용 상세 / 부록2: 백두대간 종주 계획서)